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막 떠난 강릉 일출 여행, 캐스퍼 일렉트릭과 함께라면
한밤중 캐스퍼 일렉트릭에 바리바리 짐을 실었습니다. 휴무로 주어진 하루를 잠으로 날리기 아쉬워서 운전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목적지는 강원도 강릉의 강문 해변이고요. 가능하다면 거기서 일출을 보는 게 목표입니다.
배터리 잔량은 야간 출퇴근 몇 번에 카페 한두 번 다녀오면서 85%를 가리키던 상황이었습니다. 계기판에 뜬 주행 가능 거리는 363km였지요. 처음에는 울산이나 부산의 어느 해변 주차장에서 차박을 미리 해본다는 설정이었는데 이왕이면 익숙한 데로 멀리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골라준 추천 경로는 딱 4시간 걸리는 길인데 길이가 357km나 됩니다. 충전 없이 단번에 가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눈에 들어온 무료도로 위주의 경로는 약 50km 짧아진 대신, 예상 소요 시간은 30분 늡니다. 어차피 자정에 출발할 거라 도착 시각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둘 중에 무료 도로를 택했습니다.
출발은 순조로웠습니다. 날씨가 예상보다 포근해서 전비도 8~9km/kWh 사이로 뜹니다. 시내의 몇몇 도로를 거쳐 외곽으로 나가자 교통량은 더욱 줄어듭니다. 분리대 너머로 마주 오는 차가 별로 없어서 일반 하향등보다 상향등 켜진 구간이 더 많았습니다. 먼 길을 떠나는 고독한 운전 여행의 동반자는 역시 라디오뿐입니다.
밤 1시 반 무렵 라디오 채널 주파수는 어느새 대구가 아닌 가까운 포항으로 알아서 잡힙니다. 칠흑 같은 바다를 곁에 두고서 고요한 7번 국도를 맹렬히 달립니다. 강원도 강릉, 동해 길 안내판이 뜰 때까지 164km를 쭉 올라가야 하니까 이때부터 본격적인 나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한참을 달리다 새벽 2시 반쯤 경북 영덕군 영해 휴게소에 잠시 차를 세웠습니다. 룸미러에 매달린 블랙박스에서 주행 두 시간이 지났다며 15분 이상의 휴식을 권합니다. 서두를 게 없으니 화장실도 얼른 다녀오고 커피도 한 잔 마셨습니다. 배터리 잔량은 50%로 뚝 떨어지고 주행 가능 거리도 200km 밑을 향합니다.
15분을 쉬고서 다시 길을 나서니 충전소를 검색하라는 팝업 메시지가 뜹니다. 목적지 도착 후 25km 더 갈 수 있으면 한 5% 남겠네 싶어서 '닫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지난 10월 경기 용인까지 먼 거리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두렵지 않았습니다. 배터리 잔량이 한자리 숫자로 줄어도 차는 계속해서 굴러갑니다.
새벽 3시 40분쯤 220km를 넘게 달려서 강원도 삼척시에 들어섰습니다. 80km/h로 달리던 자동차전용도로 구간이 끝나고 50~60km/h로 조심해서 달릴 거친 도로들이 눈앞에 보입니다. 소금물로 적신 도로를 거닐다 동해로 넘어가니 차로는 이윽고 1차선으로 확 좁아집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달려서 강원도 강릉에 도달했습니다. 새벽 4시 50분에 지도 화면을 가린 2차 배터리 부족 경고(배터리 잔량 10%)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6년 전 세계적 축제 행사로 두 달간 강릉을 제 집처럼 드나든 곳이라 길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대로인데 이게 생겼네?'라며 주변을 관찰하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목적지로 찜한 강문 해변에는 5시 18분에 도착했습니다. 85%였던 배터리가 5%까지 빠졌고 주행 가능 거리도 363km에서 20km로 확 줄었습니다. 총 주행 시간은 출발 시 준비 시간 7분, 휴식 시간 15분을 포함해 5시간 13분으로 기록됐습니다. 전비는 예상보다 양호한 8.4km/kWh 수준입니다.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도착 인증 사진 한두 컷 담고서 경포 주차장으로 움직였습니다. 스타벅스 바로 앞이 강문 공영주차장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횟집과 다른 커피숍이 인접한 사설 주차장이라서 20분 주차비로 2천 원을 내버렸습니다. 어쨌든 바라던 사진도 찍고 무충전 주행 목표는 이뤘으니까 좋은 경험이었다 셈 치기로 합니다.
넓은 경포 주차장에는 못 보던 전기차 충전 시설이 생겼습니다. 이곳에서 돌리는 환경부의 100kW 급속 충전소만 5기나 됩니다. 배터리 잔량 4%로 쫄쫄 굶은 캐스퍼 일렉트릭을 데리고 얼른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미리 배터리 컨디셔닝을 안 해서 입력 전력이 조금 낮았는데요. 40분 물려서 76%까지 채웠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습니다. 주행 가능 거리는 311km로 넉넉해졌습니다.
급속 충전할 동안 휴식을 취하다 일출 시각에 맞춰 강문 해변 제1공영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구름이 많이 껴서 제대로 된 일출은 못 보는 줄 알았는데 7시 10분이 조금 넘어서 빨갛게 불타는 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진을 찍다가 황급히 차 근처로 돌아와서 사진을 막 담았습니다.
물 만난 고기 마냥 대충 찍었는데 그럴듯한 그림이 나왔습니다. 아침 6시 이전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은 못 해도 떠오르는 해를 쫓는 여행만큼은 놓친 적이 잘 없습니다. 붉게 타오르며 하늘을 물들이는 순간도 찰나의 시간에 불과해서 순간 포착이 중요하더군요.
일출을 보고 오니 커피로 달래던 속이 허전해졌습니다. 강릉에서 짬뽕 순두부는 뻔하니까 굳이 멀리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강문 해변 바로 앞 스벅이 아침 8시에 문을 여니까 그 시각에 맞춰 사이렌 오더를 했습니다. 따스한 오늘의 커피 한 잔과 스타벅스 모닝 메뉴로 팔리는 더블 치킨 브레스트 체다 & 에그 샌드위치 정도면 속이 든든합니다. 남들이 선점하는 3층 뷰 말고 2층 창가 뷰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집에는 어떻게 돌아왔을까요? 그건 다음 콘텐츠로 풀어드리겠습니다. 주행 거리 별로 전비를 기록해 놓은 내용도 있는데 전기차로 장거리 주행을 계획하셨다면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릉에서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꼭 안목 해변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저처럼 한적하고 조용한 데서 커피 한 잔 느긋하게 마실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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