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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밀양 위양지, 가볼 만한 곳인가? 본문
지난 25일 목요일. 밀양 위양지를 다녀왔습니다. 제가 사는 대구 경산 지역에도 저수지가 천지삐까리(경상도 방언으로 '매우 많다'는 뜻)인데 뭐 하러 밀양까지 찾아갔냐고요? 인스타 알고리즘이 보여준 사진 몇 장이 저를 위양지로 이끌었습니다. 수면에 비친 이팝나무, 저수지 한가운데 지어진 정자(亭子)가 아름답고 멋져 보였거든요.
경산 압량읍에서 밀양 위양지까지 차로 가면 1시간 20분(일반국도 기준), 고속도로로 질러가도 5분밖에 안 줄어듭니다. 25번 국도로 간늪사거리까지 쭉 가서 밀양시청 방면으로 우회전, 24번 국도를 타다 춘화삼거리에서 위양지 안내판을 따라 우회전하면 금방 나옵니다. 차 많고 복잡한 대구 시내를 관통하며 찾아가는 팔공산보다 가는 길이 쉽습니다.
특이한 점은 위양지 주차장 진출입로였습니다. 들어가는 길과 나가는 길이 각각 다릅니다(일방통행). 날 좋은 주말이면 안쪽에 50면 남짓한 주차장도 모자라서 진입로 우측이 자동차로 꽉 찬다고 하더군요. 드라마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2016)' 촬영지로 알려진 뒤 7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제법 보였습니다. 흔한 평일 오후인데도 말이죠.
4월 말에서 5월 중순 사이 이른 아침에는 사진사들의 일출 명소가 되기도 합니다. 거울 같이 잔잔한 수면 위로 이팝나무가 만개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랄까요. 진작 알았더라면 한 달 일찍 찾아갔을지도 모릅니다. 흰쌀밥(이밥)을 다 떨어낸 지금은 왕버드나무와 소나무, 수중에 뜬 부평초(개구리밥)가 지나가는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위양지는 예전 신라시대부터 논밭에 물길을 대던 저수지였습니다.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로 '위량(位良)'이란 이름이 붙었다는군요. 처음에 섬이 다섯 개, 둘레가 1km를 넘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규모가 점점 줄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망가졌다가 1634년 밀양 부사 이유달이 위양지를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저수지 가운데 있는 완재정은 안동 권씨 집안이 지어 올린 정자로, 옛 지역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고 하네요.
완재정 사방에 심긴 이팝나무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로웠습니다. 꽃 모양과 색깔이 마치 이밥(쌀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밥나무'로 불렀다가 '이팝나무'로 변했다는 설, 꽃이 봄에서 여름으로 향하는 입하(入夏)에 핀다고 해서 '입하목'으로 불렸다가 '이파나무', 이어서 '이팝나무'로 부르게 됐다는 설이 재밌더군요. 자세한 내용은 가끔 보이는 단체 여행 무리 속 문화해설사를 따라가면 들을 수 있습니다.
산책 방향은 위양지 입간판이 있는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둘러가면 되는데요. 우측 돌다리를 건너서 완재정을 둘러보고 반시계방향으로 둑길을 둘러가도 됩니다. 한 바퀴 다 돌면 대략 20분 걸립니다. 산책로 길이는 체감상 경산 반곡지랑 비슷합니다. 둑길 주변에 심긴 나무가 많아서 반곡지보다 더 울창하고 그늘진 영역이 더 넓은데 그림(풍경)은 솔직히 반곡지가 더 예쁘고 예스럽습니다(옛것과 같은 멋). 햇빛이 강한 여름엔 위양지가 더 시원해서 좋다고 느낄지도 모르겠군요.
인스타 속 감성 사진에 큰 기대를 갖고 위양지를 찾아갔다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해가 사선으로 기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찾아가야 더 운치 있겠다는 생각이거든요. 점심 식사를 마친 한낮에도 잠시 둘러볼 만합니다. 완재정 건너편에 설치된 포토존 말고 나머지 시점에서 바라본 저수지 주변 풍경은 다소 평이합니다.
위양지에서 예쁜 그림을 원한다면 비가 많이 내리고 난 다음날이 좋을 겁니다. 물이 가물(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때인 5월 말은 거울 같이 쨍한 수면보다 부평초가 더 많이 보여서 그림이 애매하거든요. 유량이 한껏 불어나는 시기라면 그나마 찾아가기 괜찮을 듯합니다.
위양지에서 인스타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은 완재정입니다. 돌다리와 경사로가 만들어진 주 출입문이 아니라 완재정 현판이 걸린 왼쪽 출입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더군요. 네모난 출입구는 액자틀이 되고 문 너머로 보이는 수변 배경이 시원해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좀 더 돋보입니다. 젊은 층이라면 애니메이션 작품 '스즈메의 문단속'과 비슷한 콘셉트로 사진을 찍을 일이 많겠습니다.
주변 편의시설로는 카페 '위양루'와 '밀가든'이 있습니다. 위양루에서는 2층에서 통창으로 탁 트인 시골 풍경을 굽어보거나 루프탑 천막 아래에서 바람을 쐬며 커피를 마실 수 있고요. 밀가든은 고풍스러운 한옥과 넓은 마당을 갖춘 카페로 안팎 장식의 느낌이 서로 다릅니다. 대표 메뉴로는 진저카푸치노(생강, 도라지, 배, 대추가 들어간 카푸치노), 어릴 적 팥빙수가 있습니다. 가격은 각각 7천 원, 9천 원입니다. 세련되고 익숙한 느낌을 원한다면 위양루, 토속적이면서 새로운 경험을 원한다면 밀가든을 찾아가면 되겠습니다.
위양지에서 다시 경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내 차분했습니다. 7년 만에 다시 몰아본 QM6로 새로운 저수지를 찾았다는 경험에 의미가 있었달까요. 일출을 노리고 새벽에 찾아갔다면 그림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 들르는 반곡지보다 멀어서 당분간 찾아갈 일은 없겠지만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한 철마다 둘러볼 정도는 되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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