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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의 전기차 쇼맨십, 우리는 노키아가 아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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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의 전기차 쇼맨십, 우리는 노키아가 아니다!

커피스푼 2021. 12. 1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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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토요타가 일본 기자단을 초청해 배터리 전기차(BEV) 전략 발표회를 가졌습니다. 도쿄 오다이바에서 운영 중인 토요타 자동차 테아 파크 "메가 웹(MEGA Web)"에서 전기차 16종을 선보였죠. 내년 상반기 토요타 bZ4X를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기차 30종을 출시하고 전 세계에 연간 3백5십만 대를 팔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드러냈습니다.

 

토요타가 2022년 출시 계획 중인 전기차들을 선보였습니다.
토요타가 2022년 출시 계획 중인 전기차들을 선보였습니다.

세 달 전 BEV랑 FCEV(수소연료전지차)를 합쳐 2백만 대를 팔겠다더니 BEV 단일 판매 목표가 확 올랐네요. 배터리 신규 사업 투자금도 1조5천억 엔에서 2조 엔으로 늘렸죠. 품질은 더 좋고 가격은 더 내린 전기차용 배터리 팩을 지속 공급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입니다. 벌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첫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죠? 변화를 두려워하다 흐름에 휩쓸려 사라진 휴대폰(셀룰러 폰) 회사 노키아(Nokia)처럼 되지 않겠다는 토요타 아키오(Toyota Akio) 사장의 굳은 다짐이 전해집니다.

 

2020년 전기차 부문 판매 1위를 자랑했던 테슬라 모델 3입니다.
2020년 전기차 부문 판매 1위를 자랑했던 테슬라 모델 3입니다.

토요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몇몇 일본 언론은 의심을 거두지 않은 눈치입니다. 미국, 유럽, 중국은 전기차 블루오션을 개척하며 입지를 굳히는 중인데 토요타는 내년부터 전기차를 내놓겠다고 하니 늦어도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걱정입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2020년에는 테슬라 모델 3가 전기차 시장을 이끌고 2021년에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ID.4가 올해의 차에 뽑히며 이름을 알렸는데요. 정작 자동차 업계의 거대 공룡인 토요타는 전기차 판매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토요타가 하이브리드차(HEV)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에만 매달린다는 시각으로 보였을 겁니다.

 

기자단 질의 응답 세션에서 답변 중인 토요타 아키오 사장입니다.
기자단 질의 응답 세션에서 답변 중인 토요타 아키오 사장입니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수년 전 디젤게이트로 물의를 일으켰던 일부 유럽 메이커들이 탄소 중립화를 선언하며 전기차에만 몰두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배터리 충전 인프라가 잘 깔린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이라면 몰라도 인프라가 열악한 다른 시장에는 탄소 저감형 차인 HEV를 운용하기 더 나을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탄소 배출은 다른 제작사들이 훨씬 더 많이 내보냈으면서 토요타는 왜 전기차 흐름에 따르지 않냐는 주변의 시선이 의아했을 겁니다.

 

1996년 시장에 선보였던 전기차 라브 4 L EV입니다.
1996년 시장에 선보였던 전기차 라브 4 L EV입니다.
2014년 시장에 첫 데뷔한 FCEV, 미라이입니다.
2014년 시장에 첫 데뷔한 FCEV, 미라이입니다.

토요타는 20세기 말부터 전기차에 꾸준한 관심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1997년 세계 최초의 양산형 HEV인 프리우스(Prius)를 출시하기 이전에 전기차 개발 본부를 1992년 세우고 4년 뒤 라브 4 EV를 내놨습니다. 90년대에 개발이 진행된 FCEV도 한일 월드컵을 펼쳤던 2002년에 토요타 FCHV로 선보였죠. 2008년 개선형 모델인 FCHV-adv를 거쳐 2014년에 "미래"를 뜻하는 미라이(Mirai) 첫 모델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배터리 R&D(연구 및 개발), 생산을 전담한 사업체도 1996년부터 이어져왔습니다. 프리우스에 담겼던 니켈수소전지 기술을 고도화시켜 2003년부터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하고 2008년 배터리 연구 본부를 세워서 전고체(고체형 전해질) 배터리 연구를 시작하기 이릅니다. 배터리 R&D 25년 노하우를 뒷받침하는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 & 솔루션을 2020년에 세워서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확장에 온 힘을 기울일 준비를 마쳤죠. 지금껏 배터리를 1천9백만 개 이상 찍어냈으니 그동안 누적된 경험 자산은 곧 미래의 경쟁력으로서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순수 전기차로 재도약할 첫 전기차는 토요타 bZ4X입니다.
순수 전기차로 재도약할 첫 전기차는 토요타 bZ4X입니다.

토요타가 내년에 첫 출시할 전기차는 중국 무대에서 양산형 콘셉트 카로 선보였던 bZ4X입니다. 사륜구동차로 명성을 날렸던 스바루(Subaru)와 협업하며 e-TNGA(EV 전용 토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처) 플랫폼을 다듬고 주행 밸런스를 맞춰왔습니다. 토요타 모토마치 공장에서 bZ4X 본격 생산을 준비 중인데요. 스바루에서는 "솔테라(Solterra)"로 나올 예정입니다. 토요타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도 e-TNGA를 공유한 RZ 450e를 내보낼 계획이죠.

 

bZ4X부터 bZ 라지(Large)까지 준비 중인 토요타의 전기 콘셉트 카입니다.
bZ4X부터 bZ 라지(Large)까지 준비 중인 토요타의 전기 콘셉트 카입니다. 

일본과 유럽 시장을 겨냥한 소형 전기 SUV는 전비 효율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설계 중입니다. 1km 당 125Wh 수준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겠다는군요. 첫 차의 기대를 가득 담은 중형 전기 세단과 가족과 편안한 이동을 누리는 대형 SUV까지 전기차 라인업을 쭉 늘려갈 계획입니다. 양산형 모델이 결정된 bZ4X를 뺀 나머지 토요타 모델은 찰흙(클레이)으로 빚은 콘셉트 카라서 향후 출시될 최종 디자인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렉서스의 첫 순수 전기차로는 RZ 450e가 있습니다.
렉서스의 첫 순수 전기차로는 RZ 450e가 있습니다.

렉서스의 첫 순수 전기차는 RZ 450e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기본 골격은 bZ4X와 같지만 콘셉트는 역동성을 지향한 중형 프리미엄 SUV입니다. bZ4X가 부드러운 승차감, 운전의 재미를 느끼는 선에서 그치는 무난한 앞바퀴굴림 기반 차였다면 RZ 450e는 앞뒤에 강력한 전기 모터를 모두 실어 스포티한 네바퀴굴림을 구현합니다. 선형적 가감속, 세련된 제동감, 민첩한 운동성을 반영합니다. 렉서스의 얼굴을 나타낸 스핀들 그릴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죠.

 

콘셉트로 나온 차들 중에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렉서스의 2-도어 전기 스포츠카입니다.
콘셉트로 나온 차들 중에 주목을 많이 받았습니다. 렉서스의 2-도어 전기 스포츠카입니다.

렉서스 드라이빙 DNA를 뚜렷이 드러낸 2-도어 전기 스포츠카도 선보입니다. 고성능 전기 모터랑 전고체 배터리를 품고서 제로백 가속을 2초 안팎으로 앞당기고 충전 한 번에 700km 이상 내달린다는 목표로 개발한다는 계획입니다. 한 때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이름을 날렸던 렉서스 LFA의 명성을 이어받습니다. 정식 번호판을 달고 일반 도로에서 전고체 BEV 실증 연구를 시작한 토요타로서 갈 길이 아직 멀지만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지금의 전기차 세계를 둘러보면 시장 진입점이 그렇게 늦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토요타의 전동화 풀 라인업 로드맵입니다.
토요타의 전동화 풀 라인업 로드맵입니다.
신형 아쿠아는 바이폴라 니켈수소전지를 품고 나왔습니다.
신형 아쿠아는 바이폴라 니켈수소전지를 품고 나왔습니다.

토요타 입장에서 BEV는 곁가지로 뻗어 나온 또 하나의 전동화 모델이거든요. 기존의 HEV, PHEV, FCEV까지 곁들여서 전동화 풀 라인업을 지속한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죠. HEV는 차종에 따라 니켈수소전지와 리튬이온전지, 니켈수소전지에서 셀(cell) 집적도를 높여 전력 가용성을 늘린 바이폴라(bipolar, 한 집전체에 +와 -를 모두 품은 셀 구조) 니켈수소전지로 세분화됩니다. 토요타 공업사와 공동 개발한 바이폴라 니켈수소전지는 올해 7월 발표한 신형 아쿠아(Aqua)에 적용해 시원한 주행 가속을 돕습니다. 커넥터로 일일이 잡아주던 병렬식 셀 패키징이 셀 단위 직렬식 연결로 바뀌면서 반응성도 빨라지고 무게도 가벼워졌으며 전력 밀도는 기존 니켈수소전지 대비 두 배나 높아졌습니다.

 

PHEV와 BEV용으로 쓰이는 리튬이온전지는 단가를 더 낮추고 내구성을 더 올리는 방향으로 개발을 거듭합니다. 바이폴라 니켈수소전지처럼 2020년대 후반에는 한층 더 개선된 리튬이온전지를 선보일 예정이죠. 전고체 전지는 PHEV 및 BEV 대응을 위한 예비 파이프라인(pipeline)이지, 결코 리튬이온전지를 대신하기 위한 용도가 아닙니다. 차종, 용도, 시장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맞출 수 있어야 하니까요.

 

토요타 bZ4X는 10년 뒤에도 배터리 잔존율 90%를 보장합니다.
토요타 bZ4X는 10년 뒤에도 배터리 잔존율 90%를 보장합니다.
음극 표면의 열화 물질을 줄여야 우수한 배터리 성능이 유지됩니다.
음극 표면의 열화 물질을 줄여야 우수한 배터리 성능이 유지됩니다.

내년 출시될 토요타 bZ4X의 경우 운행 10년 뒤에도 리튬이온전지 잔존율 90%를 유지하도록 맞췄다죠? 리튬이온전지에서 배터리 내구성은 음극(-) 층 표면에 들러붙는 열화 물질을 얼마나 덜 생기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보통 외부에서 전력을 가하면(충전기 연결 시) 양극(+, 애노드)에서 떠돌던 이온이 분리막을 통과해 음극(캐소드)으로 향하며 충전이 되고 방향이 반대인 반응이 일어나면서 방전이 진행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이온의 흐름을 방해하는 열화 물질이 생기면 배터리 잔존율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토요타는 배터리 셀 안에 금속성 이물질이 들러붙지 않도록 제조 공정 단계부터 온 신경을 기울입니다. 파티클(particle) 단위의 미세 물질 허용 기준을 반도체 전공정 클린룸(cleanroom, 청정실)만큼 까다롭게 맞춥니다. 제조 과정에서 금속성 이물질이 끼기라도 하면 쇼트(단락)가 나서 전기적으로 고장을 일으킬 수 있거든요. 사전에 이물질이 끼지 않았는지 면밀히 살피고 작동 온도, 충전량, 전류, 열화 정도를 AI 분석 메커니즘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만약의 상황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토요타는 배터리 생산 단가를 단계적으로 줄일 계획입니다.
토요타는 배터리 생산 단가를 단계적으로 줄일 계획입니다.

토요타는 BEV의 대중화를 위해 배터리 생산비를 30% 이상 절감한다는 장기 목표를 세웠습니다. 지금처럼 각국 정부가 나눠주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에 기대서 차를 사는 구조로는 BEV가 쉽게 대중화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내년에 내보낼 bZ4X부터 배터리 팩 구성 소재와 구조를 개선해 소비 전력(km 당 전력 사용량)을 30% 개선하고요. 2020년대 후반에 출시할 BEV는 bZ4X의 절반 수준으로 배터리 생산비를 더 줄여서 내연기관차(ICE)랑 비슷한 값에 포지셔닝한다는 거창한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당면한 개발 과제는 고출력, 장거리, 고속 충전입니다.
전고체 배터리가 당면한 개발 과제는 고출력, 장거리, 고속 충전입니다.

토요타가 심혈을 기울인다던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숙제가 많습니다. 작년 6월 전고체 배터리를 품고 나왔던 시험 주행용 차가 8월에 정식 번호판을 매달고 일반 도로 주행에 나섰지만 충방전 수명이 짧다는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지난 9월 LG 에너지솔루션이 5백 회 이상 충방전되는 실리콘(Si) 기반 전해질을 개발해 전고체 수명 난제가 풀렸다는 업계의 시각도 있기는 합니다. 토요타는 이와 별개로 고출력, 장거리, 고속 충전 요건을 만족할 대체재를 찾겠다는 방침입니다. 소형 전고체 배터리를 품은 HEV부터 상용화시켜 기술이 더 성숙해지면 BEV까지 차례로 확장한다는 로드맵입니다.

 

토요타 그룹이 결성한 배터리 운명 공동체입니다.
토요타 그룹이 결성한 배터리 운명 공동체입니다.

계획대로 BEV 보급을 늘리려면 안정된 배터리 공급망이 필요한데요. 토요타는 일본 TDK와 협력하며 유대감을 키워 온 중국 CATL, 중국 비야디(BYD)에서 파생된 전장품 공급사 핀드림 배터리(FinDream Battery), 일본 내 납축 및 리튬이온전지 전문 회사인 GS 유아사(Yuasa), 산요(Sanyo) 전기를 흡수한 파나소닉(Panasonic), 전기차용 반도체 및 배터리 공급사로 방향을 튼 도시바(Toshiba)까지 아우르며 배터리 공동 협력체를 이뤘습니다.

 

2030년까지 적게는 180GWh, 많게는 연간 200GWh 이상 배터리를 넉넉히 준비한다는 계획입니다. 202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동될 BEV 배터리 공장까지 생산 라인 10개를 갖추고요. 2026년에서 2030년까지는 연간 10개씩 늘려서 배터리 팩 생산 라인을 총 70개까지 둡니다. 수요 공급에 유연히 대응하도록 라인 당 직원 수를 제한하며 HEV용 배터리 생산 라인을 돌렸던 전문적 경험을 살려서 배터리 생산 단가를 맞춘다고 합니다.

 

토요타 bZ4X를 제외한 나머지 차들은 전기 콘셉트 카로 등장했습니다.
토요타 bZ4X를 제외한 나머지 차들은 전기 콘셉트 카로 등장했습니다.

BEV 라인업 구축을 위한 토요타의 스케일(scale)은 이렇게나 큽니다. 아직도 토요타가 HEV랑 PHEV에만 매달리는 구시대의 공룡으로만 보이시나요? 토요타는 느리기만 한 물고기가 아닙니다. 겉보기에 느려 보일지라도 튼튼해 보이는 돌다리도 두들겨서 건너도 될지, 어떤 방법으로 건너야 에너지를 가장 덜 쓸지, 어떤 소재와 구조를 적용할지를 첨예하게 계산하는 그런 자동차 회사입니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2022년에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할까요?
토요타 아키오 사장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2022년에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할까요?

일본 자동차 업계를 통틀어 5백5십만 명을 이끄는 토요타 아키오의 전기차 쇼맨십은 그냥 나오는 포즈(pose)가 아닙니다. 한 때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와 협력하며 북미 시장에서 고속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의 가능성을 지켜봤고 2050년 탄소 중립화를 완성할 자동차 업계의 진정한 해답은 무엇인가 고민이 누구보다 깊었을 그입니다. 2009년 사장에 오르자마자 전 세계에 머리를 숙이며 "기술에 허점이 생기면 문제가 생긴다"는 마음의 상처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2022년 BEV를 전 세계에 선보입니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자신합니다. 그의 강단이 종이호랑이의 울부짖음에 그칠지, 전 세계를 뒤흔들 자동차 계의 검은 호랑이로 우뚝 설지 뭔가 재밌게 구를 한 해가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조 글 :

2021.09.13 - [이 차 저 차] - 전기차 안 뽑던 토요타, 소름 돋는 계획은 지금부터

 

전기차 안 뽑던 토요타, 소름 돋는 계획은 지금부터

토요타가 2022년부터 전기차를 선보입니다. 올 4월 중국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한 콘셉트 카 bz4x가 그 시발점이죠. 불과 며칠 전인 7일에는 전고체 배터리를 단 시제차(프로토타입 카)가 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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