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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대외비 영화, 우리가 남이가! 본문
어제(1일) 메가박스 대구신세계에서 영화 '대외비'를 보고 왔습니다. 민주주의가 뿌리 뻗기 시작한 90년대 초반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의 과거 명칭) 해운대구를 배경으로 그려진 정치 암투극이었습니다. 이번만은 여당(민주자유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겠다던 후보 '전해웅', 윗선을 대변하며 정치판을 뒤흔들던 실세 '권순태', 돈 될 만한 일은 무엇이든 하고야 마는 조폭 '김필도'의 변화무쌍한 인간관계가 작품에 녹아 있었습니다. 돈다발 가득한 사과박스로 온정을 베풀던 그때 그 시절, 세상에 알려져선 안 될 기밀문서를 둘러싼 작품 '대외비'를 만나보실까요?
1992년 4월, 만년 국회의원 후보 전해웅(조진웅)이 부산 모처의 스튜디오에서 잔뜩 멋을 부립니다. 연이은 낙선으로 마누라의 핀잔을 달고 사는 그였지만 자신의 선거 지역구 해운대구에 임하는 자세는 남달랐습니다. 권순태(이성민) 밑에서 갖은 노력 끝에 거대 여당의 공천을 약속받았거든요. 자신감에 찬 해웅은 승용차(현대 엑셀)를 끌고 해운대구 재개발에 반대하던 주민들을 모아서 자신을 지지해 달라고 선동하는데요.
순태는 해웅의 이런 쓸데없는 행동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자기 말을 잘 듣는 사냥개로 키우기 위함이었는데 하루아침에 밀실 회의로 관계자들과 공천 약속을 물리고 대타를 꽂아 넣습니다. 소식을 알지 못했던 해웅은 자신의 집에서 돈 갚으라고 횡포 부리던 행동파 조폭 대장 필도(김무열)를 만납니다.
"정치할 끼라는 사람이 정보통이 그래 느려가 되겠습니까, 전해웅 후보님?"이라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한 해웅은 다음날 아침 부리나케 순태를 찾아갑니다. "내 영감님 밑에서 똥 다 닦아줬는데 갑자기 그라는 게 말이 됩니까?"라며 눈을 부라리다 이내 자세를 바꾸며 무릎을 꿇습니다. 순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해웅의 대타를 소개합니다.
해웅은 순태의 짜고 치는 선거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릴 박차고 일어납니다. 고등학교 총 동문회에서(건배사는 "우리가 남이가!") 선후배들을 만나 이름을 알리던 해웅은 해운대구 모 정부 부처에서 일하던 자신의 친구를 불러냅니다. 부산 해운대구 토지 개발 계획이 담긴 기밀문서를 찍고 넘겨 달라는 의뢰였습니다. "큰 거 석 장 꽂아줄게"라며 구두로 사과박스 배송을 약속하고 자료를 넘겨받습니다. 꿈에 그리던 여당 공천을 못 받게 됐으니 대외비 공문서를 재물로 삼아 국회의원 선거 캠프 운영 자금을 꾸리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죠.
기밀문서 촬영본을 손에 쥔 해웅은 필도의 근거지(모텔)를 찾아갑니다. 자료를 훑어본 필도는 이참에 크게 한 판 벌려야 하지 않겠냐며 자금을 부리던 지역의 검은손 정한모(원현준)를 끌어들입니다. 그렇게 만난 세 남자는 거래 성사 후 해운대 인근 주점을 돌며 비즈니스 관계를 돈독히 다집니다. 해웅은 선거 캠프를 꾸리고 필도는 배춧잎 가득한 사과박스 운송(주요 선거인들에게 뿌려질 쌈짓돈)을 전담하며 상대 세력을 견제하고 한모는 해웅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자신이 매수한 땅의 사업권자가 되길 희망합니다.
한 줄 대화 없이 시간의 흐름을 드러내던 삽입곡으로는 가수 전철의 "해운대 연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가사만 들으면 해운대에 꽃피던 연인과의 순수한 사랑 나눔을 담고 있지만 제 눈을 훔치던 대외비 속 주요 장면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순간의 파도에 한 줌의 모래알로 산산이 흩어질 이들의 위태로운 관계를 세련되게 역설하더군요. 노래 가사 속 "솔발길을 걷던 우리들의 사랑 얘기가 / 파도에 밀려 사라지네"에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해운대 모래밭에서 영원한 의리(사랑)를 맹세하지만 돈과 권력 쟁탈에 눈먼 그들의 관계는 과연 영원할까요?
어느 날 해웅의 선거 캠프에 부산매일신문 소속의 송 기자(박세진)가 취재를 나옵니다. 데스크(편집장 겸 부장)의 지령으로 무소속으로 출마한 해웅을 띄워주라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해웅에게 "민주자유당에서 공천받기로 했는데 팽 당한 게 아니냐며 소문이 돌던데요."라며 핵심을 쿡 찌르던 송 기자는 데스크의 의도를 훤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선거캠프에서 사과박스(청음 사과) 몇 상자 챙긴 듯한 부장에게는 대놓고 "까라면 까고, 빨려면 빨고, 절 그렇게 가르쳤잖아요, 부장!"이라며 받아쓰기를 결코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저널리즘을 뚜렷하게 강조합니다.
국회의원 선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오자 순태는 해운대구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은 무소속 해웅을 가만두고 볼 수 없었는지 밑작업을 준비합니다. 자신의 밀실에 해운대구 선관위(선거관리위원회) 실무자 박 과장(김윤성)을 소환합니다. 심장이 약한 박 과장 딸을 거론하던 순태는 "미국에서 이식 수술하면 쉽다카던데..."라며 후원을 약속하는 대가로 선거인 명부와 기표 용지 이미지를 복사한 디스켓(diskette, 플로피 디스크)을 요구합니다. 망설이던 박 과장은 딸을 살리겠다는 의지로 실행에 옮기지만 물건 전달 후 선장에게 삽을 얻어맞으며 바다에 풍덩 빠집니다.
일정 비율로 사전 투표된 용지는 트럭 어딘가에 실려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선거일 전날 밤 해웅은 자신의 집에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침대에 눕지만 자신이 꿈꾸던 국회 배지는 결국 순태가 꽂아 넣은 대타의 왼 가슴팍에 꽂히고 맙니다. 개표 결과를 지켜보던 필도는 표정이 일그러지며 해웅에게 대들며 자릴 박차고 나갑니다. 파란만장 인생에 매끈한 한 줄기 고속도로가 생길 줄 알았던 그들의 헛된 꿈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죠.
순태는 아예 한 술 더 떠서 해웅이 그려놓은 밑그림에 먹칠을 하기로 합니다. 해웅의 친구(해운대구청 소속)를 불러서 토지 개발 계획을 수정하자고 으름장을 놓더니 "이미 위에서 다 얘기가 끝난 건"이라며 수정된 공문서를 내밉니다. 라디오로 토지 개발 계획이 변경됨을 알게 된 한모는 조간신문을 받아 들고 해웅의 선거캠프를 찾아갑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보라고 다그치는 한모 앞에서 해웅은 "내가 알아볼 테니 시간 좀 달라"라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본전 생각이 나던 한모는 거금 몇 백을 들여 필도의 근거지를 치게 합니다. 피아식별 없는 지저분한 싸움에서 가까스로 몸을 피한 필도는 토지 개발 계획을 발표했던 해웅의 친구를 고문하고 해웅을 불러냅니다. 삼자대면 과정에서 해웅은 해운대구 토지 개발 계획 변경에 순태가 연루됐음을 알게 됩니다. 다음날 해웅은 송 기자가 근무하던 사무실로 찾아가 식사를 제안합니다. 후보 시절 자신이 빼돌린 공문서 정보가 모종의 거래로 바뀌었음을 일러주며 특종 거리를 안겨줍니다. 부산매일신보 1면에 대문짝만 하게 비리 소식이 실리자 순태는 신문을 집어던지며 신문사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작품 '대외비'는 이후 어떤 전개로 흐름을 이어가게 될까요? 2012년 작품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2015년 작품 '강남 1970', '내부자들'을 한두 번 관람한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예상될 만한 그림이 나올 겁니다. 절정에 들어서며 반전에 반전을 담고 있는데요. 꼭 두 번 중첩해서 꺾어야 했나 싶기도 합니다. 일품 배우들의 명 연기력을 덜어낸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아쉽게 느껴졌거든요. 영상미와 연출력은 괜찮으나 뒤로 갈수록 스토리의 살점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별 평점을 매긴다면 5점 만점에 4점 정도에 그칩니다. 시대극 속에 등장하던 옛 자동차들(엑셀, 갤로퍼, 코란도, 콩코드, 포텐샤, 베스타, 그랜저), 스치듯 지나던 부산의 옛 풍경, "거가 거-가?"라며 대단히 높은 압축률과 억양의 진수를 보여주던 부산 말씨(방언) 연출은 인상적이었지만 스토리 구성은 부족했습니다. 누린내 진하고 부속고기 풍성한 부산 돼지국밥을 한 그릇 잘 말아낸 줄 알았는데 느끼함 달랠 정구지 무침('겉절이 부추'를 의미하는 경상도 방언)은 잘 안 보이더군요. 그냥 심심하게 양은 냄비에 라면 끓여서 대선 소주나 내밀다니. 음식 고증은 좀 실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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