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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수성못 밤산책, 쌀쌀해도 괜찮아 본문
금요일 저녁 7시, 대구 시내를 관통하는 8차선 도로가 꽉 막혔다. 퇴근길 러시아워였다. 석양이 붉게 영글며 산 뒤로 넘어갈 무렵 나는 100-1번 버스와 도시철도 3호선(모노레일)을 타고서 수성못 역에 왔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걸음을 재촉했다. 완연한 봄 날씨라더니 바람막이로는 한기를 막지 못했다. 두툼한 맨투맨 티셔츠에 기모 달린 청바지 차림이 어울리던 날씨였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만큼 날이 쌀쌀했지만 미세먼지가 적어 공기를 들이마시기 좋았다.
수성못에 이르니 LED 가로등과 간판의 불빛들이 물살을 따라 수면을 환하게 비췄다. 물가를 거닐던 거위 한 무리가 울타리로 나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동안 야경 담기 좋은 자리를 찾아 못 한 바퀴를 빙 돌았다. 벤치에 앉아 못 건너편 스타벅스 매장을 향해 한 컷, 수성못 유원지(수성랜드)를 등지고 높은 건물을 향해 또 한 컷, 모퉁이를 돌아 정박 중인 오리배 일행을 담았다. 찬 공기가 온몸을 휘감기 전에 선물로 받아둔 스벅 기프티콘을 오늘의 커피로 바꿔 마셨다.
마그잔에 담긴 따뜻하고 구수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한기에 살짝 얼어붙은 몸이 녹으며 노곤노곤해졌다. 이대로 410-1번과 939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곧장 돌아갈까 고민하던 찰나에 버스를 보냈다. 곧장 다음 버스가 오지 않을 걸 알았다. 매장 안 테이블이 사람들로 가득 차기 전에 조용히 자리를 물렸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배차 간격이 긴 410-1번 대신에 대로변까지 느긋하게 걸어 403번 버스를 잡으면 될 일이다.
못가를 따라 난 산책로로 발걸음을 차분히 옮겼다. 길 양쪽으로 난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바로 지나 왼쪽을 본 순간 걸음을 잠시 멈췄다. 물가로 축 늘어진 버드나무와 나무를 향해 밝게 비추던 LED 조명, 수면에 비친 간판 불빛이 뭔지 모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폰으로 곧장 사진을 담았다. 폰의 위아래를 뒤집어 찍으니 풍성한 그림이 나왔다. 나뭇결과 화단에 심긴 꽃들의 윤곽이 잘 잡혔다. 맨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밤 풍경보다 극적이다. 어떤 컷은 이질감이 들만큼 선명하게 찍히기도 했다. 지난달까지 들고 다녔던 갤럭시 S10+나 보급형 DSLR보다 더 낫다. 노이즈 억제력이 상당하다.
돌고 돌아 수성못 오거리에 다다랐다. 곡선으로 휘감은 도로와 마주오는 차들의 불빛을 잘만 이용하면 그럴듯한 장노출 사진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잠시, 그냥 403번 버스를 잡으러 승하차장으로 발을 돌렸다. 귀찮았다. 다음 이 시간에 수성못에 가거든 또 찍으면 될 일이다. 두산동 행정복지센터 건너편에서 10분을 기다려 403번을 타고 939번으로 환승 후 집에 도착했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지만 그건 문제 될 게 아니다. 어차피 내일은 토요일인 것을.
촬영 기종 : 삼성 갤럭시 S21+ (SM-G996N)
촬영 일시 :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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