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은행나무숲, 가을 분위기에 반했습니다
지난 토요일(4일) 카셰어링 앱 그린카로 레이를 또 빌렸습니다. 경산에서 차로 한 시간 걸리는 '고령 은행나무숲(다산 문화공원 옆)'에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더 미루다간 절정을 놓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달까요?
아침 9시가 되기 전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10분쯤 걸려서 카셰어링 존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전날 밤 사둔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웠는데 길 건너 뚜레쥬르가 보이네요.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가 오븐의 온기가 채 식지 않은 단팥빵, 슈크림빵 하나씩 담고 운전하면서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샀습니다. 목발 짚고 헐레벌떡 숨을 고르며 카셰어링 존으로 향합니다. 세 번째 만남인 더 뉴 레이는 멀리서 봐도 알아볼 만큼 익숙해졌습니다.
동반자석 뒤편 슬라이딩 도어를 열어 목발을 눕히고 차 주변을 어슬렁거립니다. 어딘가 상처가 생겼나 싶어 둘러봤더니 안팎은 다행히 며칠 전 탔던 그대로입니다. 늘 그랬듯 차를 빼내 한 바퀴 돌면서 차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가 내비게이션을 두들깁니다. 통합 검색란에 '은행나무숲'을 입력했더니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제일 위에 뜹니다. 주차장으로 위치를 잡고 목적지 설정을 누르니 은행나무숲까지 약 1시간이 걸리겠다는 안내가 나옵니다. 카카오맵으로 사전 조사한 출발 도착 예측 시간이랑 별 차이가 안 나는군요.
찾아가는 길은 간단했습니다. 대구 지하철 2호선이 깔린 달구벌대로를 잠시 달리다 대구스타디움이 있는 '유니버시아드로'로 방향을 틉니다. 지하차도를 쭉 지나면 나오는 범안삼거리에서 좌회전(대구 3호선 용지역 방면)합니다. 유로 톨게이트 두 곳(삼덕 TG, 앞산 TG)을 거쳐 똑바로 가다가 유천네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습니다(대구 1호선 화원역 방면). 화원삼거리에서 우회전 후 직진하다 사문진교를 건너서 나오는 큰 사거리에서 좌회전합니다(다산중학교 방면). 다산중학교 지나서 나오는 교차로에서 유턴 후 월성교회를 끼고 조금 더 가서 우로 꺾으면 도착입니다.
아침 9시 반부터 레이를 부지런히 몰았더니 정말로 한 시간 걸려서 은행나무숲에 도착했습니다. 순정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주차장은 코로나19 이후 폐쇄된 곳인데 아직 지도에 반영이 안 된 모양이네요. 기존 주차장 진입로는 볼라드(차단봉)를 세워서 막아놨습니다. 사람이랑 자전거만 지날 수 있도록 길을 다듬었더군요. 차는 진입로 위쪽 공터에 세웠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열 대 안팎의 차들이 여유롭게 주차돼 있었습니다.
샛노랗게 물든 이곳 은행나무들은 가로수로 보이는 보통 은행나무들보다 키가 월등히 커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둑길 위에서 멀리 바라만 봐도 규모가 상당합니다. 비탈진 경사로를 따라 쭉 내려가 안내도를 살폈습니다. 관광안내지도 옆에 표시된 낙동강 자전거길 구간만 무려 17km(강정고령보~봉화산)에 이릅니다. 은행나무숲은 이 길목의 중간지점으로 생각하면 되겠군요. 굽은 정도가 완만하고 평지 위주로 잘 닦여서 자전거 라이딩하기에 좋아 보입니다.
안내도를 등지고 흙길을 걸으면 은행나무숲을 가까이서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투싼 하이브리드로 4, 5월쯤 찾아간 이곳은 그냥 초록으로 우거져서 다른 특색이 없어 보였는데 11월 초에 찾아가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유치원생 모자처럼 노란 옷을 갈아입으니 제대로 된 가을 정취가 전해집니다. 나무 사이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도 분위기 있는 사진을 담기 좋습니다. 가로와 세로를 각각 3등분하는 보조선을 켜서 찍으면 한층 수려하고 울창한 장면이 담기기도 합니다.
입구 주변에서 사진 몇 장 담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낙동강변으로 향하니 좌우로 갈림길이 나옵니다. 한 번만에 숲 전체를 다 둘러보기는 힘들어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보고 싶은 만큼 천천히 둘러보자는 생각에 걸음을 늦췄습니다. 길 양쪽에 나란히 선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시작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봅니다. 만족할 만한 이미지가 뜰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다 셔터를 누르기도 하고 어떤 의도로 사진을 담을지를 고민하며 또 한 번 셔터를 누릅니다.
평소엔 1배 아니면 2배 줌으로 사진을 찍는데 오늘 만은 예외였습니다. 한동안 쓰지 않던 0.5~0.7배 초광각 줌으로 촬영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폰을 거꾸로 들어 어린아이 시선에서 바라보는 숲을 담기도 합니다. 몸 상태가 괜찮았더라면 자세를 더 낮춰서 다른 구도로 더 다양한 사진을 담았을지도 모릅니다. 은행잎과 산산이 부서진 열매를 지르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니 마치 다른 나라의 숲 속을 거닐 듯 마음이 들뜹니다.
가을바람에 은행잎들이 살랑살랑 속삭일 때면 자연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또각또각 어디선가 나무를 쪼는 소리, 작은 둥지 사이를 오가는 새들의 지저귐, 바람 한 점 없이 적막해지는 그 순간을 느끼려 애씁니다. 복잡한 생각은 이곳에서 지우고 그저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빽빽한 은행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마주하며 숨을 고르다가 왔던 길을 저벅저벅 되돌아갑니다.
강변에 난 산책로를 따라 둥글게 한 바퀴 도니 3, 40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억새밭이 흔들리는 갈림길 앞에서 더 갈까 말까 생각하다 오늘은 이쯤에서 정리하고 돌아가기로 합니다. 시계는 어느덧 11시 반을 가리킵니다. 한동안 쉼 없이 푹신하거나 포슬포슬한 흙길을 밟으니 자동차로 비포장도로를 다닌 듯 허기가 금방 몰려왔습니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를 외치던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처럼요.
점심 무렵이 되니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어림잡아 열댓 명이 모여서 안부를 살피던 자전거 라이더 일행 말고도 가족 단위로 찾아와 돗자리 펼칠 준비를 하던 사람들, 삼각대와 DSLR 카메라를 챙겨 와 화보 사진을 찍으려는 어느 스튜디오 일행도 눈에 보였습니다. 더 몰리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이 옆자리 방석에 놔둔 단팥빵과 슈크림빵, 마시다 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계속 떠오릅니다.
은행나무 숲으로 내려가기 전보다 목발을 서둘러 접었다 펼치며 둑길 위로 올라섭니다. 방문객들이 부쩍 늘어서인지 벌써 공터의 반 이상이 어디선가 찾아온 차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먹고 커피 한 잔 걸칠 오후에는 인파로 바글바글해지겠다 싶더군요.
슬라이딩 도어를 열어 목발을 집어넣고 동반자석에 앉아 빵 봉지를 펼쳤습니다. 옆창을 반쯤 내려 빵 몇 번 베어 먹고 차가운 커피를 몇 모금 마시니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어릴 적 대추밭에서 일하다 빵이랑 우유로 허기를 달래던 새참 같습니다. 특히 뚜레쥬르의 부드럽고 적당한 단맛의 슈크림빵은 아메리카노랑 더 잘 어울리는 느낌입니다. 하나 더 살 걸 그랬습니다.
얼추 정리를 하고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우리집'으로 저장해 둔 목적지로 바로 안내를 누르니 오후 1시가 안 돼서 도착하겠다는 내용이 뜹니다. 이날 예정된 차 반납 시각은 오후 2시라서 카셰어링 존 말고 다른 데를 살짝 들렀다 가기로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쉬는 주말에 차 끌고 나가면 피곤하다는 사실을 되새김질하며 이마트 경산점을 찾아갔습니다. 통행량 많은 도로에 접어들며 차가 잠시 막히자 길 위의 동반자 어플레이즈를 켜서 엔진 소리만 들리던 차 안을 깨웁니다.
오후 1시 무렵 도착한 이마트 경산점 지상 주차장엔 온갖 차들이 한데 모여서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회전율이 좋아서인지 자리가 금방 나더군요. 덩치 큰 레인지로버랑 그랜저 IG 사이로 레이를 집어넣으니 좌우가 든든합니다. 여기서 사갈 품목은 스타벅스의 세트 메뉴인 치즈 베이글과 아이스 카페 아메리카노였습니다. 재고가 없어서 블루베리 베이글로 바꾸고 테이크아웃으로 포장해 집으로 곧장 가져갑니다.
집에 잠시 들렀다 나와 정평역 인근의 카셰어링 존으로 향합니다. 1시 반쯤 도착해 주행 정보를 살폈더니 생각보다 연비가 잘 나왔습니다. 2시간 반 동안 68.6km를 달린 평균 연비가 17.3km/l였습니다. 송풍 모드로 공조기를 돌리고 가속 페달을 덜 밟는 타력 주행 구간이 길어서 연료 소모가 적었던 걸로 보입니다. 카셰어링 존에서 은행나무숲까지(31.5km, 57분)는 평균 연비가 18.2km/l였습니다. 주행 요금은 km 당 170원씩 해서 1만 1,730원, 통행료는 왕복으로 1,900원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차를 빌릴지 생각해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