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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당신이 잠든 사이, 사진에 숨 불어넣는 갤럭시 본문
꽉 찬 일정을 보내고 난 토요일 아침, 머리맡에 충전해둔 스마트폰을 켰다. 갤러리-우하단 더보기 아이콘(≡)을 탭 하니 추천 버튼에 새 알림이 와 있었다. '추천'을 누르니 화면 위쪽의 '리마스터된 사진 보기'란에 예전에 찍은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코로나가 온 세상을 잠식하기 전 친구들과 같이 보낸 대만, 부모님 결혼기념일 30주년을 맞아 떠난 베트남 다낭에서의 추억 조각들이었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야경, "아... 이건 꼭 먹어야 돼!"라며 찾았던 가정식 요릿집 진천미, 키 높은 야자수 밑 벤치에 나란히 앉아 바닷바람을 맞던 그날까지 모든 기억을 갤럭시 S21+이 생생히 되살려냈다. S10+로 찍은 흐릿한 사진은 고해상도로 또렷하게, 어둡고 칙칙했던 분위기는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가 잠든 사이, 갤럭시 S21+은 전래동화 속 우렁이 각시처럼 사진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무슨 일일까?
삼성에서는 S21 시리즈에 추가된 'AI 포토 리마스터*' 기능 덕이라 말한다. S10+에서 S21+로 폰을 바꾸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집 근처 디지털프라자 매장에서 몇 번의 갤럭시 투고(to go)를 이용하면서도 체험하기 어려웠던 기능이었다. S21 울트라의 100배 줌으로 한밤의 보름달을 밝고 선명하게 찍든, S21+로 온갖 풍경과 음식 사진을 담든 인스타로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고르고 태그를 붙여서 올릴 줄만 알았지 그런 기능이 숨은 줄은 몰랐다. S10+을 쓰면서 갤러리-더 보기-추천으로 나오던 건 항상 '정리할 사진 확인하기' 혹은 '오래된 문서 정리하기'뿐이었다. 인스타로 올리고 싶은 사진은 갤러리 앱의 자동 보정을 거치거나 필터를 씌워서 인스타에 3:4 비율로 올리곤 했다. 원하는 색상과 선명도로 사진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의도한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S21+은 충전기에 밤새 꽂아놓고 푹 자고 일어나면(7~8시간) 많게는 10장씩 AI가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알다가도 신기한 일이다.
*AI 포토 리마스터를 쓰려면 작동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 배터리 95% 이상이면서 계속 충전 중(유선이나 무선 충전)이어야 하고 AOD(Always On Display)나 화면이 꺼진(폰을 사용하지 않을 때)상태가 76분이 지나야 한다. 이불 속에 뒹굴뒹굴하면서 밤새 유튜브나 트위치를 켜 놓고 있으면 안 돌아간다. 설정-배터리 및 디바이스 케어-우상단 더 보기 아이콘(…)-자동으로 케어-매일 자동으로 최적화 사용 중 체크-시간-오전 3:00 설정 및 RAM 확보를 위해 앱 정리하기 사용 중 체크를 해두면 보기 흉한 잔상이 화면에 남을 일 없이 말끔히 쓰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내가 잠을 자며 내일 쓸 기운을 모으는 동안 AI는 은밀하게 조용히 사진 보정에 힘쓴다. 디지털 현상된 이미지 데이터를 재조립하며 해상도, 밝기, 색감, 선명도를 맞춘다. 사용자나 알람으로 폰 화면을 띄우는 순간 AI가 일을 멈추니 리마스터된 사진을 보고 싶다면 내버려 두자. 사람이 한창 자신의 일에 몰입하다 흐름이 끊기면 다시 몰입하기 힘든 것처럼 AI도 똑같다.
리마스터된 사진의 보정 패턴은 주로 두 가지였다. DJI 오즈모 모바일2 짐벌에 S10+을 끼워 촬영했던 베트남 여행 사진은 밝기, 색, 선명도 보정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스타로 원본을 올리고 난 썸네일 사진(960 X 720 픽셀)은 고해상도 사진(3,840 X 2,880 픽셀)으로 이미지 선명도가 더 또렷해졌다. 일부 썸네일 사진이 1080 X 810 픽셀 크기인 경우는 4,320 X 3,240 픽셀까지 해상도가 높아졌다. 좌우로 각각 4배씩 늘어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저수지와 공원 주변을 둘러보며 담은 S21+ 원본 사진들도 베트남 여행 사진과 같은 패턴으로 사진 보정을 제안했다.
AI가 가공하는 사진들은 무작위라서 언제 무슨 사진이 리마스터될지 알 수 없다. AI가 해상도가 낮은 사진 위주로 골라 작업하는 느낌이다. 그날 기분대로 작업하고 싶은 사진만 골라서 색을 입히고 선을 더하고 밝고 어둡기를 건드리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난 내가 폰 화면을 켜면 갤러리-추천-리마스터된 사진 보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사진 보정을 했는지 알려준다. 제안된 사진 리스트 중 하나를 고르면 보정 전(Before)과 보정 후(After) 이미지를 좌우로 밀어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오른쪽 아래 내려받기 아이콘을 탭 하면 원본이 든 폴더에 AI가 보정한 사진이 같이 저장된다. 당시 사진에 기록된 위치 태그와 날짜를 비롯한 온갖 촬영 정보(EXIF)는 그대로 보존된다. 왼쪽 아래 공유 아이콘을 탭 하면 보정된 사진의 썸네일 이미지(1,440 X 1,080 픽셀)를 카카오톡으로 내려받아 미리 볼 수도 있다(이때 EXIF 정보는 삭제됨).
3월 중순부터 갤럭시 S21+을 썼으니 벌써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갤럭시 노트4 S-LTE(2015.06)에서 S10+(2019.03), 갤럭시 S10+에서 S21+(2021.03)로 삼성 스마트폰과의 인연은 세 번째를 맞았다. 스마트 스위치로 두 번 옮겨서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들만 대략 1만 장인데 S21+과 45일 넘게 지내며 리마스터된 사진은 85장이다. 아마 절반은 충전해 두지 않아서 AI도 사진 보정할 여력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매일 같이 충전시켜두면 언젠가 몇 백장이 쨍한 사진으로 달라져 있겠지라며 기대를 품는다. 사진 촬영 날짜에 관계없이 무작위로 몇 장씩 리마스터된 사진을 보여주니 매일 아침이 흥미롭다. 며칠 전 하늘에 구름이 꽉 차게 걸려서 어두운 분위기를 냈던 저수지 풍경도 보이지 않는 AI의 손길을 거치고 나면 한결 풍부한 색감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보면 볼수록 놀랍다. 잘해야 중학생 수준이라던 AI가 이 정도라니. 가르칠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한 수 배워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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