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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재진출한다는 현대차, 무슨 그림 그렸나?

커피스푼 2021. 8. 3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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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일본에서 배용준을 모델로 섭외해 광고했던 쏘나타입니다.
2005년 일본에서 배용준을 모델로 섭외해 광고했던 쏘나타입니다.

2000년대 옛 드라마 "겨울연가"를 아시나요? 일본에서 "후유노 소나타"로 한류 붐을 일으키며 현대가 EF 쏘나타를 알리던 시절이었죠. XG 그랜저까지 동반 출시하며 부풀던 기대감은 2009년 유니버스만 남긴 채 일본을 뜨고 맙니다. 벌써 12년이 흘렀군요. 전기차, 수소차를 만들고 제네시스와 N 브랜드를 키우며 성장한 현대차가 2022년 일본에 재진출한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아직 공식 입장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넥쏘와 아이오닉 5를 일본어로 알린 공식 웹 페이지가 운영되고 있었거든요. 단순 R&D(연구 개발)를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 같은 이름 알리기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현대차는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린 걸까요? 최근 발자취를 더듬어 현대차의 일본 재진출 가능성을 짚어봤습니다.

 

 

1. 유튜브 및 트위터에 개설된 현대 재팬(Hyundai Japan)

 

유튜브 및 트위터에
유튜브 및 트위터에 "현대 재팬" 소통 채널이 만들어졌군요.

유튜브(Hyundai Japan)와 트위터(@Hyundai_japan)에 "현대 재팬"이라는 계정이 운영 중입니다. 프로필이 만들어진 날짜는 유튜브가 2020년 7월 28일, 트위터가 2020년 6월이군요. 콘텐츠는 며칠 단위로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수소차 넥쏘와 전기차 아이오닉 5를 내세운 친환경 브랜드 스토리 위주였죠. 세계 곳곳에 이름을 알린 아티스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을 돕기도 하고요. 소탈한 일상, 푸근한 자연에 동화된 일본 내 환경 활동가의 삶을 짤막한 캠페인으로 알리기도 합니다.

 

현대차 일본 공식 홈페이지와 넥쏘 e-카탈로그 이미지를 모아봤습니다.
현대차 일본 공식 홈페이지와 넥쏘 e-카탈로그 이미지를 모아봤습니다.

현대차 일본 공식 홈페이지(링크)도 같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넥쏘는 홍보 및 판매용 자료가 담긴 일본어 e-카탈로그를 만들어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해놨네요. 클린 모빌리티, 스마트 모빌리티, 이동성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연료전지 시스템 구조와 안전성, 공력 성능, 편의 기능, 현대 스마트센스, 내 외장 색상 및 디테일 컷, 데이터 시트까지 자세히 보여줍니다. 일부 시각에서는 "현대가 간을 보고 있다"라고 다루는데요. 우핸들로 만든 실제 차 전시(FC 2020 엑스포, 수소 연료전지 산업 전시회)에 일본식 번호판까지 등록을 마치고 위장막 없이 도쿄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뭘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현대가 "아님 말고"식으로 치고 빠질까요? 공식 진출 선언 전까지 일본 도쿄도 내에 잘 깔린 수소 충전 인프라를 테스트 베드로 활용하며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중저가 이미지가 아니라 최소 토요타와 나란한 위치에서 친환경차 브랜드로 포지셔닝해야 할 겁니다. 일본에서 수입차는 잣대가 아주 엄격하거든요. 공차 중량에 따른 세금, 내수차 아니면 비싸게 받는 차검(자동차 검사) 문화, 달마다 최소 3만 엔 넘게 지출하는 주차비 등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스네이크 아이즈 : 지.아이.조, 쏘나타 N 라인 왜 나왔나?

 

9월 중 국내 개봉 예정작
9월 중 국내 개봉 예정작 "스네이크 아이즈 : 지.아이.조" 에 나온 현대차를 모아봤습니다.

지난 7월이었을까요? 영화 "스네이크 아이즈 : 지.아이.조" 예고편에 나왔던 현대차를 기억하시나요? 쏘나타 N 라인이 나온다는 내용이 현대차 보도자료에 실린 바 있습니다. 싼타페와 엘란트라(아반떼)도 짧게 나오죠. 스톰 쉐도우로 인상을 선명히 남겼던 배우 이병헌은 안 나옵니다. 영화 속 무대 배경은 일본인데 왜 일본식 번호판을 단 현대차가 등장했을까요? 토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산 자동차가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투자는 아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럴 의도였다면 분노의 질주 시리즈 같은 유명한 자동차 액션 영화에 깜짝 출연시켰겠죠. 우리는 12년 전 일본에서 공식 철수했던 현대차가 일본식 번호판을 달고 나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현대가 영화의 힘을 빌려서 N 브랜드 티저와 같은 효과를 띄우려는 의도가 아니었을지 짐작해봅니다. "현대에 이런 차가 있었다고?"라는 메시지가 일본인에게 전달됐다면 절반은 성공입니다.

 

 

3. 선발대는 넥쏘·아이오닉 5, 후발대는 N·제네시스

 

2019년 5월 중 열린 수소차 보조금 지원 정책 계획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출처 : 일본 경제산업성)
2019년 5월 중 열린 수소차 보조금 지원 정책 계획 일부를 캡처했습니다. (출처 : 일본 경제산업성)

현대차 재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은 넥쏘가 터뜨릴 겁니다. 일본에서 친환경차 이미지 메이킹에 공을 가장 많이 들인 모델이니까요. 일본(고정형 134기, 이동형 20기 운영 중)에는 도쿄도와 아이치현 나고야시 일대에 수소 충전소가 촘촘히 깔려 있고 일본 경제산업성 및 지자체에서 주는 보조금 비중이 커서 수소차 보급 확대 가능성을 실험하기 좋거든요. 우리나라 기준 6,765만 원부터인 넥쏘의 경우 보조금을 뺀 실 구매가가 4천만 원 안팎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수소 충전소 154곳이 운영 중입니다. 전 세계서 가장 많기도 합니다.
일본에는 수소 충전소 154곳이 운영 중입니다. 전 세계서 가장 많기도 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수소 충전소 운영 시간이 되겠죠. 가솔린 및 디젤처럼 셀프 충전이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라서 시간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도심부는 낮 12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공휴일 제외), 혹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운영되는 곳이 많고요. 외곽으로 조금 벗어나야 저녁 7~8시, 길면 밤 9시까지 운영하는 곳이 나옵니다. 대신에 수소 충전은 5분 정도면 끝나니까 보통의 전기차에서 겪는 충전 속도 스트레스는 덜합니다.

 

아이오닉 5 릴렉션 시트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출처 : 현대차 일본 공식 홈페이지)
아이오닉 5 릴렉션 시트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출처 : 현대차 일본 공식 홈페이지)

아이오닉 5는 그다음 차례입니다. 제품의 주요 특징을 다룬 코너가 홈페이지에 실려 있지만 판매·홍보 자료는 아직 덜 된 모양이었거든요. 넥쏘로 수소차의 시장성을 체크하며 토요타 미라이와 계속 비비다가 투입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혼다(클래리티)랑 메르세데스-벤츠(GLC F-cell)는 포기했거든요. V2H 및 여러 환경에서 검증을 마친 뒤 내보내도 밀릴 게 없다는 분석입니다. 전기차로 세계 시장을 재패한 테슬라도 일본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거든요. 올해는 일본 내 전기차 보조금이 전년의 두 배인 80만 엔으로 오른다고 해 보급이 조금 늘지도 모르겠습니다.

 

넥쏘·아이오닉 5로 정착에 성공한다면 위와 같은 모델이 일본에 등장할지도 모르겠군요.
넥쏘·아이오닉 5로 정착에 성공한다면 위와 같은 모델이 일본에 등장할지도 모르겠군요.

현대차가 일본 내 친환경차 브랜드로 재도약에 성공한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군요. 고성능 브랜드인 N을 꺼낼지, 수입 브랜드와 경쟁할 제네시스를 올릴지로 나뉘겠습니다. 쏘나타 N 라인으로 복선을 깔고 실제로는 아반떼 N을 꺼내서 안정형으로 밀고 가는 게 좋겠습니다. 제네시스를 택한다면 시장성 검증을 잘 마친 G80 및 GV70 위주로 라인업을 잘 다지는 게 좋겠지요. 차가 커서 실패한다는 공식은 독일 럭셔리 3사(BMW, 벤츠, 아우디)에게는 안 통합니다. 유럽산 신차(i20, 바이욘)를 일본에 파는 방안도 나쁘진 않겠군요.

 

 

4. 철저한 벤치마킹, 진출보다 더 중요한 준비

 

현대차는 오너 케어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면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입소문을 내는 중입니다.
현대차는 오너 케어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운영하면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입소문을 내는 중입니다.

현대차가 일본에 재진출하거든 지난 9년간(2001~2009년)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됩니다. 실패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수입차 브랜드인데 일본 내수차보다 가격이 싸면 일본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자국에서 파는 토요타, 혼다, 닛산, 경차에 특화된 스즈키, 다이하쓰 말고는 고려하지 않을 겁니다. 일본에서 수입차를 산다는 건 자동차 중량세, 자국 차보다 비싼 자동차 검사비에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속도로 이용료(기본료 150엔, 추가 요금 261원/km, 우리나라는 평균 44.3원/km), 최소 월 3만 엔 이상 들어가는 주차비를 모두 감당한다는 의지에서 나오는 결정이거든요.

 

우리나라에 저가 브랜드로 들어왔던 중국차에 관한 인식을 떠올려 보세요. 중형 버스계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상용차 선롱 버스도 3년을 못 버티고 우리나라를 떠났죠. 북기은상의 켄보 600을 수입해 되팔던 중한자동차도 뜸합니다. 국산차보다 싼 수입차를 샀는데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연비도 안 좋고 차 고칠 곳이 흔치 않다면 그걸 누가 살까요? 포드는 큰 차 만능주의를 고집하다 2016년 일본에서 철수했습니다. 노 재팬 불매운동 속에서 닛산(인피니티 포함)은 한국을 떠났지만 토요타(렉서스 포함), 혼다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차 팔기를 계속하고 있죠.

 

일부 현지 언론에서는 르노를 벤치마크하라는 주문이 나옵니다. 르노가 지리 홀딩스와 손잡고 합작사를 세워서 친환경차로 중국에 재진출 하려는 것처럼 현대차도 일본차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으라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현대차와 브랜드 지향점이 비슷한 곳으로 마쓰다(Mazda)가 있긴 합니다. 포드가 마쓰다 지분을 일부 사들이면서 일본 내 정착 겸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때는 일본 경제 호황기(80~90년대)였지만 "잃어버린 30년"을 전망하는 지금의 일본에서 그게 될까요? 막연한 전략 파트너십보다는 친환경의 판을 더 키워서 천천히, 더 깊숙이 접근하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현대차 일본 홈페이지에 게시된 넥쏘 하이라이트 영상을 캡처했습니다.
현대차 일본 홈페이지에 게시된 넥쏘 하이라이트 영상을 캡처했습니다.

현대차가 갈라파고스화된 경차 천국, 사계절 타이어를 안 신는(여름용/겨울용만 있음) 일본에 한 획을 그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매년 실시 중인 현대 오너 케어 서비스로 일본 내 운전자들과 브랜드 신뢰를 쌓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의 문화를 알아가고는 있지만 그 깊이가 어느 정도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일본인들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WRC에서는 토요타와 우승을 다투는 사이가 됐고 영국 탑기어나 카와우(Carwow)에서는 유럽차만큼이나 현대차가 자주 나와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재진출한다면 국내외 시장에서 검증이 끝난 친환경차부터 차례로 선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반떼 같은 C-세그먼트 이하의 볼륨 모델도 언젠가 일본에서 볼 날이 생기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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