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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다른 일본의 경차, 캐스퍼는 그냥 소형차

커피스푼 2021. 9. 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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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계약을 앞둔 경차, 현대 캐스퍼입니다.
사전계약을 앞둔 경차, 현대 캐스퍼입니다.

 

최근 현대 캐스퍼를 향한 국내외 관심이 뜨겁습니다. 모닝 아니면 레이, 스파크뿐이던 경차 선택지가 하나 더 늘었거든요. 귀엽고 둥근 얼굴에 발랄한 색깔로 잘 꾸며서 예쁘기까지 합니다. 향후 인도와 동남아, 유럽으로 판로를 넓힐 계획이라는데요. 우리나라보다 자동차 시장 규모가 큰 일본에서 캐스퍼는 일반 소형차에 속합니다. 일본의 경차 규격을 만족시키지 못하거든요. 660 cc에 머문 엔진 배기량, 길이와 폭이 한국보다 좁고요. 도심 운행용으로는 높이 제한에 걸려서 웬만한 기계식 주차장에 차를 넣기도 힘듭니다. 일본의 경차는 우리나라랑 무엇이 다를까요?

 

 

1. 길이 3.4 m, 폭 1.48 m 넘기면 소형차

 

일본의 경차는 한국 경차보다 더 작습니다. 배기량도 660 cc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경차는 한국 경차보다 더 작습니다. 배기량도 660 cc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경차(경자동차) 규격은 아주 엄격하기로 유명합니다. 전장 3,400 mm, 전폭 1,480 mm, 전고 2,000 mm, 배기량 660 cc 이하를 만족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차는 전장 3,600 mm, 전폭 1,600 mm, 전고 2,000 mm, 배기량 1,000 cc 이하라서 법적 규제가 일본보다는 덜한데요. 현대 캐스퍼 말고도 기아 모닝이나 레이, 쉐보레 스파크는 일본에서 모두 보통 소형차가 됩니다. 연간 자동차세(1만 8백 엔), 자동차 중량세, 취득세(2 %) 등 세금 혜택은 비슷하고요. 일본에서 자동차 소유 시 꼭 필요한 차고지 증명이 자유롭기도 합니다. 물론 도쿄도와 같은 인구 밀집 지역은 필수죠. 

 

대한민국에서 소형 세단인 아반떼는 어떻냐고요? 놀랍게도 중형차가 됩니다. 일본에서는 전장 4,700 mm, 전폭 1,700 mm, 전고 2,000 mm, 배기량 2,000 cc 이하인 차를 소형차로 정의하는데요. 아반떼는 전장(4,650 mm)과 높이(1,420 mm), 배기량(1,600~2,000 cc) 기준을 만족하지만 전폭(1,825 mm)은 125 mm 초과합니다. 일본의 도심 속 기계식 주차장 입출차 전폭(1,850 mm)을 겨우 만족시키기도 하죠. 높이 제한은 1550 mm인 곳이 많아서 캐스퍼(1,575 mm)랑 레이(1,700 mm)도 안 되겠군요. 모닝과 스파크만 가능합니다.

 

 

2. 세련미보다 기능성에 집중한 실내

 

일본에는 스즈키 스페이시아 같은 박스형 경차가 잘 팔립니다.
일본에는 스즈키 스페이시아 같은 박스형 경차가 잘 팔립니다.

 

스즈키 짐니, 다이하쓰 코펜, 혼다 S660 등 일부 특화 모델을 뺀 일본의 경차는 외형이 대체로 투박합니다. 레이처럼 생긴 박스형 경자동차가 대부분이죠. 뭉뚝하고 두툼한 예전 스타일의 헤드램프를 달거나 라디에이터 그릴 전체에 크롬을 둘러서 번들거리는 차들이 많습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디자인보다는 기능성과 감성이 돋보이죠. 다른 차급에 파묻혀 시선이 깔리지 않도록 시트 위치를 껑충 높인 점도 공통적입니다.

 

 

스즈키 스페이시아의 실내 모습입니다.
스즈키 스페이시아의 실내 모습입니다.
이렇게 보면 경승합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경승합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내는 밀레니엄(2000년대) 시절 등장한 차가 아닌가 싶을만큼 고전적입니다. 현대화가 진행된 건 가운데 달린 내비게이션 화면뿐이군요. 사방이 잘 보이면서 주차하기 쉽고 수납할 곳이 많으면서 자전거처럼 큰 화물까지 싣기 편한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앞좌석 등받이는 완전히 뒤로 눕혀서 2열 방석과 수평으로 연결되죠. 전고는 레이만큼 높아서 차박을 위한 거주성까지 잘 갖췄습니다. 일본에서는 3~4인 가족형 이동 수단으로 쓰이지만 한국에서는 무리겠군요.

 

 

혼다 N-BOX의 기능성 소개 광고 영상입니다. (1분 3초)

 

3. 경차는 싸다? 아반떼보다 비싸기도

 

혼다 N-BOX 같은 박스형 경차는 가격 범위가 넓습니다. 추가할 옵션이 너무 많거든요.
혼다 N-BOX 같은 박스형 경차는 가격 범위가 넓습니다. 추가할 옵션이 너무 많거든요.

 

일본의 경차는 저렴해서 경차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일본에서 4년째 판매 1위를 기록(2021년 7월 1만 6,692대 판매) 중인 혼다 N-BOX만 해도 142만 8,900엔(한화 약 1,504만 원)부터 시작해서 터보차저를 붙이고 웬만한 편의 기능을 더하면 201만 9,600엔(한화 약 2,126만 원)까지 치솟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레이는 시작가가 1,355만 원이고 최고 트림인 시그니처에 온갖 옵션을 채워도 1,785만 원입니다. 일본에서 중형차인 아반떼는 1,570만 원부터 시작했다가 인스퍼레이션 풀옵션이 되면 2,527만 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 일본에서 둘째, 셋째로 잘 팔리는 경차와 견주면 어떨까요? 지난 7월에는 스즈키 스페이시아가 1만 983대, 다이하쓰 무브가 8,979대가 팔렸습니다. 두 차의 가격대는 그나마 레이(1,355~1,580만 원). 모닝(1,175~1,520만 원)과 비슷합니다. 트림 기본 가격만 보면 스페이시아는 140만 2,500~180만 8,400엔(한화 약 1,476~1,904만 원), 무브는 113만 5,200~137만 5,000엔(한화 약 1,195~1,447만 원)입니다.

 

 

혼다 N-BOX의 주요 편의 기능입니다. 경차가 차지하는 파이가 크니 편의 기능도 다양하네요.
혼다 N-BOX의 주요 편의 기능입니다. 경차가 차지하는 파이가 크니 편의 기능도 다양하네요.

 

편의 기능은 우리나라만큼 잘 갖췄습니다. 혼다 N-BOX의 경우 핸즈프리 전동식 슬라이딩 도어, 후석 시트 알림, 풀 오토 에어컨, 패들 시프트, 동반자석 슈퍼 슬라이드(57 cm까지 연장) 2열 폴드 앤 다이브, 항균 시트, 자외선 차단 및 적외선 저감 유리(전후좌우 모든 방향), 시트백 간이 테이블 등이 들어가는데요. 일부 선택 품목인 ETC 2.0 차 재기(하이패스 자동 결제 시스템)는 1만 9800엔(한화 약 21만 원), 8 인치 고급 내비게이션 패키지도 20만 9천 엔(한화 약 220만 원)이나 합니다. 순수하게 차만 팔아서는 수익이 남지 않아서 편의 장비를 채우면 아반떼 가격을 우습게 넘기죠.

 

 

스즈키 스페이시아의 경우 HUD(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달리기도 합니다.
스즈키 스페이시아의 경우 HUD(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달리기도 합니다.

 

 

4. 일본은 경차가 좋아서 탄다? 아닌데요!

 

2021년 7월 집계된 경차 판매량 TOP 15입니다. (출처 : 전국 경자동차 협회 연합회)
2021년 7월 집계된 경차 판매량 TOP 15입니다. (출처 : 전국 경자동차 협회 연합회)

 

한국은 경차가 캐스퍼 포함 4종뿐(라보 등 경상용차 제외)이지만 일본은 경차가 다양하고 판매량도 압도적이죠. 혼다 S660, 다이하쓰 코펜처럼 생긴 경스포츠카 장르도 있고 스즈키 짐니처럼 경오프로더로 만든 차도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에 저가형 4륜 구동까지 겸비한 박스카도 흔하죠. 2020년 일본에서 판매된 경차만 171만 8,088대에 달합니다. 연간 일본 자동차 판매량의 3분의 1에 달하죠. 같은 해 우리나라 경차는 9만 7,072대가 팔렸습니다. 경차 판매량만 18배나 차이가 납니다.  

 

일본이 경차를 좋아해서 많이 팔리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차 외 진입금지"를 표시한 구간이 있을만큼 좁고 도로 사정도 마냥 좋지는 않습니다. 도쿄도를 관통하는 수도 고속도로는 제한 최고 속도가 80~90 km/h, 일부 급커브 구간은 40~60 km/h로 줄기도 합니다. JR 철도 위에 고속도로, 고속도로 위에 고속도로를 쌓는 민자 고속도로 회사 넥스코(NEXCO)는 주택가 방음벽도 안 깔아줍니다. 차 유지비(자동차 중량 세, 주차비, 자동차 검사비 등)가 엄청 들어가니까 소형차 이상의 보통차를 잘 안 사는 겁니다. 금전 여유가 되면 일본인들도 경차를 안 사죠.

 

 

젊은 세대를 타게팅한 혼다 N-ONE입니다. 이같은 개인용 경차엔 노란색 번호판이 달립니다.
젊은 세대를 타게팅한 혼다 N-ONE입니다. 이같은 개인용 경차엔 노란색 번호판이 달립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경차용 번호판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우리나라는 유럽식 7~8자리 번호판 구조로 차급에 관계 없이 흰 바탕에 검은 글씨를 쓰는데요. 일본의 개인 자가용 경차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붙습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는 "저 작은 차도 영업용인가?"라고 보셨을텐데요. 영업자용 경차는 그 반대로 검은색 바탕에 노란 글씨가 붙습니다. 소형차 이상의 보통차들만 흰 바탕에 검은색 글씨를 씁니다. 택시와 버스 같은 영업용 보통차는 녹색 바탕에 흰 글씨를 쓰죠. 일본에서 번호판 숫자 "0"은 "가운뎃점(·)"으로 대체해 쓰기도 합니다. 좋게 보면 신기한 문화이지만 어떻게 보면 번호판 바탕색은 일종의 "계급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씁쓸하군요.

 

 

5. 홋카이도(북해도)는 4륜 구동이 필수

 

스즈키 허슬러입니다. 4륜 구동 및 겨울용 타이어는 홋카이도의 필수품이기도 합니다.
스즈키 허슬러입니다. 4륜 구동 및 겨울용 타이어는 홋카이도의 필수품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홋카이도 삿포로와 비에이 지역을 여행하며 700 km 이상 다녀왔던 적이 있습니다. 경차를 빌릴까 하다가 부족한 엔진 성능이 눈에 거슬려서 컴팩트 카를 골랐는데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차로 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닝, 레이보다 작은 차인데도 4륜 구동이 됐거든요. 기본적으로는 앞바퀴 위주로 돌다가 트랙션을 잃을 것 같으면 뒷바퀴 차축에 달린 전기 모터를 돌려서 험로 탈출 및 눈길 주행을 돕는 e-4WD 방식이 일반화돼 있더군요. 스즈키 짐니와 같은 오프로더 특화 모델은 파트타임 4륜 구동도 됩니다.

 

스즈키의 경오프로더 짐니는 파트타임 4륜 구동이 됩니다. 하지만 출고 대기가 길다는 단점이...
스즈키의 경오프로더 짐니는 파트타임 4륜 구동이 됩니다. 하지만 출고 대기가 길다는 단점이...

 

치명적 단점이라면 홋카이도나 일본 동북부에서 끌던 차를 중고차로 되팔 때가 되겠군요. 겨울에는 강원도 폭설이 애교로 보일 만큼 심하게 눈이 쌓입니다. 한여름에 내리는 스콜성 강우는 또 어떻고요. 마치 고압 세차기 속에서 20 km/h 안팎으로 기어 다녔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의 힘을 이겨낸 차들을 현지의 중고차 업자들이 좋은 가격에 사 줄 리가 없죠. 우리나라가 해안 지방의 중고차들을 꺼리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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