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사진

반곡지 말고 초록빛 청보리밭 어때? 대부잠수교

커피스푼 2021. 4. 1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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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내내 기른 머리카락을 곱게 잘라낼 겸 집 밖으로 나왔다. 약한 황사 따위 내 외출은 못 막는다. 스벅 임당점에서 고소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카페인 수혈을 했더니 벌써 오후 1시 반. 할 일은 다 끝나서 집에 갈까 휴무라서 못 갔던 이마트에서 장이나 볼까 하다가 한 달 전 그린카로 카셰어링 하며 들른 대부잠수교를 가기로 했다. 스벅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북부동 행정복지센터 버스 승하차장에서 809번 버스를 찾았다. 전광판엔 5분 뒤 도착한다는 알림이 떴다. 평소 배차 간격이 27분이나 되는데 카카오 맵의 도움을 참 많이도 받는다. 이윽고 빛바랜 809번 버스가 와서 얼른 출입문에 올랐다.

 

영남대 앞 대학로에서 벗어나 압량읍내를 향하던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창문 너머로 금호강이 보였다. U턴인 듯 아닌 듯 크게 회전하던 버스는 비탈진 포장도로를 타더니 시멘트로 포장된 대부잠수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무릎 높이만치 초록빛을 내며 자란 청보리들이다. 한 달 전엔 분명히 발목 높이만 했는데 그새 봄비를 먹고 햇빛을 받더니 쑥쑥 커버렸다. 벚꽃도 예년보다 피고 지더니 청보리도 벌써 다 자랐다. 4월 말쯤 갔으면 오히려 절정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호산대학교를 마주할 즈음 809번 버스에서 내렸다. 하양역으로 길게 쭉 뻗은 철로 밑 좁은 길목을 지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굴다리를 지나니 좌측에 싱그러운 청보리밭이 반겨주고 있었다. 황사와 구름으로 푸른 하늘이 가려진들, 청보리밭을 향하는 내 시선에 가려질 건 없었다. 주차장 대용으로 넓게 깔린 보도블록을 지나 강가로 나 있는 산책로를 향해 망설임 없이 두 발을 움직였다. 한 달 전 사진을 담았던 그 자리에 서서 사진을 담으니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눈앞에는 배추흰나비 한쌍이 즐거운 듯 나풀거렸다. 강가에는 작은 유채꽃밭이 노란 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기왕 왔으니 청보리밭을 크게 빙 둘러 돌아보기로 했다. 안쪽 깊숙한 곳에서는 동네 주민분들이 분주히 손을 놀리며 제초 작업과 화단 정리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중간중간 보릿대들이 흔들거릴만큼 바람이 불어와 덥지는 않았다. 가끔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다가 구름 사이로 강한 햇살이 내리쬐곤 했다.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진 못해도 눈은 초록을 보며 휴식 중이다. 천천히 걷다가 강가를 보며 한 컷, 폰을 세로로 돌려 또 한 컷 묵묵히 담아낼 뿐이다.

 

한 바퀴를 돌아 나오니 시계는 2시 반이 넘어 있었다. 느긋하게 돌아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차장 바로 맞은편 버스 승하장에서 809번 버스를 타면 되는데 카카오 맵에는 도착 예정 없음 표시만 뜬다. 벤치에 걸터앉아 갤러리 앱에 저장된 사진을 훑어보다 다시 카카오 맵을 띄운다. 7분 후 도착 알림이 뜬다. 어? 노선이 하나뿐인 승하차장인데도 버스가 은근히 자주 온다. 어쩌면 배차 간격에 운 좋게 맞춰와서 제때 버스를 탈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809번 버스로 집 근처까지 되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최소 한 번 이상 갈아타야 겨우 닿는 반곡지보다 대부잠수교가 접근성이 더 좋다. 요즘 반곡지로 인파가 너무 몰려서 방문이 망설여지는데 이곳은 인적도 풍경도 적당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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