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 말고 성당못 한 바퀴
화창한 일요일 오후 무작정 집 밖을 나섰다. 정해둔 목적지 없이 탄 939번 버스는 대공원역을 지나고 있었다. 처음엔 카카오 맵으로 율하 체육공원을 검색했다가 수성 3-1로 갈아탈 곳이랑 배차간격이 마뜩잖아 다른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두류공원에 있는 성당못이다. 어렸을 적 이월드(당시 우방타워랜드) 속 놀이기구를 타면서 들렀던 기억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 수성대학교에서 939번 버스를 보내고 609번 버스로 환승 후 대구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내렸다. 가는 데만 대충 1시간 20분이 걸렸다.
오랜만에 찾아간 성당못은 휴일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 중인 어르신들, 선캡과 선글라스를 끼고 나온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 손 잡고 나무데크를 걷는 연인들, 목줄이 매달린 채 총총 뛰어다니는 반려견들, 재잘거리며 웃는 어린이들이 적당한 거리를 벌린 채로 산책 중이었다. 뒤편으로는 두류산에 우뚝솟은 83 타워가, 못 건너편으로는 문화예술회관이 마주 보인다. 83 타워가 보이는 방향으로 쭉 걷다가 뒤로 돌면 순복음대구교회를 비롯한 온갖 건물과 초록색 나무들이 수면에 반사돼 극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이틀 전 들른 수성못과 사뭇 다른 풍경이다.
성당못 산책로(두리길)을 한 바퀴 빙 둘러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산책로가 비좁고 굽은 길이 많아 러닝 코스로는 알맞지 않다. 천천히 여유롭게 걸어도 20분 남짓이면 다 돈다. 성당못 왼편에는 한반도 모양으로 생긴 작은 연못도 있는데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와 들르지 못했다. 그 아랫길에는 노란빛으로 활짝 만발한 유채꽃밭도 있었지만 구경할 시간이 모자라 지나치고 말았다. 저수지 안의 부용정과 삼선교, 분수대를 한 장의 초광각 사진으로 넓게 담고서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두류수영장 건너편 버스 승하차장에서 609번 버스에 올랐다. 중간에 집으로 곧장 가는 939번 버스로 갈아탈까 하다가 햇살을 맞으며 앉아 가는 게 좋아서 관두기로 했다. 대공원역 라팍(삼성 라이온즈 파크)과 시지지구를 뱅뱅 둘러가던 버스는 마침내 내게 하차 신호를 보냈다. 1시간 10분이 걸렸으려나. 남중 고도를 높여서 지면을 데우던 태양이 산 뒤편으로 몸을 숨기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도 이렇게 힐링하고 내일을 맞겠지.
촬영기종 : 갤럭시 S21+ (SM-G996N)
촬영일시 : 202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