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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전기차 안 뽑던 토요타, 소름 돋는 계획은 지금부터 본문
토요타가 2022년부터 전기차를 선보입니다. 올 4월 중국 상하이 모터쇼에서 공개한 콘셉트 카 bz4x가 그 시발점이죠. 불과 며칠 전인 7일에는 전고체 배터리를 단 시제차(프로토타입 카)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까지 나왔습니다. 2025년까지 전기차 15종을 출시하고 2030년까지 총 16조 원을 쏟아붓는다죠?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2010년대 초 美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 판을 키우고 우리나라 현대차 그룹과 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계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RNM(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프랑스(푸조)-미국(지프)-이탈리아(피아트)를 잇는 스텔란티스 그룹이 전기차를 팔면서 전동화 계획을 짤 동안 토요타는 뭘 했을까요? 아시아계에서 규모 큰 자동차 브랜드가 전기차를 일부러 "안" 뽑고 기를 모은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토요타가 절치부심하며 설계 중인 "전동화 빅 픽처"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1. 급발진 결함에 깊게 벤 토요타의 상처
지난 2009~2014년 토요타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미국에서 급발진 추정 문제를 바닥 매트와 가속 페달 간의 간섭 이슈로 가벼이 여기다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거든요. 당시 美 NHTSA(미국 고속도로 교통 안전국), NASA(항공 우주국) 소속 기술자들을 매수해 기술적 결함을 숨기다 바(BARR) 그룹이 재판 과정 중 토요타의 ECU 소프트웨어 결함을 실험으로 입증하면서 상처가 더 벌어졌습니다. 첫 재판에서 기소 유예를 전제로 벌금 12억 달러(한화 약 1조 4,100억 원)를 물고도 80여 건의 소송전을 치러야 했습니다. 중고차 가격이 반토막 나는 등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에 버금가는 천문학적 금융 치료(40조 원 이상 지출)가 이어졌죠.
2009년 사장으로 갓 진급한 토요타 아키오는 전 세계에 머리를 숙이기 바빴습니다. 급발진 결함은 그 어떤 존재로도 씻을 수 없는 토요타 가문의 큰 수치였죠. 1984년 입사 후 영업과 생산 관리직부터 바닥을 다지며 올라선 그는 경영이 방만한 그룹 계열사를 쳐내고 차종을 줄이고 공정 최적화, 디자인 현대화 등 경영 개선 조치를 취합니다. 일본 자동차 공업 협회(JAMA) 장을 겸임하는 지금도 토요타 마스터 드라이버로서 신차 평가에 나서며 R&D(연구 및 개발)에 막대한 자본을 풀고 있죠. 12년 전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기술적 빈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토요타의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의 신차도 그의 검증을 마친 뒤에 나옵니다.
2. 일론 머스크의 키 메이커, 토요타 아키오
2010년 토요타 아키오 사장은 테슬라 로드스터(세계 첫 전기 스포츠 카)로 눈길을 끌던 일론 머스크를 만나러 캘리포니아로 날아갑니다. 그 해 5월 20일 일론 머스크와 악수하며 전기차 공동 개발 착수금으로 5천만 달러(한화 약 587억 5천만 원)를 투자했죠. 프리몬트의 자동차 조립 공장(GM-토요타 합작으로 세워졌던 옛 "누미")과 부지 일부를 사들인 테슬라는 토요타의 자동차 제조술을 익히며 역대급 전기차를 찍어냅니다. 2012년 출시된 모델 S죠. S 이후로 X, 3, Y를 차례로 선보이며 "SEXY"를 완성합니다. 자금난에 시달렸던 파나소닉은 테슬라 덕에 회생하며 유럽과 미국 곳곳에 기가팩토리를 건설하기 이릅니다.
토요타는 모델 S의 전기 파워트레인을 쓴 라브(RAV) 4 EV를 손에 넣었지만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2013년 세련된 얼굴로 단장한 4세대 라브 4에 파묻혔죠. 1997년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의 연료 절감술에 공들이며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테슬라가 오토파일럿과 루디크러쉬 모드를 넣으며 전기차 붐을 일으키자, 토요타는 2014~2015년에 걸쳐 투자금을 회수하다 2016년 말 전기차 독자 개발 부서를 만들었죠. 양 사는 2017년 각자의 길을 걷자고 갈라섭니다.
3. 지구가 아파요? "탄소 벌금"이 두려운 제작사들
2015년 폭스바겐 발 디젤 게이트를 기억하시나요? 디젤은 가솔린보다 친환경적이라던 믿음을 배신한 희대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배출가스 인증 시험 때만 매연을 덜 뿜는 소프트웨어를 집어넣고 일반 주행 때는 기준치의 몇 배에서 수십 배가 넘는 질소산화물(NOx)과 탄소를 공기 중에 내보냈죠. 조작된 엔진은 2리터 디젤뿐이라던 첫 설명과 다르게 3리터 V6 엔진으로 확대되면서 파장을 키웠습니다. 유로 6 디젤차에 세제 혜택을 주던 우리나라 환경부도 디젤 게이트에 연루된 브랜드를 한데 모아 과징금 폭탄을 터뜨렸죠.
배출가스 규제는 전보다 더 강화됐습니다. 유럽은 실 도로 주행 비중이 높은 WLTP로 기준을 바꾸고, 미국은 CAFE(기업 별 평균 연비 기준)를 손봤죠. 2020년에 접어들며 유럽은 탄소 배출 규제 시행 계획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각 브랜드가 판매한 자동차 1대 당 탄소 배출량 초과분(전체 평균 탄소 배출량에서 국가 별 탄소 배출량 기준치를 뺀 값)에 판매량을 곱한 값만큼 환경 개선 부담금을 내도록 한 제도입니다. 이른바 "탄소 배출 벌금"인 셈이죠. 2020년 기준 유럽에서 허용하는 탄소 배출량은 95 g/km였습니다.
강화된 환경 정책에서 두각을 드러낸 곳은 바로 토요타입니다. 몇 년 전인 2018년만 해도 평균 초과 배출량이 0.2g/km밖에 안 돼서 벌금도 1,800만 유로(한화 약 249억 3,162만 원)만 내면 됐습니다. 그 해 영업 이익의 0.1%에 불과합니다. 판매 중인 차 대부분이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니까 R&D 같은 분야에 재투자할 여유가 생기죠.
다른 브랜드는 어떨까요? BMW 그룹은 7.6 g/km, 다임러(벤츠) 그룹은 11 g/km을 초과해 각각 7억 5,400만 유로(8.3%, 한화 약 1조 443억 5,786만 원), 9억 9,700만 유로(9%, 한화 약 1조 3,809억 3,473만 원)를 내야 합니다. 현대차 그룹은 7.7 g/km을 넘겨서 7억 9,700만 유로(한화 약 1조 1,039억 1,673만 원)를 지불하겠죠. 영업 이익의 28.9%를 벌금으로 날리는 겁니다.
아우디 폭스바겐 그룹은 어땠을까요? 12.7 g/km을 초과해서 벌금만 45억 4백만 유로(32.4%, 한화 약 6조 2,384억 4,536만 원)나 됩니다. 폭스바겐이 왜 마르고 닳도록 전기차 ID 출시에 매진하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전기차 팔아서 탄소 배출 평균치를 떨궈야 영업 이익이 늘잖아요. "지구가 아파서 열이 나요"에 공감하는 건 그다음의 몫입니다.
4. 토요타, 하이브리드 단물은 다 빨고 뱉는다
누가 뭐래도 하이브리드 기술력으로 토요타를 능가할 브랜드가 없습니다. 1997년 세상에 하이브리드 차가 왜 필요하냐며 주위의 멸시를 받았지만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빚은 미국 발 금융 위기로 프리우스의 가치가 재평가됩니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렀군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하이브리드 차는 유럽과 미국, 우리나라에 퍼지며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됐습니다. 토요타 특허를 비껴가는 기술 개발이 진행되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까지 성숙해졌죠. 기존 하이브리드에서 소형화된 마일드 하이브리드도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상황이 이러니 토요타는 당장 전기차를 내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100 km 안팎을 달렸던 전기차 등장 후 10년이 지났어도 플러그 꽂고 20~30분을 머무르는 충전은 여전히 번거롭고 불편하거든요.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테슬라는 일본에선 여전히 "듣보잡" 취급을 받습니다. 같은 미국산인 코스트코에는 열광하지만 테슬라는 보통의 내연기관 차라곤 만들어 본 적도 없는 미국산 가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거든요. 숙성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필요하거든 향후 테슬라에게서 돈으로 사 와도 됩니다. 업계에서는 "기술 제휴 양해 각서(MOU) 체결"이란 치트키가 있으니까요.
5. 전기차 기술 특허 경쟁력, 현대차의 다섯 배
토요타는 전기차를 "못" 만들어서 "안" 내놓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을 품은 하이브리드나 더 무거운 배터리 팩과 전기 모터를 껴안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의 최종 진화형 선택지 중 하나죠. 다 순수 전기차로 연결되는 전동화 기술들입니다. 토요타는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되는 위치에 있습니다. 한 때 뒤에서 밀어주던 테슬라의 성장을 예의 주시하며 간을 보는 겁니다.
현재 개발된 전기차 특허 기술 경쟁력을 포인트로 계산한 자료가 있는데요. 토요타(8,363점)가 선두를 달립니다. 2위는 포드(6,564점), 3위가 혼다(3,849점)입니다. 포드는 실내 공조 기술에 강한 경쟁력을 띱니다. 2025년까지 300억 달러(한화 약 35조 2,500억 원)를 부어서 2030년 판매될 차 40%를 전기차로 채운다는 목표를 갖고 있죠. 제너럴 모터스(GM, 3,283점)는 4위, 일본 내 가장 큰 자동차 부품사인 덴소(2,581점)도 5위에 들었군요. 덴소는 전기 모터 회전력 제어 분야에서 강점을 띱니다(토요타의 다섯 배).
불매 운동에 휘말려 우리나라를 떠난 닛산(1,950점)은 6위입니다. 7위는 퀄컴 할로(전기차 무선 충전 패드 기술)를 사들인 와이트리시티(1,749점), 우리가 잘 아는 테슬라(1,741점)가 8위네요. 테슬라는 상위 10곳 중 특허가 가장 적으나 특허 수가 세 배 더 많은 닛산에 버금가며 전기 모터 및 배터리 방열 기술이 토요타보다 더 뛰어납니다. 히타치 오토모티브·게이힌·쇼와·닛신 공업이 하나로 합쳐진 히타치 아스테모(1,709점)도 9위에 올랐습니다. LG전자와 마그나 인터내셔널이 합작해 세운 회사인 엘지마그나(21년 7월 초 설립)는 안 보이는군요.
아이오닉 5로 E-GMP를 알린 현대차(1,694점)는 10위입니다. LG 에너지솔루션을 배터리 특화 기업으로 내보낸 LG화학(1,421점)은 11위, 보쉬(1,285점)가 12위네요. EV6를 내보낸 기아차(911점)는 20위에 있습니다. 상위 50곳 중 파나소닉(1,250점, 14위)을 포함한 21곳이 일본, 13곳이 미국 기업입니다. 분석한 자료를 보고 나니 한숨만 나네요. 비야디(BYD) 같은 중국계 전기차 브랜드가 안 보여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6. 격차 극복은 "시간문제", 진짜 큰 게 온다
최근 아이오닉 5가 유럽계 일부 자동차 전문지에서 호평을 받는다죠? 카와우(Carwow)에서는 맷 왓슨이 기아 EV6를 유튜브에 소개하며 당장 사야 할 전기차라고 칭찬해줬습니다. 우리나라의 전기차 경쟁력은 다른 유럽계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벼도 될 만큼 충만한 걸까요?
토요타가 설계 중인 "전동화 빅 픽처"를 보고 나니 저는 미래가 걱정됩니다. 토요타가 전기차 및 수소차 R&D에 쏟아붓는 자금력이 현대차 그룹과 비교가 안 되거든요. 토요타 계열사로 통하는 덴소가 단독으로 밀어 넣는 총액만 연간 5천억 엔(한화 약 5조 3,348억 5천만 원)입니다. 현대차는 부품사인 현대 모비스까지 끌어와야 약 5조 8천억 원(2020년 기준)이 됩니다. 경쟁 상대가 비단 토요타뿐일까요? 포드 바로 다음인 혼다의 전동화 경쟁력도 만만찮습니다.
토요타가 당장 전기차를 안 푸는 건 하이브리드의 단물을 남김없이 빨고 가겠다는 의미지, 못 만들어서가 아닙니다. 다른 브랜드들은 매년 지불할 탄소 벌금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전기차를 내보내는 건데요. 토요타는 방향이 다릅니다. 현행 주요 국가의 탄소 배출 허용 기준인 95 g/km도 앞으로 더 낮아지니까 슬슬 전기차를 꺼낼 때가 됐다고 판단한 겁니다. 12년 전 기술적 빈 틈으로 입은 내상을 미국에 그대로 되돌려주지 않을지 싸늘해집니다.
우리가 경계할 대상은 독 3사(벤츠, BMW, 아우디)나 테슬라가 아닙니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전동화 카운트다운이 머지 않았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쩌면 현대차가 하이드로젠 웨이브로 수소차 시장을 선점하려는 게 토요타의 절치부심을 대충 눈치채고 미리 플랜 B를 짜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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