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스즈메의 문단속, 솔직 감상 후기

커피스푼 2023. 3. 1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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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을 두 번 보고 왔습니다(8일은 CGV, 10일은 메가박스).
스즈메의 문단속을 두 번 보고 왔습니다(8일은 CGV, 10일은 메가박스).

어제(10일) 메가박스 대구신세계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을 보고 왔습니다. 작품 '언어의 정원',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으로 잘 알려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작입니다. 일본에서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2년 12월)보다 한 달 먼저 개봉됐는데 우리나라는 슬램덩크를 올 1월로 앞당기고 스즈메의 문단속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로 미뤘더군요. 전작 '날씨의 아이(2019)'가 대중성에서 벗어난 서사로 흥행을 이끌지 못했으니까 국내 배급사 및 영화사들이 파급력 좋은 슬램덩크부터 스크린에 올리기로 결정한 게 아닐까 싶더군요. 스즈메의 문단속은 볼 만했을까요?

 

 

스즈메의 문단속 2차 예고편입니다(출처 : 컬처앤스타 유튜브 채널, 2분 4초)

작품을 대변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지진'이었습니다. 일본 열도 속 재앙의 근원 '미미즈'가 인간들의 세상에 출현해 대지진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요 곳곳의 뒷문을 걸어 잠가 액운을 쫓는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허구적 세계관이 바탕이 됐던 혜성 충돌(너의 이름은), 기후 재난(날씨의 아이) 이야기보다 기획 구성이 섬세하더군요. 팩트(fact) 위에 픽션(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으로 일본의 지진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스즈메(왼쪽 위)와 의문의 남자(오른쪽 아럐)를 만나던 장면(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스즈메(왼쪽 위)와 의문의 남자(오른쪽 아럐)를 만나던 장면(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작품은 꿈속에서 엄마를 찾던 주인공 이와토 스즈메의 회상 씬(scene)에서 시작됩니다. 사고로 엄마를 잃고 규슈 미야자키 현 바닷가 마을에서 이모(이와토 타마키)와 단둘이 살던 2학년 여고생 스즈메는 통학길에 한 남자를 마주칩니다. 자동차나 자전거로 올라갈 법한 오르막을 혼자 걷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는지 자전거를 세웁니다. 지나가던 남자는 스즈메에게 문이 있는 폐허 위치를 묻습니다. 대강 일러주고 철길 건널목까지 내려간 스즈메는 신원 미상의 남자가 계속 신경 쓰여서 자신이 일러준 폐허로 찾아갑니다. 주위를 둘러보며 남자를 찾던 그때 수중에 오롯이 서 있는 문을 발견합니다.

 

 

폐허 속 수중의 문을 연 스즈메(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폐허 속 수중의 문을 연 스즈메(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발목 깊이의 수중을 걸어가 문을 연 스즈메는 눈앞에 보이는 다른 세상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발을 내딛고 넘어간 순간 스즈메가 본 세상은 사라지고 원래 세계가 다시 나타납니다. 이질감을 느끼며 몇 차례 건너뛰던 스즈메는 문 근처에 박힌 길쭉한 돌을 들어 올립니다. 유심히 살피던 돌이 갑자기 털북숭이 동물로 바뀌더니 폴짝폴짝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스즈메는 무서워하며 자리를 벗어납니다.

 

 

스즈메가 열어 둔 문을 남자가 닫으려 하는 모습(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스즈메가 열어 둔 문을 남자가 닫으려 하는 모습(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점심시간 학교에서 도시락을 펼치던 스즈메는 창밖의 뭔가를 보고 얼굴이 굳어버립니다. 점심 먹던 친구들에게 창밖에 뭔가 연기가 보이지 않느냐며 묻지만 친구들은 뭐가 보이는 거냐며 헛것을 본 듯한 스즈메를 나무랍니다. 아연실색한 스즈메는 자신이 다녀간 폐허를 다시 찾아갑니다. 설마 하며 찾아간 열린 문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악의 기운들이 빠져나오는 중이었습니다. 아침에 만났던 남자가 문을 닫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기세가 강해 내팽개치고 맙니다. 스즈메는 바닥에 넘어진 남자를 일으켜 세우며 같이 문을 닫기로 합니다.

 

음산한 기운이 마을에 깔리며 지상의 흔들림이 커지자 천장의 날카로운 구조물이 스즈메를 향해 떨어지려 합니다. 지켜보던 남자는 스즈메를 구하며 왼쪽 팔을 스칩니다. 아랑곳 않던 남자는 스즈메와 힘을 합쳐 문을 닫고 천지신명께 고하는 주문을 외운 뒤 "돌려드리옵니다!"라며 자물쇠 걸어 잠그는 시늉을 합니다. 뒷문이 잠기자 짙게 깔리던 액운이 수많은 빗방울로 바뀌며 날이 걷힙니다. 기이하게 여긴 스즈메는 병원에 가지 않겠다며 떼쓰던 남자가 신경 쓰여서 자신의 집에서 상처를 소독하기로 합니다.

 

 

스즈메의 집에 찾아온 이 고양이는 소타를 의자로 변신시킵니다(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스즈메의 집에 찾아온 이 고양이는 소타를 의자로 변신시킵니다(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남자는 죽은 자의 세계(저세상)를 떠도는 미미즈가 인간들의 세계(현세)에 들어와 재난이 생기지 않도록 문단속하는 '토지시'라는 가업을 맡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의 이름은 '무나카타 소타', 도쿄에서 머물며 선생이 되기를 바라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일본 전국 각지를 돌면서 미미즈가 출현할 뒷문들을 걸어 잠그던 차에 스즈메를 만나게 된 겁니다. 통성명하며 사담을 나누던 그때 창가에 빼빼 마른 의문의 고양이 '다이진'이 나타납니다. 먹이를 주며 상냥하게 대하던 스즈메가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다이진은 "너는 방해된다"라며 노란색 유아용 의자에 앉아있던 소타를 의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한순간에 다리 세 짝의 유아용 의자가 된 소타는 "내게 무슨 짓을 벌인 거냐?"라며 다이진을 곧장 추격합니다. 스즈메는 소타의 봉인용 열쇠를 챙겨서 엉겁결에 뛰쳐나옵니다. 현관에서 마주한 타마키 이모의 걱정을 뿌리치고 부둣가까지 끊임없이 달려갑니다. 다이진과 소타가 사람들 틈 사이로 에히메행 페리(여객선)에 오르자 한숨을 내쉬며 자신도 뒤따라갑니다. 두 주인공이 뱃머리까지 추격하자 다이진은 기둥으로 재빠르게 펄쩍 뛰어올라 작고 빠른 배로 갈아탑니다. 꼼짝없이 무임승차한 스즈메는 이모에게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며 둘러댑니다.

 

 

스즈메 일행은 SNS에 올라간 다이진 소식을 보고 따라갑니다(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스즈메 일행은 SNS에 올라간 다이진 소식을 보고 따라갑니다(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다음날 아침 에히메항에 닿은 스즈메와 소타는 누군가 SNS에 올린 다이진의 흔적을 뒤쫓기로 합니다. 바닷가에서 전철에 오르며 명예역장이 된 다이진을 보며 기가 찬 스즈메 일행은 바닷가 안쪽의 한 시골길을 걷게 됩니다. 앞서 가던 오토바이에서 내리막을 따라 구르던 귤을 순간의 기지로 모조리 줍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동갑내기 친구 아마베 치카를 알게 됩니다. 통성명 도중 스즈메가 얼굴이 굳으며 산사태로 폐허가 된 학교로 뛰어가자 치카는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스즈메를 태웁니다.

 

 

소타를 대신해 열쇠를 꽂는 스즈메(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소타를 대신해 열쇠를 꽂는 스즈메(이미지 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의자로 변한 소타가 앞장서며 문을 닫으려다 열쇠를 놓치자 뒤따르던 스즈메가 재빨리 줍습니다. "죽는 게 두렵지 않냐?"는 소타의 말에 즉시 "두렵지 않다"라며 있는 힘껏 문을 잡아당깁니다. 학교에 지내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는 소타의 조언을 따라 연상하던 스즈메는 소타의 주문과 봉인 선언(돌려드리옵니다!)에 맞춰 미미즈의 2차 출현을 막아냅니다.

 

흙투성이가 된 스즈메는 치카네 부모님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집니다. 저녁 식사 직전 라인 메신저로 타마키 이모의 잔소리 폭격이 이어지자 스즈메는 "남자친구나 좀 사귀시지..."라며 투덜거립니다. 치카에게 한편으로는 "이모의 시간을 자신이 뺏은 것 같아 미안하게 느껴진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명랑해 보이지만 다정한 구석이 있는 스즈메의 성격이 잘 드러나더군요.

 

 

다이진은 보기 보다 대범한 고양이입니다(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다이진은 보기 보다 대범한 고양이입니다(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3일 차 아침이 밝자 다이진이 TV 프로에서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됩니다. 아카시 대교 주탑을 건너던 장면이 전파를 타고 실시간 생중계되던 모습이었습니다. 아카시 대교를 건너고 나면 본토(혼슈)의 고베로 넘어가게 됩니다. 지체할 수 없던 스즈메는 즉시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치카랑 껴안으며 헤어집니다. 교복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남들 눈에 띈다며 여벌의 옷을 챙겨주던 치카의 마음 씀씀이도 인상적이더군요. 단 하루 만에 저렇게 속 깊은 사이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근처 시골 버스 정거장에서 고베행 시외버스가 오기 만을 기다리던 그때 한 미니밴이 멈춰 섭니다. 행선지를 일러주자 네 살 난 쌍둥이 애들을 데리고 고베로 가는 길이었다며 스즈메를 데려다 주기로 합니다. 고베에서 작은 식당을 하던 점주 니노미야 루미는 근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어린이집에서 한 통의 문자를 받습니다. 감염자가 생겨서 애들을 맡아줄 수 없다는 맥락의 내용이었는데 대신 맡아줄 사람으로 스즈메를 바라봅니다.

 

하는 수 없이 애들과 같이 지내게 된 스즈메는 활력 넘치는 쌍둥이 곁에서 놀아주다 지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소타가 기어 나와 말타기 놀이를 해줍니다. 토지시를 겸한 교사 지망생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를 특화 스킬이 아녔나 싶더군요. 깊은 밤 스낵 바로 변신한 식당에 온갖 사람들이 몰리자 스즈메는 잡일을 거드는 아르바이트생이 됩니다. 몇 시간 일하다 술상 가운데에서 대접을 받던 다이진이 눈에 띕니다. 눈치챈 다이진이 밖으로 나가자 스즈메랑 소타도 덩달아 밖에 나옵니다. 산 중턱 폐장된 놀이동산에서 미미즈의 기운이 퍼지기 시작하자 곧장 달려갑니다.

 

 

미미즈의 2차 출현을 막던 고베의 어느 놀이동산(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미미즈의 2차 출현을 막던 고베의 어느 놀이동산(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소타는 이번에야말로 다이진을 놓치지 않겠다며 추격 의지를 불태웁니다. 스즈메는 놀이동산 안쪽 관람차의 뒷문에서 미미즈가 나오려 하고 있다고 알립니다. 소타는 스즈메에게 뒷문 봉인을 부탁하며 자신은 다이진을 뒤쫓겠다고 합니다. 과연 계획대로 미미즈의 출현을 막아내고 의자로 변한 소타가 다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도쿄 땅을 밟으며 새 인물들이 합류합니다(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도쿄 땅을 밟으며 새 인물들이 합류합니다(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스즈메 일행의 여정은 고베와 도쿄를 거쳐 센다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스즈메를 지나치게 걱정하던 타마키 이모를 비롯해 새로운 인물이 여정을 함께하게 될 겁니다. 작품 중간에 센다이시를 지나며 나온 '귀환곤란구역' 표시는 12년 전에 벌어진 '도호쿠 지방 태평약 해역  지진(동일본대지진)'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지만 그때 입은 마음의 내상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엄마의 유품을 꼭 끌어안은 스즈메(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엄마의 유품을 꼭 끌어안은 스즈메(출처 : 스즈메의 문단속 스틸컷, 메가박스).

작품에서 감동을 끌어내는 속 깊은 장치는 더 극적이었습니다. 로손 편의점, 아쿠아 생수 등 간접 광고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걸 인지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장면들이 많았기에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극 후반부 들어 모든 감동을 쥐어짜 내는 구조로 연결되기 때문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날씨의 아이'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대중적이면서 '너의 이름은'에 버금가는 수준의 스토리 균형, 문학에서 주로 다루는 '수미상관식(시에서 첫 연과 마지막 연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전개가 잘 드러나 있어서 감동이 더 배가 됐습니다.

 

 

CGV에서 스즈메의 문단속 1주차 현장 경품으로 나눠주던 A3 포스터와 스티커입니다.
CGV에서 스즈메의 문단속 1주차 현장 경품으로 나눠주던 A3 포스터와 스티커입니다.

오래간만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작품 퀄리티에 신경을 좀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별 평점을 매긴다면 5점 만점에 4점에서 4.5점 사이가 됩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다음으로 N차 관람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느껴지던 작품이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식 정공법이 잘 밴 느낌이랄까요? 돌려 까기 없이 당시 받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스하게 위로하는 메시지, 지난 과거가 남긴 흉터를 거울삼아 더 당당하게 미래를 살아가자는 메시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왜 일본인들이 눈물을 적시며 이 작품을 봤을지 공감이 가더군요. 아직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보고 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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