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같은 산책하실 분? 대구 침산공원
월요일 오후 4시 반, 경산 939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해 지는 시각에 맞춰 앞산공원 전망대를 가려고 했는데 환승하기 귀찮아서 목적지를 다른 데로 바꿨다. 운암지 가는 길목에 있는 침산공원이다. 환승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옥연지보다 찾아가기 매우 쉬워서 가는 내내 마음이 편했다. 한 시간쯤 지나 북구청 세무서에 이르자 버스에서 내렸다. 오봉오거리 안의 횡단보도 2, 3개만 건너면 바로 침산공원 안내도와 산책로가 보인다.
눈앞의 침산공원 안내도를 보고나니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둘레길 입구에 설치된 수십 개의 계단을 보고 말았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터덜터덜 내려오는 등산객, 입구 앞 벤치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물을 마시는 어르신도 몇 분 계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밑창 튼튼한 운동화에 더 편한 복장으로 입고 나올 걸 그랬다. 우측통행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지나 계단 오르기를 시작했다. 숨을 뱉고 내쉴 때마다 마스크 필터가 달라붙어서 숨이 금세 가빠졌다. 평지 위주의 편안한 산책로를 거닐며 운치를 즐겼던 수변공원과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누굴 데리고 왔다면 분명 등짝을 맞았을 곳임에 틀림없다.
계단을 오르면 다음 계단이 나오고 또 계단이 이어진다. 숨이 차올라서 재킷은 잽싸게 말아 가방에 넣어버렸다. 콧등을 받치는 지지대를 살짝 올리니 그나마 숨 쉬기 편해졌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초저녁이라 덥지는 않았다. 땀 몇 방울이 가끔 등줄기를 타고 흐를 뿐이다. 1봉 휴식광장에 오르니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으로는 2봉과 운동 광장을 거쳐 침산정이 있는 5봉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체육시설과 야외극장을 지나 5봉으로 올라가는 둘레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빙빙 둘러서 가는 길처럼 보였고 왼쪽은 침산정으로 가는 길이 짧아 보였다.
'뭐, 이 정도면 다닐 만하네!'라는 생각도 잠시. 체육시설 앞 이정표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눈앞이 아찔할만큼 깔린 경사진 내리막 계단이 보였다. 분명 내려간 만큼의 오르막이 나타날 게 뻔했지만 되돌아가기는 늦었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족구장과 배드민턴장을 지나니 좌측에 연립주택가와 넓은 주차장이 보였다. 노란빛을 쏟으며 와룡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인 태양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야외극장을 끼고 샛길로 난 계단을 또 성큼성큼 오른다. 반듯하게 난 흙길을 걷자 산 모기가 주변에서 앵앵거리며 흡혈의 기회를 노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또 걷고 걸었다.
걷다 보니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5봉 전망광장 돌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다 오르면 침산정이 바로 보이는데 그 길로 가지 않았다. 바짝 긴장하고 오르지 않으면 발을 헛디딜게 분명해 보였다. 조금 더 앞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빙 둘러 올라가는 계단이 또 나온다. 급경사진 돌계단보다는 오르기 편했다. 하나 둘 꾸준히 밟아 오르면 마침내 원형의 보행로로 둘러싼 침산정이 보인다. 광장 입구에는 우측으로 보행하라는 안내 표지가 서 있었다. 벽돌색 우레탄을 따라 둥글게 걸으면 한문 현판이 걸린 침산정 정면이 바로 보인다. 건물 우측 아래에는 독특하게도 사무실에 걸려있을 법한 검은색 테두리의 둥근 시계도 보였다. 등산하러 오는 이 동네 주민들이 은근히 많은 모양이다.
침산정 정면 우측에는 전망 데크가 조성돼 있었다. 앞산공원 전망대에서 보던 그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바닥은 나무데크를 깔고 울타리엔 강화 유리와 스테인리스 봉을 달아둔 듯했다. 왼쪽에는 크고 넓은 금호강이, 정면에는 금호강의 지류로 졸졸 흐르는 신천이, 오른쪽에는 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신천대로가 보였다. 나무로 전망이 일부 가려져서 시야가 확 트이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볼 만했다. 태양이 황금빛을 내는 시각에 맞춰서 오면 꽤나 그럴듯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때 역광으로 돌아서서 침산정을 향해 사진을 담으면 오렌지빛 하늘 속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 올라 보는 일몰 뷰는 봐줄 만했다.
와룡산에 해가 걸치는 걸 보고 침산정에서 하산을 시작했다. 계단이 평평했으면 밑창이 말랑한 러닝화로도 금방 내려가겠는데 울퉁불퉁한 돌계단은 발 디딤이 만만찮았다. 옆으로 게걸음 하며 천천히 내려왔다. 경상여고 방향으로 곧장 내려가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쭉 걸었다. 벽돌로 된 구옥들과 층수 낮은 건물들이 빼곡해서 일몰을 보기 좋았다. 바다만 없다 뿐이지 분위기는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을 얼추 닮기도 했다. 골목길을 비집고 다니다 큰 길이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넜던 오봉오거리였다. 횡단보도를 2개 건너 북대구 세무서 건너편에서 939번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 5분쯤 지나자 연두색 939번 버스가 다가왔다. 환승 없이 집 근처 버스 승하차장까지 이동할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을 추스르고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글을 올리니 시간은 벌써 8시 반이 됐다. 얼른 집에서 샤워나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