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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저녁 뷰 운암지, 이건 못 참지 본문
멀고 먼 운암지를 다시 찾았다. 낮밤의 풍경이 서로 다른 것처럼. 운암지의 저녁 뷰도 분명히 다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동대구역 버스 승하차장에서 937번 버스에 올라 50분이 지났을까. 화성 센트럴파크를 갓 지난 정거장에서 하차 후 운암중학교를 향해 10분을 걸었다. 옷깃을 스치며 불어오는 서늘한 봄바람을 맞으며 운암지 수변공원에 도착했다. 흔한 저수지의 저녁 뷰가 뭐라고 여길 다시 찾다니. 939번 버스로 되돌아갈 1시간 반의 여정은 머리에서 지우기로 했다.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고 난 운암지의 저녁 뷰는 정말 달랐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느라 건조해진 내 눈이 촉촉해졌다. 낮보다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다. 65인치 4K TV가 보여주는 기계적 선명함과는 격이 다르다. 인공암벽을 비추던 은은한 색조의 간접 조명, 저수지 산책로의 LED 가로등, 한가운데 팔각정을 감싸 안은 울타리의 황색 조명이 수면에 반사돼 넘실거렸다. 도시의 온갖 불빛에 괴롭힘 당하던 동공이 확 열렸다.
잠시 감성에 빠져 있다 이성을 되찾은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냈다. 야간 모드로 한 컷, 천천히 걸으며 또 한 컷을 담아냈다. 명과 암을 살리는 5초의 기다림이 설렜다. 낮이라면 순식간에 찍고 넘겼을 그 풍경에 정성을 쏟는다. 저수지 울타리를 삼각대 삼아 허리를 숙이며 양손을 붙든 내 모습은 의식할 대상이 아니다. 이 시간에 이곳에서 운암지의 저녁 풍경을 디지털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운암지를 두 바퀴나 돌았을까. 스마트폰 속 시계는 8시 반을 가리켰다. 어둠이 더 짙어져 동네 사람들 발걸음이 뜸해질 무렵 길거리로 나왔다. 카카오 맵으로 가까운 버스 승하차장을 찾으니 3분 뒤 939번 버스가 온다는 메시지가 떴다. 빠른 발걸음으로 먹자골목을 헤집으며 939번 버스를 맞이했다. 버스 안에서 갤러리 속 사진을 추려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창밖을 보다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칠곡 관음변전소에서 시내를 관통하며 대구 동쪽 끝을 잇는 939번 노선은 언제 봐도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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