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 불던 어느 5월, 경산 남매지
어린이날이다. 어제는 거센 바람으로 전국을 비로 적시더니 오늘 아침은 보란 듯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바람이 여전히 강해서 낮 기온은 23도에 머물겠으나 강한 자외선에 주의하라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외출하기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먹다 남은 호두 머핀과 드링킹 요구르트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카카오 맵을 띄웠다. 어딜 가볼까 알아보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남매지가 생각났다. 경산시청 건너편에 자리한 넓은 저수지다. 비가 내린 바로 다음날은 저수지 뷰가 절정이라서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집 근처 버스 승하차장에서 경산 100번 버스를 타고 경산경찰서 앞에 내렸다. 오전 11시가 조금 안 돼서 남매지 수변공원(남매공원)에 가 보니 반소매 차림에 바람막이를 두르고 나온 주민들이 보였다. 선글라스에 흰색 마스크, 흰색 면장갑까지 제대로 된 옷차림이다.
차들이 북적이는 시청 앞 사거리를 지나 경산시 보건소를 향할 때쯤이었다. 남매지 일주를 시작하는 첫 스폿인데 주차장 안쪽에 못 보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8월 중순까지 수변공원 시설 정비 관계로 공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과 통제선이 그어져 있었다. 공원 내 매점과 화장실은 출입 통제선 안쪽에 있어 드나들 수 없었다. 한동안 이곳에서 틀어주는 음악분수는 구경도 못하게 됐다. 평소에는 이곳 주차장에 이중 주차를 할 만큼 꽉 차는데 어린이날인 오늘은 빈 자리가 유독 많았다. 날이 좋아서 규모가 큰 두류공원이나 수성못, 아니면 팔공산 근처로 드라이브를 나갔겠거니 짐작해 본다.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를 따라 걸어 나오니 우측에 전망데크가 보였다. 저수지 저 건너편의 고층 아파트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잡고 사진을 담았다. 에메랄드 물결이 바람에 넘실거리더니 금세 잔잔해져서 오른쪽의 영남대학교 생활관(기숙사) 건물을 잠시 거꾸로 비추기도 했다. 배율을 조절하며 풍경 담기에 몰두하던 중 멀리서 윈드서핑을 즐기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저수지를 여럿 다니며 오리배 굴리는 모습은 많이 봤는데 윈드서핑이라니. 하긴 대학교를 낀 엄청난 규모의 저수지니까 못할 것도 없다. 연면적만 얼추 비교해도 남매지(약 29만 제곱미터)가 수성못(약 21만 제곱미터) 보다 더 넓다. 둘레길도 수성못(2km 안팎)보다 500m 더 길다.
군데군데 설치된 벤치를 따라 천천히 걸으니 전방에 굽은 길이 보였다. 버드나무 뒤로 작게 보였던 고층 건물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아치형으로 솟아오른 나무데크에 올라 발걸음을 멈췄다. 자전거 주행로와 보행로를 분리해 놓은 수십 개의 다홍색 탄력봉과 산책로 울타리를 따라 세로로 한 장, 가로로 또 사진 한 장을 담았다. 작년 여름에 들렀던 남매지보다 주변이 한층 더 깔끔하게 정돈된 듯했다. 둑 아래의 보행로도 흙길로 잘 꾸며져 있었다. 잡풀만 무성히 자라던 연두색 들판에는 20면 안팎의 공영주차장과 지은 지 얼마 안 된 화장실이 새롭게 들어섰다. 바로 앞의 루프탑 카페를 향해 걷다가 길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 곳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저수지를 바라봤다. 잔잔히 스치던 바람이 점점 거세지더니 꽃가루를 마구 흩날리고 키 큰 나무들이 이파리를 흔들며 떼로 휘청거렸다.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렸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우측통행'이 적힌 녹색 보행로를 따라 걷다가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으면 한 번씩 뒤돌아 사진을 담았다. 앞보다는 뒤로 보이는 풍경이 더 좋았다. 굽은 길을 다 돌아 나왔다 싶으면 남매지 둘레길 초입부에서 작게 보였던 영남대 생활관(기숙사 건물)과 나무를 가까이서 담기도 했다. 벤치와 운동 기구 여럿이 깔린 작은 광장을 지나 경산중·고등학교에 다다를 즈음이면 눈앞에 갈림길이 나온다. 좁은 흙길을 따라가면 우측에 곧게 뻗은 나무데크를 만나게 된다.
나무데크를 건너면 둥글고 거대한 수변 광장이 보인다. 쉬지 않고 똑바로 걸으면 출발했던 경산시 보건소로 곧장 가로질러 갈 수 있고 왼쪽으로 틀면 연꽃 모양으로 조성된 식물원을 지나게 된다. 수변 광장에는 별 모양 천막과 벤치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둥글게 빙 둘러져 있었다. 한참을 쉬지 않고 걸어서인지 목이 말랐다. 바로 앞 벤치에 앉아서 탄산수를 꺼내 목을 적신다. 상큼한 키위 향만 느끼고 다시 마스크를 쓴다. 바람은 전보다 더 세차게 불다가 말며 강약을 조절하더니 낮 12시를 훌쩍 넘겨서야 잦아들기 시작했다. 걸어간 반대 방향으로 산책로를 되돌아가다 계양동의 어느 한적한 골목길로 빠졌다. 농협주유소를 끼고 큰길로 나오니 자주 찾던 임당역 스타벅스 DT점이 바로 보였다. 저기서 아이스커피 한 잔으로 한숨 돌리고 집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