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반곡지, 초가을 풍경은 이랬습니다
반곡지는 경산의 가장 대표적인 힐링 스폿입니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지역 내 인스타 명소로 불립니다. 봄에는 복사꽃, 여름에는 녹음 짙은 왕버드나무,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뒷산과 공존하는 시골 정취, 겨울에는 거울처럼 비치는 잔잔한 저수지 풍경을 보려고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날 좋은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군가는 이곳에서 에너지를 얻고 가족과 추억을 만들기도 합니다.
지난 토요일(24일) 찾아간 반곡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점심 무렵 차를 대고 내리니 따사로운 햇살, 청량한 공기, 어딘가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이 주위를 에워쌉니다. 흰 선만 그어졌던 공영 주차장에는 장애인, 여성, 경차 전용 주차면이 따로 생겼고 경계가 모호했던 출입구 위치도 분명해졌습니다. 전기차 배터리를 채우는 50kW급 급속 충전소 2기도 잘 운영되고 있더군요. 맞은편에는 윌로우 반곡 247, 두낫디스터브 간판을 단 카페 두 곳이 문을 열었습니다.
산책로는 주차장에서 시작됩니다. 오른편으로 난 나무 데크를 또각또각 걷다가 건너편 왕버드나무를 향해 지그시 바라보며 눈을 풀어야 하는데 아직 데크 정비를 마치지 못했더군요. 저수지 변두리에 둥둥 뜬 개구리밥(부평초)은 연못을 되살리는 부레옥잠과 비슷한 역할(수질 개선)을 합니다. 간혹 개구리밥 떼를 녹조로 오인해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인지 안내 현수막도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시선을 멀리 두며 두 눈을 굴리다 도로변 산책로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양수기가 설치된 복숭아 밭을 거닐다 난간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정면으로 산을 마주 보며 사진 한 컷, 점차 가까워진 왼편의 왕버드나무 몇 그루를 한 뭉텅이로 잡고 또 한 장 담았습니다. 근처를 지나던 방문객 몇몇은 제가 서 있던 포인트대로 폰을 꺼내 사진을 찍더군요. 사진은 머릿속에 만들어진 액자틀대로 그 순간을 담기만 하면 됩니다. 세월을 낚는다는 낚시와 비슷합니다.
어느새 모퉁이를 돌아 흙길로 접어듭니다. 걸음을 늦추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시야를 넓힙니다. 어디를 4:3 액자틀로 씌워 담을지, 비율은 얼마나 잡을지 차분히 계산을 마칩니다. 한 번은 키 큰 왕버드나무를 피사체로 잡아서 세로로 길게 찍고 나뭇가지 밑을 지나는 시점, 왕버드나무 그늘 아래에 머무르다 저수지로 뻗어 내린 나뭇가지를 가만히 지켜보며 셔터 누를 시각을 잽니다.
어디선가 날아온 새들도 옹기종기 모여 발을 담급니다. 기다란 머리를 숙여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주둥이로 날갯죽지를 훑습니다. 예쁘게 꽃단장이라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단장을 마친 한 무리는 수중에 뜬 굵은 나뭇가지로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어릴 적 봤던 반상회 같기도 합니다. 시원한 왕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동심원을 그리며 유유자적의 삶을 즐기는군요.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며 잡생각을 한참 지우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 왼쪽에 난 작은 둑길로 나와서 햇볕을 쬡니다. 둑 왼쪽 아래엔 비닐하우스, 오른쪽에는 또 다른 저수지가 있습니다. 여기부터는 개인 사유지 영역이라서 잠깐 눈으로만 쓱 둘러보고 자리를 뜹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살짝 허기가 집니다. 머릿속에 꿍쳐 둔 짐을 저수지에 풀었더니 나른해집니다. 뭐라도 한 잔 하고 갈까 싶어 카페를 찾았습니다. 두낫디스터브 반곡지점입니다. 3층 규모로 세워진 건물 중 1층과 2층을 꾸며서 카페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층고는 2.5~3m 이내로 보였고 천장과 벽면은 노출 콘크리트, 'ㄴ(니은)'자 구조로 아늑하면서 햇빛이 잘 들어오게 꾸몄더군요. 실내 분위기는 필요한 집기류만 가져다 놓은 듯 수수했습니다.
첫 방문 음료로 뭘 주문할지 메뉴판을 살핍니다. 평소 같았음 아메리카노 혹은 카페라떼를 주문해서 기본기를 가늠했겠지만 주말인 이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어떤 메뉴가 잘 나가는지를 물었더니 아인슈페너와 스윗 아몬드 라떼를 추천하더군요. 아인슈페너야 다른 데서도 마실 수 있으니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라 주장하는 스윗 아몬드 라떼(아이스)를 마셔보기로 합니다. 가격은 7천 원입니다.
주문 후 간소하게 진열된 베이커리 코너로 넘어갑니다. 큐브 페스츄리(페이스트리), 빨미까레, 초코크림 크루아상이 놓인 트레이를 바라보다 음료가 나왔습니다. 사각 나무틀 안에 놓인 음료의 양은 스타벅스 그란데 사이즈 만합니다. 밤색에 가까운 진한 빛깔이 시선을 끕니다. 트레이 표면은 생각보다 미끄러워서 옮길 때 균형을 잘 잡아야겠군요.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며 2층 창가로 발을 내딛습니다.
2층은 1층보다 햇빛이 더 잘 들어와서 더 밝고 넓습니다. 구석에 마련된 원목 책장, 일자로 긴 테이블에 놓인 화분 몇 개, 2~3인석으로 준비된 테이블과 의자 여럿이 전부지만 간격이 넓어서 여유로워 보입니다. 어디쯤 앉을까 주위를 둘러보다 주차장이 잘 보이는 우측 모퉁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저으면 저수지가 바로 보이는 자리입니다.
햇빛을 반쯤 걸치며 스윗 아몬드 라떼를 한 모금 마셔봅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단맛이 입 안을 적시더니 커피와 아몬드의 고소한 후미가 장악하며 여운을 남깁니다. 커피 믹스로 가끔 휘휘 저어 마시는 스틱 커피보다 깔끔하고 무거운 단맛의 카페 모카보다 바디감이 가볍습니다. 빨대로 휘저으면 우윳빛이 더해져서 빛깔이 한 톤 밝아집니다. 첫 맛보다 정제된 단맛, 부드러움이 더해집니다. 다음에 들르거든 카페라떼도 한 잔 해봐야겠습니다.
카페가 들어서니 반곡지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습니다. 둑길 한 바퀴 돌고 차에서 잠깐 쉬었다가 자리를 뜨곤 했는데 지금은 머물다 갈 여유가 생겼달까요? 비가 내리고 난 맑은 날이면 이곳 운치가 더 깊어지는데 그때쯤 한 번 더 찾아가서 울긋불긋한 반곡지를 두 눈에 오롯이 담아야겠습니다. 다가올 다음 주말이 기다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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