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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소니의 전기차 시장 진출, 과연 빅 뉴스인가? 본문
참고 글 :
2022.01.02 - [이 차 저 차] - 소니 전기차 비전-S, 바퀴 달린 플레이스테이션
소니가 CES 2022에서 전기차 시장 진출 가능성을 알렸습니다. 올봄에 소니 모빌리티 회사를 세워서 전기차 양산을 논의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현지에 취재를 간 국내외 기자들은 꽤 놀란 눈치였다는데요. 저는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 2년 전 데모 시연에 그칠 제품이었다면 비전-S 전용 홈페이지를 꾸리고 디자인 히스토리를 풀면서 시험 주행 개발 과정까지 일일이 알려줄 필요가 없거든요. 올 1월 초 비전-S 소식을 다루면서 "언제쯤 양산형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인가?"에 관심을 더 기울였습니다. 결국 소니는 전장품 공급사에서 전기차 회사로 커버리지(영역)를 늘리기로 결정했군요.
CES 2020에서 기자들을 홀리던 비전-S 프로토타입 전기 세단은 "비전-S 01"이라는 새 모델명이 붙었습니다. 센서 장비를 개선하고 일본 도쿄와 독일 알덴호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5G 커넥티드 카 테스트, 고속 주행 테스트로 담금질하며 온갖 공을 들이더니 2년이 지나서야 넘버링 '01'을 달게 됐군요. 소니가 자체 구축한 EV 플랫폼으로 또 다른 모델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약속 이행이 생각보다 늦지 않았습니다. 시트를 3열까지 채운 전기 SUV인 비전-S 02도 나왔죠. 다인 승차에 더 유리한 MPV도 나올 거라 했으니까 비전-S 03(가칭)까지 몽땅 채워서 정식 출시를 알릴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는 "3, 5, 7"같은 특유의 숫자 리듬을 따르는 나라이기도하거든요.
그럼 삼성전자랑 LG전자는 전기차 시장 진출 계획이 없을까요? 지금의 소니처럼 주요 고객사(자동차 제작사)에게 전장품을 공급하는 파트너사로 이미지를 알리는 중인데요. 협력사에서 경쟁사로 올라서는 일은 없겠습니다. "모 아니면 도"가 되기 쉬운 자동차 산업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뛰어들 이유가 없거든요. LG화학에서 배터리 전문 회사로 독립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전문 개발사로 이름을 굳힌 삼성SDI, 심지어 SK이노베이션도 전기차 배터리 전문 자회사로 SK온을 분리시켜 자동차 회사들과 결속을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용 메모리 반도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서 전달되는 중이죠. 전장품 공급사로서 주어진 역할만 다 하면 그만입니다.
TSMC(파운드리)랑 엔비디아(팹리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릅니다. TSMC는 그래픽 칩 분야에서 경쟁사인 AMD와 엔비디아를 주 고객사로 둡니다. 동시에 프로세서 분야에서 1, 2위를 다투는 인텔과 AMD의 칩도 찍어내죠. 인텔은 자체 제조 공장 설비를 갖춘 종합 반도체 회사이지만 공급이 달리면 TSMC에 위탁 생산을 맡기기도 합니다. IT 산업계에서 콧대 높은 애플도 TSMC 없이는 아이폰, 아이패드를 못 내놓습니다. 고객사들을 많이 둘수록 지배력이 커지는 전자 산업의 생태계를 TSMC가 잘 이용한 결과입니다.
전장품 공급사로서 자리 잡고 성장하려면 전기차로 전환 중인 자동차 회사들을 놓칠 수 없습니다. 전기차 그 이전부터 LG랑 오랜 인연을 쌓던 GM(제너럴 모터스)은 불타는 볼트(Bolt) 전기차를 보고도 신뢰를 흔들지 않았죠. LG에너지솔루션이랑 합작해 세운 얼티움 전기차 배터리 공장 가동은 물론, 주요 전장품과 AVN 인포테인먼트, ADAS(운전자 주행 지원 시스템) 등 자사 전기차에서 차지하는 LG의 비중이 만만찮거든요. LG에너지솔루션이 1.4조 원에 이르는 리콜 분담금 결정을 받아들이며 사태가 일단락됐습니다. LG 입장에서 GM은 자동차 업계의 거대 공룡으로 통하기 때문에 영향력 큰 고객을 잃는 실수는 범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폭스바겐이나 르노, 스텔란티스 그룹에게도 영향이 미칠지도 모르거든요.
소니의 경우는 다릅니다. 오랜 역사에 걸쳐 형성한 전자 산업 말고도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죠. 생명보험, 손해보험, 인터넷 은행, 라이프케어(노년층 생활 설계 전문)를 거느리는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던 소니의 든든한 밥줄이 됐고 소니 픽처스(영화 제작사)와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음반 기획사)의 합작사로 세워진 애니플렉스(Aniplex)는 "귀멸의 칼날 : 무한 열차 편"의 기획, 제작, 배급을 총괄하며 세계적 붐을 일으켰죠. 월 구독제로 운영 중인 PS(플레이스테이션)플러스는 새 게임 수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오아시스로 자리매김하며 PS 게임기보다 무형 자산(콘텐츠)이 더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쳤습니다.
소니에게 전기차 시장은 또 하나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사업일 뿐입니다. 예전과 같은 자금난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가 넓어졌으니까 2년 전 뿌렸던 떡밥을 시장성 큰 제품으로 살려서 키워보겠다는 선언입니다. 예전에 캠코더용 메모리 스틱처럼 독자 규격을 고집하다 사업을 말아먹었다면 지금의 소니는 그때와 다릅니다. 전 세계 주요 협력사들과 협력하며 만들어 낸 비전-S 프로토타입은 소니 전기차의 시작을 알리는 매개체로 한 단계 성장했습니다. 본격 출시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전기 SUV를 선보이며 가능성을 열어둔 점은 좋게 바라볼 만합니다. 올봄에 전기차 전문 회사인 소니 모빌리티를 세운다고 했으니 잘 추진된다면 실물로 볼 날이 그리 머지않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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