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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무르익은 가을, 가성비 커피는 못 참지 본문
직장인에게 가을은 등 따시고 배부르면 두 눈이 스르르 감기는 계절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카페인을 수혈받는 그 순간을 빼면 졸음이 알게 모르게 찾아옵니다. 일교차 큰 요즘 날씨엔 달콤씁쓸한 커피 한 잔이 더 고플 뿐입니다.
새 직장에 근무란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습니다. 저녁이면 쥐 죽은 듯 사방이 조용해지는데 뜨문뜨문 자리 잡은 커피 전문점들은 길가의 보통 음식점들보다 활력이 넘칩니다. 싼 맛에 즐기던 편의점 커피 말고 다른 커피나 맛볼까 해서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아파트랑 몇 안 되는 원룸 주택이 공존하는 이 동네의 길가 분위기는 좀 달랐습니다.
얼마 전 문을 연 메가커피에 더 벤티 같은 가성비 커피 전문점이 주변을 밝게 비추며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미용실과 김밥 전문점이 공존하는 작은 상가 골목에서 더욱 눈에 띄더군요. 이곳 사람들의 만남의 광장쯤 되어 보였습니다.
그저께엔 더 벤티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메뉴 중 하프 벤티(half-venti)로 나오는 아인슈페너가 맛있다는 소문을 들었거든요. 보통 다른 음료들은 스타벅스 벤티만큼 넉넉하게 담아주지만 더 벤티의 아인슈페너는 예외입니다. 양보다 질에 집중한 느낌일까요?
14온스 테이크아웃 컵에 포장된 아인슈페너 가격은 3,500원이었습니다. 스타벅스에서 톨(Tall) 사이즈로 주문하던 블랙 아인슈페너랑 비슷한 양입니다. 토핑을 눈대중으로 살피니 휘핑크림이랑 시럽은 충분히 두르고 시나몬 파우더는 덜 쓰는 식으로 올렸더군요.
숙소로 곧장 가져와 한 모금 마셔봤습니다. 입구를 에워싼 휘핑을 빨면서 잔을 기울였더니 부드럽게 적시는 달달함에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시나몬 향은 코 앞에서 흔적을 남긴 채 흰 거품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춥니다. 어제 마셨던 메가커피의 티라미수 라떼보다 맛의 강약이 분명해서 음료 만족도 부문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습니다.
휘핑 밑에 가라앉은 커피는 빨대를 꽂아 마셨습니다. 한두 모금했더니 가라앉은 시럽과 고소한 커피가 어우러져서 죠리퐁 커피우유를 마시는 듯한 느낌입니다. 코 안쪽의 비강을 스치는 꼬순내가 마음에 듭니다. 이내 빨대로 휘휘 저어서 휘핑 층과 커피 층을 뭉개서 호로록 마시니 잘 넘어가는군요.
엊저녁엔 다른 매장을 찾아갔습니다. 메가 커피 다음으로 슬세권(슬리퍼 차림으로 누비는 동네 상권) 커피 브랜드로 입소문이 자자한 '컴포즈커피'였습니다. 제가 머무는 동네엔 이 브랜드가 아직 없어서 번화한 옆 동네로 버스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10분쯤 걸려 버스에서 내리니 커피랑 베이커리 전문점, 화장품 로드숍인 올리브영이 바로 보입니다. 밤 8, 9시쯤이면 고요해지는 어느 동네랑 분위기가 다릅니다.
KFC 바로 옆에 문을 연 컴포즈커피의 시즌 한정 메뉴는 초당 옥수수를 곁들인 스위트콘 라떼였습니다(가격은 3,500원). 감칠맛과 달콤함, 부드러움이 잘 조화된 음료일 거라 생각해 주문했더니 아쉽게도 품절이었습니다. 재고가 남던 스위트콘 밀크셰이크(3,900원)는 맛 균형이 달달함에 쏠려 있을 듯해서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메뉴판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결정한 음료는 헤이즐넛 라떼입니다. 20온스 테이크아웃 컵에 포장된 음료 가격은 3,000원이었습니다.
커피만 사서 돌아가려 했더니 눈앞에 빵집이 아른거립니다. 작은 칠판에 정리된 문구와 메뉴를 살피다 빵 진열대를 둘러보기로 합니다. 잘 팔리는 빵들은 부스러기만 남아서 휑하고 유난히 달달해 보이는 빵들은 칸막이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서 누군가의 빵 트레이에 오르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둥글게 말린 몽블랑, 갸름하면서 봉긋한 소금빵 코너를 지나서 존재감이 돋보였던 크루아상을 골라 담았습니다. 베이커리 업계가 인정하는 대회에서 상 받은 빵이라고 했으니까 맛을 안 볼 수 없었습니다. 정가는 4,500원인데 저녁 할인을 받아 3,800원에 업어왔습니다.
적립을 마치고 버스정거장으로 갔더니 공교롭게도 전 정류소를 출발했다는 알림이 뜹니다. 실은 컴포즈커피를 찾아가기 전에 맞은편 정거장에서 어떤 버스가 오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빵집 문 바로 앞이 버스정거장이라서 빵 하나라도 신중히 고를 여유까지 생깁니다. 미리 준비한 에코백에 잘 담아서 환승 버스를 타고 숙소까지 터벅터벅 걸어왔더니 시계는 8시 반을 훌쩍 넘겼습니다. 굳이 버스를 타서 사 가져온 커피를 음미할 생각에 피로 대신 마음이 설렙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에코백을 조심히 열어 커피를 꺼냈습니다. 다행히 흰 우유층과 밀크 캐러멜 빛깔의 커피 층이 막 섞이지 않았군요. 빨대를 꽂아 맨 아래층의 달달한 기운부터 느껴봅니다. 침전된 시럽과 우유를 한 모금했다가 컵 뚜껑을 살포시 열어 위층의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켭니다. 사흘 전 마셨던 메가커피의 티라미수 라떼보다 한결 깔끔해서 막 마시기 좋네요. 더 벤티의 아인슈페너보다는 커피 향이 순하면서 덜 달고 대체로 가벼웠습니다.
셋 중에 무얼 다시 마실 꺼냐면 더 벤티의 아인슈페너입니다.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보다 양은 좀 적더라도 커피 향이 조금 더 진해서 마음에 듭니다. 바디감이나 맛 균형도 조금 더 잘 잡힌 느낌이었습니다. 지금 머무는 동네에서 접근성이 좋은 점도 한몫합니다. 물론 품절로 기회를 놓쳤던 컴포즈커피의 스위트콘 카페라떼를 맛본다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르겠군요. 더 벤티 옆에 신장개업한 메가커피는 뭘 마시는 게 좋을지 다른 메뉴를 찍먹 하며 살펴야겠습니다. 냉장 보관용 커피로 유명한 메가리카노(에스프레소 3샷)도 언젠가 제 선택을 받을 날이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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