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장미 다 모인 이곳, 이곡 장미공원
일요일 오후 1시 반, 에코백을 챙겨 집 밖에 나왔다. 절정을 갓 지난 이곡 장미공원을 찾아가기 위함이었다. 온도는 28도, 구름 조금에 미세먼지 보통 수준으로 초여름 날씨였지만 습도가 낮아 꿉꿉하지 않았다. 그늘 밑에 있으면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날이었다.
집 앞 버스 승하차장에서 939번 버스를 탔다. 환승 거점인 대구 지하철 2호선 대공원역에서 509번 버스로 갈아탔다. 만촌동과 범어동을 누비던 버스는 3호선 모노레일을 잠시 따라가더니 다시 반고개역부터 지하철 2호선 경로를 따라 이곡역까지 내달렸다. 첫 환승 후 1시간 넘게 달리던 버스는 이곡역 우측의 아파트 단지 안쪽에 자리 잡은 이곡 장미공원을 향했다. 공원 건너편 승하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를 가리켰다.
횡단보도 앞에 서니 자잘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였다. 공원 규모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나오는 작은 근린공원 정도인데 방문객들이 엄청 많았다. 몇몇 외국인 일행과 한데 뒤섞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인증샷에 방해될까 자리를 비켜주기 바빴다. 기족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도 보였으나 연인 위주의 방문객이 더 많았다. 벤치가 사방에 깔려 있어도 쉴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포화상태였다. 인적 뜸한 일요일 오전에 찾아갈 걸 그랬다.
공원에 깔린 장미들은 절정을 갓 지난 상태였다. 비를 온통 맞아서 꽃잎이 반 이상 흐트러진 곳도 있었고 꽃받침에 간신히 기대 노랗게 시든 장미도 보였다. 일주일 일찍 왔다면 더 싱싱한 장미를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장미밭 사이를 마구 지나다녀서 밟힌 흔적도 보였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러졌다. 그 와중에 마스크를 살짝 내려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미꽃을 눈으로 즐기려 했는데 그런 광경을 보게 돼 힐링 기운이 오래가지 못했다.
몇몇 아쉬움을 만회했던 건 늦게 활짝 핀 장미꽃들이었다. 꽃잎을 풍성하게 늘어놓은 슈퍼스타, 한 줌의 귤껍질을 별려놓은 듯 피어난 오렌지 딜라이트, 무릎보다 낮은 키로 아담히 만발한 안데르센, 강렬한 흑적색으로 시선을 끌던 라바 글루트, 겹겹이 분홍빛을 담아낸 로즈어드 샤틀렛 등 이름을 한 장미꽃들이 반기고 있었다. 포토존으로 꾸며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구간은 뒤로 넘겨버렸다. 참고용 사진만 몇 장 찍어둘 뿐.
한 바퀴 더 돌며 구석구석에 숨은 장미꽃을 더 살폈다. 카네이션처럼 꽃잎을 예쁘게 둘러싼 데임드꼬르, 올곧게 자라나 주홍 꽃잎을 틔우던 하모니, 연분홍빛으로 듬성듬성 나 있던 둡트로쉬, 노란색 암수술을 훤히 드러낸 조지 베스트, 노란색과 주황색을 뽐내며 은은한 향을 내던 사이운, 동글동글 말린 솜털처럼 피어난 마리아 테레지아, 관찰 위치에 따라 꽃잎 색이 달리 보였던 벨베, 귀한 손님께 달아줘야 할 것만 같은 프레지던트 엘 생골 등 온갖 이름을 한 장미들이 스쳤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몰랐을 이름들이다. 똑바로 자라는 장미가 있는가 하면 넝쿨식물처럼 대를 세워서 기르는 장미도 있었다. 벚꽃도 왕겹벚꽃이 따로 있듯이 장미 꽃잎마다 크기도 다르고 색깔, 핀 모양, 향 하나하나가 다 달랐다. 종이 접기로 정의된 장미는 한두 종류뿐이지만 두 눈에 담긴 장미들은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절정에 만났더라면 더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