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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쌍화차의 계절, 늦가을 본문
이마트 트레이더스에 다녀왔다. 삼성 코스트코랑 경쟁하려고 세운 신세계 그룹의 창고형 매장이다. 문을 연 지 4년이나 됐다는데 찾아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차로 5분 남짓 걸리는 평범한 이마트보다 거리가 훨씬 멀었기 때문이다. 건물 크기는 비슷한데 주차장에 올라가는 길이 꽤 힘들었다. 왜 이리 좁고 굽은 길이 많은지... 연석엔 누군가 긁고 지나간 흔적이 많았다. 주차 면도 넓지 않아서 큰 차를 집어넣고 빼기 조심스러워진다.
카트는 매장에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카트는 매장 입구 근처 주차장에 진열돼 있었고, 매장 안에 따로 비치돼 있지 않았다. 카트를 꺼내려고 백원짜리 동전을 찾는데 손에는 달랑 오백원짜리 두 개. 동전 교환기도 없었다. 귀찮았다. 그냥 쌍화차랑 커피만 사러 가는 건데 뭘. 투덜대며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1층과 2층으로 나뉜 매장 안은 천장이 매우 높았다. 물건은 죄다 박스째로 반듯이 진열돼 있었고 통로가 넓어 지나다니기 좋았다. 눈에 띈 건 박스에 표시된 엄청난 양, 저렴한 가격이었다. 180개 든 커피믹스가 고작 만 이천원이라니. 카트를 끌고 다니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한고비 넘으니 신선식품 코너의 유혹이 시작됐다. 코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살까? 말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계획 없는 지출을 포기한 내 눈은 다시 쌍화차 믹스를 찾고 있었다. 사람 키만큼 쌓은 라면 박스 뒤로 온갖 전통차 박스가 가득 진열돼 있었다. "어디 보자. 대추차, 생강차, 율무차... 여기 있네 쌍화차." 이름이 같은 박스가 많아서 한참을 들여다봐야 한다. 80개에 만 오천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집어 든다. 달콤한 대추와 고소한 아몬드를 잘근잘근 씹어넘길 수 있는 맛 좋은 한약이다. 입동 지난 늦가을엔 이만한 게 없다.
곧장 계산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빼빼로와 호빵이 마중 나왔다. 빼빼로는 8개에 오천원, 호빵은 12개에 6천원. 안 사고는 못 배겼다. '쌍화차랑 같이 먹지 뭐.'라며 열심히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지름 유혹에 당해버렸다. 소소한 금액이어서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싸게 샀다는 기쁨에 사로잡힌 탓일까.
포인트 적립을 마치고 주차장을 나선다. 차를 몰고 내려가는 길이 무척 힘겨웠다. 혹시나 연석을 긁을까 봐 속도를 늦추며 고개를 이리저리 빼들었다. 늘 그렇듯 무사히 넘어갔다. '주차장만 손보면 정말 편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 나는 어느새 꼬리 긴 정체 행렬에 동참하고 있었다. 차 창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 햇볕을 친구 삼아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리니 금방 집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가장 먼저 꺼낸 건 쌍화차 믹스. 뜨끈한 쌍화차 타 먹을 생각에 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얼른 커피포트에 냉수 한 컵 붓고 보글보글 끓였다. 머그잔에 봉지를 톡 까서 믹스를 넣고 뜨겁게 데운 물을 부어 티스푼으로 휘휘 저었다. 코 끝을 자극하는 한약 남새를 맡으며 몸 안으로 쌍화차를 조금씩 들이켰다. 찬 바람으로 허전했던 속이 편안해졌다. 금방이라도 잠이 쏟아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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