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연지 송해공원 둘레길, 한 바퀴 둘러보니
8일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시각, 운암지에서 옥연지로 차를 몰았다. 팔달교를 건너 신천대로와 중부내륙선 지선에 올라 달리며 한참을 내려가니 대구 지하철 1호선 종점 설화명곡역이 보였다. 대중교통으로 옥연지를 찾는 방문객들의 환승 거점이다. 대로를 따라가다 나온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니 옥포 벚꽃길이 나왔다. 3월 말과 4월 초 연분홍빛으로 도로를 물들이더니 어느새 나뭇잎들이 돋아나 초록빛을 퍼뜨리고 있었다. 적색등이 깜빡이는 첫 갈림길에서 잠시 멈췄다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에 드넓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호수로 착각할 만큼 규모가 대단하다.
새파란 하늘을 가르는 강한 먼지 바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면의 은빛 물결을 의식하며 굽은 길을 따라가니 송해공원 주차장을 안내하는 큰 간판이 보였다. 입구는 온갖 차들이 지나며 느린 속도로 기차놀이 중이었다. 빈자리를 찾아 순서를 따라 주변을 어슬렁거렸더니 비상등을 점등하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가 보였다. 메마른 땅에 오아시스를 찾은 듯 홀려서 얼른 차를 집어넣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였다. 강한 자외선으로 지면을 바짝 달구는 시각이다. 차문을 열고 나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입구 맞은편에는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과 식당, 편의점이 보였다. 도로는 점심을 먹고 나온 차들로 점점 붐비기 시작했다. 조금만 늦게 왔다면 누군가의 꼬리를 물고 꼬리에 물리며 길에서 시간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유럽식 모습을 한 카페를 지날 즈음 왼쪽을 둘러보니 아득히 먼 둘레길 일부가 희미하게 보였다. 600번 버스를 타고 찾아간 첫 방문 때는 힘에 부쳐서 갔던 길을 되돌아와 버스를 타고 곧장 집을 향했지만 오늘은 차가 있어 든든했다.
울타리가 쳐진 도로 변 산책로를 지나며 굳은 다짐을 했다. 옥연지 위쪽 둑길과 산 사이로 난 데크를 거쳐서 주차장(생태공원 주차장)에 되돌아가겠노라고. 반곡지와 대부 잠수교, 운암지에 이은 넷째 스폿이었지만 걸을 힘과 의지는 충분했다. 버스로 답사도 다녀왔기에 얼마큼 걸으면 다음 길로 이어지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나뭇잎을 가르는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한 버스 승하차장을 마주했다. 첫 방문 때 유가사행 600번 버스에서 내렸던 곳이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몇 번이고 스마트폰을 보며 도로를 둘러봤다. 주말 운행 시간표는 단순 참고용이라 언제 탈 수 있을지 보장을 못한다. 옥연지 건너편에서 겨우 몸을 실었던 달성 2번 버스처럼 말이다.
참조 글 :
2021.04.25 - [잡사진] - 기막힌 날씨에 만난 달성의 봄, 옥연지 송해공원
지난 기억을 떠올리니 어느덧 바람개비들이 반듯하게 선 포토존을 지나고 있었다. 강한 바람을 맞으며 팽그르르 도는 바람개비를 뒤로 넘기니 키 큰 나무와 사람 키만한 관목들이 나타났다. 연둣빛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거쳐 파이프를 둥글게 말아 세운 구간을 지나니 마침내 옥연지 위쪽 둑길에 이를 수 있었다. 물을 뿜어내는 분수대와 풍차, 전망대는 아주 작은 미니어처가 되어 왼쪽 저 멀리서 존재를 알렸다. 오른쪽으로는 넓은 광장을 향하는 계단과 주차장, 배산임수를 철저히 지킨 듯한 작은 사찰(보국사), 그 위로 다른 산책로를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보였다.
둑길 한쪽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다 분홍빛 구름다리에 올랐다. 두 다리 사이로 서늘함이 느껴질만큼 바람은 한층 더 매섭게 불어댔다. 다리가 지면에 단단히 박혀 있어 무섭지는 않았다. 구름다리 난간에 서서 푸른빛의 옥연지를 가만히 바라보니 갑갑했던 무언가가 시원하게 뻥 뚫렸다. 다리를 건너고 계단에 오르니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은 산 정상에 올랐다가 크게 둘러가는 길이였고 왼쪽은 옥연지를 가까이서 마주하며 편안히 걷는 둘레길이었다.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원래 계획했던 둘레길로 발걸음을 향했다.
처음엔 야트막한 오르막이 나왔지만 이후에는 숨이 차지 않을만큼 잘 깔린 흙길이 이어졌다. 햇빛은 온통 우거진 나무에 가려지다 쨍하게 빛나길 거듭했다. 맹렬히 불던 바람도 초록빛 가득한 나무들을 지나며 순해져 갔다. 햇빛을 등지고 조용히 걸어가니 나뭇잎 사이로 빛나는 햇빛을 응시할 여유도 생겼다. 길에서 마주치는 어린아이들마저 표정이 즐겁다. 거친 숨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누군가의 목소리도 멀리 퍼지지 못하고 사방에 깔린 나무들의 지저귐에 금방 묻힌다.
흙길을 따라 기분좋게 걸어갔더니 왼쪽으로 나무계단과 데크가 나왔다. 계단을 걸어내려가니 에메랄드 물빛과 그 밑에 잠긴 몇몇 나무들이 보였다. 바람에 파도치듯 일렁이는 물 위를 걸으니 상쾌하면서 신비로운 느낌마저 든다. 흙길을 한 차례 더 지나니 출렁다리가 등장했다. 한두 사람만 걸어도 다리가 위아래로 춤추며 흔들흔들거렸다. 다리 바닥에 깔린 나무들이 촘촘한 간격으로 깔려서 발 빠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속이 메쓱거리거나 무서우면 위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기왕 왔으니 앞사람을 따라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체중을 발바닥에 실을 때마다 다리가 살랑살랑 몸을 비틀었다. 중심을 잃지 않을 만큼만 흔들려서 짧지만 재밌었다.
출렁다리를 지나니 금굴 체험장(오른쪽)과 생태공원(왼쪽)을 향하는 갈림길이 나왔다. 시간만 더 있으면 오른쪽에 난 동굴(금굴)을 다 둘러보고 나왔을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한여름이라면 뜨거운 태양을 피해 잠시 머물 곳으로 좋겠지만 아직 가야 할 곳이 한 군데 남아서 생태공원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걷다 보니 멀리서 보였던 원형 분수대와 2층 전망대가 점점 가까워졌다. 중간 쉼터와 백세 계단을 거침없이 지나니 사람들의 인적이 더 많아졌다. 대부분 옥연지 아래의 생태공원을 돌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백세게단 바로 밑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전망대에 올라 시원하게 물을 쏘는 분수대와 느릿느릿 돌아가는 풍차를 바라보며 운치를 잠시 즐겼다. 전망대 뒤쪽 풍경을 바라보다 계단을 내려왔다. 생태공원 한쪽에 마련된 인공 습지와 정원은 눈요기로 가볍게 스쳐 지났다. 첫 방문 때 이곳저곳 천천히 들여다보며 구경을 실컷했기에 사진 하나 담지 않고 넘길 수 있었다.
차로 돌아오니 안은 전자레인지를 돌리다 만 듯 열이 바짝 올라 있었다. 동반자석 뒤쪽 창문을 살짝 내려 차 밖에서 차문을 여닫고 들어오니 좀 나아졌다. 에어컨을 켜고 달아오른 몸의 열을 식히며 탄산수를 마셨다. 마스크를 꿰뚫고 날아든 먼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비상등을 점등하니 바로 앞을 지나려던 차가 멈췄다. 빈자리를 찾아 어슬렁거렸던 한 시간 전의 나를 돌아보는 듯했다. 얼른 자리를 비우고 출구를 따라 나가니 시계는 벌써 오후 3시를 넘고 있었다. 한 군데만 돌면 저수지 일주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어서 차를 움직여야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