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사진

저수지에 드리운 왕버드나무를 찾다, 경산 반곡지

커피스푼 2021. 5. 1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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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차를 몰아 반곡지를 향합니다. 가는 길이 쾌적해 좋았습니다.

5월의 어느 토요일(8일) 이른 아침. 그토록 비켜갔던 반곡지를 찾았다.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가는 곳이지만 오후 중 시간이 나서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방문을 포기했던 곳이다. 하루에 세 번 경산역에서 반곡지를 향하는 399번 버스가 다니지만 반곡지를 찾기엔 너무 이르거나 빨랐다. 도착하면 아침 7시 반, 저녁 7시, 밤 9시를 가리킨다. 399번 버스의 종점인 자인 정류장에서 남산 2번(반곡 방면은 하루 7회 운행)을 갈아타는 방법도 있으나 배차 간격이 2시간이라 환승 스트레스가 만만찮다. 반곡지를 20, 30분 안에 둘러보고 자인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다면 가능하기는 하다. 길에서 흘리는 시간이 많으니 추천하지 않을 뿐. 우연한 기회로 시승차를 받아 아침 일찍 반곡지를 향하니 기분이 설렌다.

 

반곡지 안내판 앞에서 찍은 풍경입니다. 바람에 날린 꽃가루들이 물 위에 둥둥 떠 있습니다.

지난 8월 여름 이후 아홉 달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한적함과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30면 안팎의 넓은 반곡지 주차장엔 여유가 넘쳤다. 한쪽 구석의 화장실 옆엔 전기차 충전소 2기도 보였다. 주차선에 맞게 차를 대고 문을 열어 내리니 선선한 아침 공기와 선명한 햇살이 얼굴을 스친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둘 다 나쁨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반곡지 주변은 유독 맑아 보였다. 4월 중순 분홍빛을 수놓던 복사꽃이 다 졌지만 그래도 괜찮다. 맑은 아침 기분 좋게 들른 이곳 풍경을 내 두 눈에 오롯이 담을 수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

 

복숭아 밭 사이로 난 데크를 걸으며 저수지를 바라봅니다. 멀리서 왕버드나무가 반기는군요.
도로가를 걷다 잠시 사진을 담아봅니다. 전망 데크 바로 옆에서요.
바로 길 건너엔 카페도 들어서 있습니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쉴 곳으로는 괜찮을 겁니다.

반곡지 안내판 우측에 난 나무데크를 따라 발걸음을 차분히 옮겼다. 농번기에 이른 복숭아 밭은 가지치기를 막 마친 듯했다. 데크 주변에 복숭아 나뭇가지들이 나뒹굴었다. 중간쯤 걷다가 왼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연둣빛에서 진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왕버드나무 수십 그루가 저 멀리서 반기는 듯했다. 며칠 비가 오지 않고 저수량이 줄자 이끼가 많이 보였으나 그런대로 운치는 있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도로가에 난 산책로를 따라가 본다. 바로 길 건너엔 세운 지 얼마 안 된 카페가 보였다. 주말이나 휴일 점심시간 직후엔 차 댈 곳 하나 없을 만큼 붐벼서 갈 길이 바쁜데 아침에 찾으면 사방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아 발걸음도 느려진다.

 

울창한 왕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사진을 담았습니다. 멋지지 않나요?

천천히 걷다 보니 멀리서 보였던 왕버드나무들을 눈 앞에 마주하게 됐다. 이백 년 넘게 꼿꼿이 선 이 나무들은 영화(허삼관)와 TV 드라마(JTBC '나의 나라', SBS '내 마음 반짝반짝', MBC '아랑사또전' 등)에 보조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게모르게 알려왔다. 한적한 시각에 찾으면 가끔 사진 촬영에 분주한 작가들도 마주친다. 날 좋은 한여름에는 방송국 취재용 차가 와서 일기예보로 쓸 배경 영상을 조용히 채집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보통 주말에는 주차장 한쪽 공터에서 반곡리 주민들이 밭에서 딴 복숭아를 쌓아놓고 팔기도 한다. 올여름에는 그런 시골 풍경을 기대할 수 있을까?

 

왕버드나무가 물가에 발을 담그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물속에 들어갈 듯 늘어진 왕버드나무를 담아봅니다.

온갖 생각이 다 들 무렵 왕버드나무 그늘을 지나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슬며시 눈을 돌리니 족욕, 아니 반신욕 중인 나뭇가지들이 보였다. 자주 둘러보는 풍경인데도 늘 새롭고 신기하다. 비 내린 바로 다음날 찾아가면 그 사이로 청둥오리 떼들이 물가를 유유히 거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치 5월 봄소풍을 나온 한 가족을 보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물에 잠길 듯 가지를 뻗친 왕버드나무들은 반곡리 마을 주민들과 공존하며 열매 맺을 물을 주고 어디서왔을지 모를 방문객들에게도 아낌없는 마음의 안식처가 돼 준다. 메마른 둑길을 비로 촉촉이 적시는 지금도 반곡지는 이곳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쑥쑥 자란다.

 

왕버드나무 그늘을 벗어나 뒤돌아 봅니다.
반곡지 안쪽에는 또다른 저수지가 숨어잇지요.
왕버드나무가 얼마나 크냐고요? 사진으로 보여드립니다.
산책을 마치고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더 많은 방문객들이 오기 전에 자리를 떠봅니다.

비가 내려도 이곳 운치는 충분히 둘러볼 만하다. 저수지에 둘러싸인 경산을 가장 빛나게 하는 곳이다. 물밑에 깔린 진흙을 깨워 저수지를 황토빛으로 물들이고 있음에도 시선을 둘 곳은 많다. 반곡지 건너편 카페 2층에 앉아 통유리 속 반곡지 전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눈이 편안해진다. 오히려 비가 많이 내릴수록 맑은 날 비칠 반곡지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적이다. 내일인 일요일까지 많은 비가 쏟아진다고 했으니 반곡지의 절정은 월요일인 셈이다. 반곡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면 기억하자. 반곡지의 절정은 비 내린 바로 다음날 아침이다.

 

반곡지에서 벗어나기 전 주차장을 담아봤습니다. 여유롭게 둘러보실 분은 아침에 꼭 오세요.
화장실 바로 왼편엔 전기차를 세워 충전할 곳도 있습니다. 배터리도 채울 겸 쉬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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