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어느 여름, 경산 반곡지
장맛비가 잠깐 멈춘 일요일 오후, 차 시동을 걸었습니다. 달콤 짭짤한 콜드브루를 받아서 찾아간 곳은 반곡지입니다. 시간이 텅 빈 주말이면 늘 생각나는 물멍스폿인데요. 지난 며칠 비가 쉬지 않고 내렸음에도 이곳 주차장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낡고 오래된 티가 나던 화장실은 컨테이너형 신축 화장실로 완전히 변경됐고 바로 건너편 카페 두 곳엔 어딘가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왜 이리 많았을까요? 이날의 반곡지가 보여준 그림은 제 머릿속 물음을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며칠 새 비가 쉬지 않고 내려서인지 한눈에 봐도 물이 많고 탁도가 낮아져서 물빛에 반사된 주변 풍경들이 오늘따라 선명했습니다.
구름으로 빈틈이 없던 하늘은 푸른 물감을 풀어서 사람들의 넋을 잠시 홀리고 있었습니다. 늘 보던 그림과 달랐기에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말았습니다. 뚜벅뚜벅 산책로를 걷던 주변 사람들도 평소 못 보던 그림을 본 모양인지 하늘을 가리키다 사진을 담기 시작합니다. 자연이 그린 진귀한 그림을 바라본 순간 드는 사람들의 생각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건너편 나무를 향해 왼쪽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갑니다. 전망 덱(deck) 앞에서 마주한 뒷산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록이 짙고 풍성했습니다. 현대 문명의 이기로 피로에 절어서 뻑뻑하던 두 눈이 그 짧은 시간에 맑아지며 촉촉해집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느끼며 걸었더니 왕버드나무 군락에 금세 가까워졌습니다. 길게 뻗은 가지가 축 늘어져서 물가에 닿을락 말락 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인상적입니다. 물가를 등지고 굳세게 일어난 다른 나무랑 대비를 이루기도 합니다.
흙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이 나무들은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넓은 그늘을 내주기도 하고요. 어설프게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가정의 여름철 필수품이 된 선풍기, 에어컨, 제습기는 이곳에서 안 통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으면 사방이 탁 트인 갤러리를 둘러보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산을 바라보며 나무가 우거진 물가를 걸으니 한국의 풍수지리설에서 흔히 말하는 배산임수가 따로 없습니다.
예전에는 주변 농가로 물을 대기 위한 좁은 의미의 저수지에 지나지 않았겠지만요. 도시화로 녹색 지대가 줄어든 요즘은 이런 저수지의 존재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드라마 촬영지, 사진작가들이 주로 모이던 이곳 반곡지는 일반 시민들의 마음 안정을 돕는 휴식처로 의미가 넓어졌습니다. 자연을 보듬고 가꾸는 문화도 몇 년 전보다 한결 나아졌죠.
반곡지는 어떤 이들에겐 '또곡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한 번 둘러보면 어떻게든 또 가게 만드는 그런 저수지이거든요. 고층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만들어진 새로운 저수지도 생겨났지만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요. 밤이면 예쁜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저수지도 나름의 매력이 있겠으나 옛것을 간직한 반곡지의 그림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입니다.
누누이 말하건대 반곡지는 비가 온 직후, 비가 내린 그다음 날의 그림이 예쁩니다. 흥미와 호기심이 생겼다면 한 번 찾아가 보길 권합니다. 산책로를 다 돌고 나면 바로 옆 카페에서 고소한 커피 한 잔도 잊지 않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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