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날씨에 만난 달성의 봄, 옥연지 송해공원
쨍한 햇살이 내리쬐던 24일 일요일. 하늘은 새파란 물감을 칠한 듯 맑고 고운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도 삼성현 역사문화공원 안에 들어선 동의한방촌을 둘러보던 차였다. 밖은 나갈 계획이 없었는데 미세먼지 농도까지 '좋음' 수준으로 낮아진 기막힌 날씨였다. 급한 대로 카카오 맵을 띄웠다. 답사 다녀올 곳 중에 옥연지 송해공원이 눈에 띄어 대중교통 길 찾기를 눌렀다. 예상 시간은 짧아야 1시간 반. 지도에 그려진 경로 안내도는 길게 늘어진 'ㅅ(시옷)'자 형태였다. 버스랑 2호선 지하철로 반월당역까지 나가서 1호선 환승 후 종착역인 설화명곡역 7번 출구 앞에서 주말만 다니는 600번 유가사행 버스나 용연사행 달성 2번 마을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낮 12시 반의 집밖은 반팔에 반바지, 바람막이 한 장이면 최적인 날씨였다. 939번 버스로 담티역에 가서 2호선 지하철로 반월당역까지 갔다가 설화명곡행 1호선 지하철에 몸을 옮겨 실었다. 종착역을 향하는 내내 유가사/대곡역 행 600번, 달성 2번(용연사 행) 운행 시간표를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두 버스는 배차 간격이 엄청 길거나(유가사/대곡 행 600번은 배차 간격 99분, 토/일 한정) 운행 횟수가 매우 적은 노선(용연사행 달성 2번은 1일 2회만 운행)이라 탑승할 시각을 잘 맞춰야 한다. 별 다섯 개 만점으로 탑승 난도를 매기면 3~3.5점이 되겠다. 운이 좋게도 600번 버스 도착 9분을 남기고 명곡리1 버스 승하차장(설화명곡역 7번 출구 앞)에 왔다.
그늘진 곳에서 기다리니 유가사행 600번 버스가 보였다. 색깔은 600번 일반노선과 똑같은 파란색인데 전광판이 꺼져 있었다. 대신 앞유리에는 대곡역/용연사/휴양림/유가사 주요 경유지 안내 팻말이 걸려있었다. 600번 버스 기사님은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유가사행 버스입니다."라며 일러두셨다. 혹시 몰라 "옥연지 가나요?"라고 여쭸더니, "네, 갑니다."라고 하시는 기사님 말씀에 안심이 됐다. 환승이 될까 했더니 단말기에선 "삑"하는 태깅 소리만 난다. 역시 멀리서 찾아가면 교통비가 두 배로 든다. 버스 한 번만 갈아타는 경로는 2시간 반이나 걸린다. 시간이 아깝다. 승하차장 5군데만 가면 되니 10분도 안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넷째인 옥포벚꽃길1을 지나던 버스에 제동이 걸렸다. 신발 밑에 껌을 붙여놓은 듯 도로는 거북이걸음을 하는 차들로 꽉 찼다. 옥연지까지 가지 말고 그전에 내릴걸 그랬다.
5분이 지나 옥연지 버스 승하차장에 도착했다. 스마트폰을 속 시계는 2시 15분을 가리켰다. 내리자마자 허리 높이만한 울타리 너머로 푸른빛의 거대한 저수지가 보였다. 남중 고도를 높이 띄운 태양이 수면을 향해 찬란한 물빛을 일으키고 있었다. 감상은 잠시뿐이었다. 아직 건조주의보가 발령 중이라서 가끔 산림청 소속 헬기가 저공 비행으로 내려와 이곳 물을 떠가기도 했다. 도시 속 사람들에겐 신기한 경험이겠지만 김을 매고 접을 붙이면서도 한 해 농사로 걱정 마를 일 없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흔한 일상 중 하나다. 헬기가 물을 떠간 자리 뒤에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듯 물을 내뿜는 분수대, 느긋한 속도로 회전 중인 풍차, 한가운데엔 데크로 이어진 2층 팔각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수지를 가장한 테마파크처럼 보였다.
도로가에 조성된 산책로를 한참 걸으니 다음 승하차장인 송해공원이 보였다. 가는 길 맞은편에는 흰색 지붕의 별장 카페도 보였고 밑으로 좀 더 내려가면(옥연지 생태공원 방향) 프랜차이즈 매장인 투썸플레이스랑 편의점도 보인다. 일부 구간은 방문객 편의시설 확충을 위한 보수공사도 진행 중이었다. 며칠 전 찾아간 월광수변공원보다는 한 단계 아래인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예전의 주 방문객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과 등산객 비중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2030 청년층도 많이 찾아가는 모양인 듯했다. 곳곳에 세운 조형물들이 아기자기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송해공원에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한가운데 선 팔각정이었다. 비탈진 흙길을 타고 내려와 나무데크로 발걸음을 향하던 순간이었다. 멀리서 원형으로 물줄기를 내뿜던 분수대를 가까이 마주하니 날씨가 더워도 시원함이 전해졌다. 우측에는 달 모양을 한 조형물과 네덜란드 느낌을 낸 풍차가 돌고 있었다. 밤에는 골고루 넣어둔 LED와 간접 조명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지도 모르겠다. 팔각정 1층은 기념품 판매점이 운영되고 있었다. 우측에 난 나선형 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곳곳에 앉을 만한 곳이 있었지만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어 사진 두 세장만 담고 곧장 계단을 내려갔다.
팔각정에서 벗어나 옥연지 둘레길을 더 걸으니 등산로와 연결되는 산책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는 돌고 돌아 산 정상을, 왼쪽으로는 생태공원 주차장과 출입구로 향하는 가벼운 산책로가 이어진다. 우측의 백세 게단에 잠깐 올라 팔각정을 향해 한 두 장 담다가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늘진 뒷산을 따라 터벅터벅 걷다 만난 다리 위에서 한 컷을 담고, 생태공원 내 만들어진 인공습지와 물레방아를 거쳐가며 사진 몇 장을 더 담았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조경이 잘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생각대로 그림이 예쁘게 담겼다. 굳이 공들이지 않고 카메라를 들어도 편하게 잘 찍힌다. 휴일 오후를 맞아 사람들이 몰렸던 상황에 비해 사진 촬영이 꽤 수월했다. 마스크도 다들 잘 쓰고 다녔다.
옥연지 절반을 돌았을까. 기온이 더 올라서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바람막이 대용으로 입던 자켓을 벗어 에코백에 넣고 지퍼로 잠그고 다녔다. 더 돌고 싶은 기운은 남아있지 않았다. 생태공원 출입구 건너편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등산객 일행이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집에 가기로 했다. 카카오 맵에는 도착 예정인 버스가 없어서 옥연지 건너편 버스 승하차장까지 걸어서 되돌아갔다. 한 5분쯤 지나자 달성 2번 버스가 6분 뒤 옥연지 건너편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떴다. 금방 올 줄 알았는데 별장 모습을 한 카페 앞 버스 승하차장에서 15분을 기다린 끝에 버스가 왔다. 등산객 일행과 나머지 방문객을 모두 태우느라 출발 지연이 생긴 듯했다. 버스 도착 알림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나 싶어 앱으로 계속 새로고침을 했더니 필요 없는 짓이었다.
달성 2번 버스 안은 등산객 일행과 소수의 방문객이 뒤섞여 북새통을 이뤘다. 다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화원고등학교 앞 버스 승하차장까지는 대략 7분 남짓이 걸렸으나 탑승 경험은 별로였다. 버스가 멈추고 나면 그 때 하차 태깅을 해도 늦지 않는데 꼭 미리 일어서며 버스 안을 혼잡하게 만든다. "버스가 멈추면 내리세요, 선생님들. 위험해요!"라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만 같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참았다. 그림은 예쁜 곳인데 대중교통으로 이곳을 다시 찾아가라면 몇 번이고 한참을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차가 있어도 진입로 자체가 꽉 막혀 버려서 이곳이 힐링을 위한 길인지, 고생을 위한 길인지 잘 모르겠다. 설화명곡역에서 임당역까지 되돌아가는 데는 1시간 15분이 걸렸다. 카페인 수혈을 하고 집에 돌아간 시각은 저녁 7시. 다시 간다면 평일 저녁이나 늦은 오후에 차로 가는 게 좋겠다. 버스로 가는 건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카셰어링을 해서 가거나 설화명곡역에서 택시를 잡아 이동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