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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교섭 영화 보고 왔습니다 본문
오늘(29일) CGV 대구스타디움에서 영화 '교섭'을 보고 왔습니다. 설 연휴 직전 개봉한 영화로 입소문(바이럴) 마케팅을 띄웠지만 관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6점 대에 불과하더군요.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에서 모티브(motive, 제작 동기)를 얻고 약간의 허구를 더해 만들어진 작품이었으나 완성도는 관객의 기대에 못 미친 듯했습니다. 배우 황정민과 현빈, 작품 '리틀 포레스트'와 '제보자'를 맡았던 임순례 감독의 네임드(유명한) 파워로는 부족했던 걸까요?
작품은 몇 장의 사진과 영상이 짧게 흐르며 시작됩니다. 공중 납치(하이재킹)된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며 무너졌던 2001년 9.11 테러를 알고 계시나요? 당시 미국 정부는 테러를 사주한 오사마 빈 라덴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이를 거절하며 전쟁이 벌어집니다. 미국은 반 탈레반 부족 연합과 뭉쳐서 탈레반을 밀어냈으나 이라크에 잠재된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병력을 파병하며 치안 공백이 생기고 맙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의료 지원, 사회 기반 시설 재건을 전담하는 비전투원 부대(건설공병단, 다산 부대)를 파병하기에 이릅니다. 실제 2003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동의다산부대'라는 명칭으로 해외 파병 임무를 수행한 기록이 있더군요. 정부 차원에서는 여행 제한국 아프가니스탄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전국 교회에 배포하며 협조를 요청하지만 이를 무시한 모 교회는 제3국을 거쳐 선교단 23명을 보내고 맙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마주해야만 하는 그 사건.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입니다.
사건이 벌어진 시기는 2007년 7월이지만 작품에서 재현된 시기는 2006년이었습니다. 상세한 고증은 KBS '시사기획 창'처럼 무겁고 담백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버리니까 변형을 주기 쉽게 허구를 더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우측 아래 자막으로 아프가니스탄 특정 지역을 표시하고 있으나 해외 로케이션 촬영된 국가는 '요르단'입니다. 예전에 드라마 '미생'에서 신비한 사막 풍경으로 우리 시선을 머물게 했던 곳입니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여행 금지국)에서 탈레반을 자극하는 영화 촬영을 허용해 줄 리 없습니다. 경호 인력 없이 단독 여행을 한다는 점 자체가 소위 말하는 '자살 행위'이니까요.
극 초반에는 사막의 구불구불한 외길을 다니는 낡은 버스가 나옵니다. 선교단 23명을 태우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죠. 현지 상황을 무시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경호가 붙지 않는 사막의 민간 버스는 그렇게 탈레반의 먹잇감이 됩니다. 도망치던 운전기사가 탈레반의 총에 맞아 숨지고 겁에 질린 선교단 일행이 납작 엎드리며 목숨을 살려달라 애원합니다. 목사가 여권을 펼치며 한국에서 왔다고 벌벌 떨자 탈레반 일행은 이들을 트럭에 옮겨 태워 자신들의 은신처로 향합니다.
다음날 탈레반은 위성 방송으로 "우리가 납치한 한국인 23명을 살리고 싶으면 수감 중인 탈레반 전사 23명을 석방하라. 한국군의 철수를 요구한다"라고 메시지를 내보냅니다. 외교통상부 소속 교섭 전문가 '정재호 기획조정실장(황정민 역)'은 부리나케 제네시스 BH(제네시스 1세대)를 타고 들어와 한국인 피랍 사실을 확인하고 교섭단을 꾸립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작중 배경은 2006년인데 2008년 1월에 출시된 제네시스 1세대 모델이 왜 나왔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2005년 5월 출시된 그랜저 4세대(TG)를 내보냈으면 시점이 맞았을 텐데 말이죠. 단순 실수라 하기엔 조사가 부족한 게 아닌가 싶더군요. 영상미와 사운드 해상력에 묻혀서 안 보일 거라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탈레반이 제시한 최초 살해 시한은 방송을 내보낸 시점으로부터 딱 '24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안에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서 교섭을 시도한다? 외교부 차관을 태우고 카불 공항으로 날아갑니다. 그 시각 아프가니스탄의 모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한 남자가 일어섭니다. 국정원 소속으로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박대식 요원(현빈 역)'입니다. 처음에는 납치 소식에 시큰둥한 반응이었으나 "한국인 23명, 탈레반에 억류 중"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합류를 결정합니다.
정 실장 일행이 서기관과 만나며 공항을 빠져나오던 순간 선글라스를 낀 박 요원이 차를 끌고 현장에 나타납니다. 무장 요원이 "물러서!"라며 접근을 막자 서기관이 국정원에서 급파된 요원이라 설명하며 제지를 풉니다. 정 실장은 박 요원의 행적을 아는 듯 무심하게 차문을 닫고 출발하라며 창문을 올려버립니다. 과거 이라크에서 교섭 중 인질 구출에 실패('고 김선일 피랍 사건'을 말한 듯)해 국가 명예를 더럽힌 요원으로 소문이 났던 모양입니다.
냄새를 맡은 박 요원은 대한민국 대사관에 꾸려진 대응 본부를 찾아가 정 실장에게 협력을 요청합니다. "탈레반 전사 한 명을 살려 보냈을 때 대통령 신변에 가장 큰 위협이 됐다"라며 탈레반이 제시한 민간인 맞교환 가능성을 일축합니다. "아프간 현 정권과 미국 정부가 받아들일 리 없다"는 사실을 거침없이 내뱉었죠. 정 실장 일행과 아프간 외교부 장관의 회담 테이블은 성과 없이 박 요원의 예상대로 흐르고 맙니다. "테러와 타협은 없다"는 의지를 아프간 국민들에게 심어준 꼴이 됐습니다.
박 요원은 그 길로 대사관을 나와 통역 전문가 '카심'을 찾아 나섭니다. 한국인 선교단이 납치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 지역은 '파슈토어'를 쓰고 있기에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필요했죠. 수소문 끝에 시장 안쪽 골목에서 노름 중인 카심(강기영 역)을 데리고 나와 노새에 태웁니다.
아프간 부족장 일행과 조우한 박 요원, 카심은 간단한 소개를 마치며 환심을 살 선물로 '애니콜 스윙 피처폰'을 보여줍니다. 반시계방향으로 툭 밀면 액정이 가로로 회전하며 바뀌던 옛날 폰입니다. 푸시푸시 게임으로 파란 공 밀어 넣던 폰을 여기서 볼 줄이야. 출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까 작중 배경은 얼추 맞습니다. 부족장이 신기해하며 살피다 정 실장 일행이 차를 끌고 나타납니다. '지르가 회의(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부족장 연합 회의)'를 소집 의뢰해서 피랍된 한국인들을 구제해 달라고 요청할 셈이었죠. 탈레반도 건들 수 없는 몇몇 가문이 존재한다면서 말이죠.
절벽 앞에 우두커니 서서 결과를 기다리던 정 실장은 박 요원이 가져온 소식을 듣고 기뻐합니다. 한국인들이 무사 귀환하도록 풀어준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카심은 같은 소식으로 뒷북을 치며 관객들을 썰렁하게 만듭니다.
이대로 끝나면 영화가 아니겠죠? 협상 타결로 종결될 시점에 대한민국에서는 한국인 아프간 피랍과 관련한 토론 열전이 벌어집니다. 탈레반을 자극하는 생방송이 송출되자 아무 대가 없이 한국인들을 풀어주겠다던 결정이 뒤집히고 맙니다. 선의를 베푸는 자원봉사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선교사 일행이었다는 소식이 현지 위성 방송을 타고 나왔기 때문이죠. "우리를 속였어."라는 부족장의 일침에 교섭 분위기는 순식간에 원점으로 틀어지고 맙니다.
협상이 궁지에 몰리자 자신을 "압둘라"라고 소개하는 영국인 사업가가 나타납니다. 안 그래도 탈레반을 사칭하며 한국인 납치 대가를 달라는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와서 분위기가 예민해진 상태인데 말이죠. 정 실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습니다. 관련 정부기관에 의뢰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자 옆에서 듣던 박 요원은 그럴 시간이 없다며 압둘라의 제안을 수용하자고 타이릅니다. 의심을 거두지 못하자 압둘라는 억류 중인 한국인 목소리를 들려주며 거래 의사를 확인합니다. 정 실장 일행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말대로 1백만 달러 두 자루를 준비합니다.
박 요원과 정 실장은 돈뭉치를 검은색 서버밴에 싣고 압둘라가 말한 곳에 찾아갑니다. 교도소에서 출옥한 아프간인 23명을 탈레반 전사로 위장해서 피랍 중인 한국인들과 맞바꿀 계획이었는데요. 대금을 전달할 무렵 한 통의 팩스가 대사관에 도착합니다. 압둘라라고 했던 사업가가 사실은 총 든 사기꾼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급히 정 실장에게 이를 알렸지만 눈치를 챈 압둘라 일행은 총을 겨누며 위협합니다.
돈을 들고 튀려 하자 박 요원은 광장 인근에 쓰러진 바이크를 몰고 추격에 나섭니다. 비탈진 길을 헤치며 따라잡은 박 요원은 픽업트럭 짐칸에 몸을 던지며 압둘라 일행을 하나 둘 제압합니다. 벨트로 운전자 목을 옥죄며 길가의 트럭을 들이받자 압둘라가 사고 충격으로 기절합니다. 충돌 직전 미리 웅크렸던 박 요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돈 자루를 챙겨 와 대사관에 복귀합니다. 외교부 차관이 노발대발하니 정 실장이 "박 요원도 잘해보려 그랬던 것"이라며 상황을 모면합니다.
이윽고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와 정 실장에게 현장 철수를 명령합니다. 군사 작전을 벌여서 한국인을 억류 중인 탈레반 세력을 소탕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짐을 싸던 호텔에서 소식을 확인한 박 요원과 정 실장은 외교부 대응 카드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던 중 멀리서 걸려 온 전화벨에 정 실장이 잽싸게 달려와 수화기를 당깁니다. 전화를 건 쪽은 대통령이었습니다. "정 실장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그래도 하겠느냐?"라는 말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로 화답합니다.
복귀 명령을 물리고 찾아간 대사관에서는 외교부 장관이 대노하며 정 실장에게 호통을 칩니다. 이에 정 실장은 "외교부의 중요 사명 중 하나는 자국민의 보호"라는 철칙을 내세우며 자신의 의지를 주장합니다. 탈레반 수장과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어떻게든 억류 중인 우리 국민들을 데려오겠다는 굳은 결심이었습니다. 현장 대기 중이던 박 요원과 카심도 정 실장을 따라나섭니다. 앞뒤로 호송 차량을 붙이고 탈레반과 접선하기로 한 사막 벌판으로 향합니다.
픽업트럭 두 대에서 내린 탈레반 일행은 교섭 대표 한 명과 통역을 데려갑니다. 이동한 은신처 근처에는 한국인 일곱 여덟 명이 감금돼 있었습니다. 두건을 쓴 채 내려간 정 실장과 카심은 협상 테이블 앞에 기다리던 탈레반 수장을 만나게 됩니다. 정 실장은 괜히 센 척하며 "탈레반 교섭 대표임을 증명하라", 선결 조건으로 "아무 대가 없이 한국인 세 명을 풀어준다면 너희를 반대하던 전 세계의 무슬림에게 존중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탈레반 수장은 거짓말처럼 "이것은 알라의 선물"이라며 여성 두 명을 우선 풀어줍니다.
정 실장은 다음 교섭 조건으로 뜻밖의 내용을 풀어놓습니다. "탈레반 23명 석방은 들어줄 수 없다"라며 탈레반 수장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은신 구역으로 추정되는 곳에 미군이 전투기를 보내 폭격을 진행하자 총부리를 겨눈 탈레반들이 당황하며 빠져나갑니다. 탈레반 수장과 정 실장 단 둘이 남은 곳에서 다시 한번 교섭이 진행됩니다. 석방 대가로 4천만 달러, 3천만 달러를 부르자 정 실장은 2천만 달러를 부릅니다. 폭격이 한 차례 더 진행되자 갑자가 탈레반 수장은 "한 달 내 한국군 철수, 이 땅에 발을 들이지 말 것"을 내세우며 억류된 한국인 19명을 풀어줍니다(2명은 교섭 이전 시간 낭비로 사망).
이 장면은 영화 '교섭'에서 가장 중요한 절정 파트로 보이는데요.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인물 심리를 묘사하는 내레이션 연기가 포함됐다면 더 긴장하며 들었을 텐데 폭격 몇 방에 꼬리 내리는 탈레반 수장을 보고 맥이 빠졌거든요. 교섭 분량 자체를 길게 늘여서 대한민국 외교부는 어떤 태세로 움직이고 있었는지, 이를 전파하던 방송국 상황은 어땠는지 각자의 시점을 보고 싶었지만 그런 이야기는 안 들려주더군요. 박 요원에 얽힌 이라크 인질 구출 관련 플래시백(flashback, 회상) 장면도 언급이 좀 부족했습니다. 실화 기반 작품인데 스토리는 구멍이 난 느낌이랄까요?
3개월 후 정 실장의 안부 확인 장면은 뻔해 보였습니다. 박 요원과 카심이 아프간 저 편에서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음을 확인했더니 외교부 현장에서 '마부노호 소말리아 피랍 사건'에 관한 언론 브리핑이 이어지더군요. 후속 편을 제작하겠다는 복선으로 보였습니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으로 착각하기 쉬운 아덴만 여명 작전은 2011년 있었던 일이니까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취재 기자단이 스트로보(플래시)를 연신 터뜨리는 틈에 정 실장이 한가운데에 서며 영화가 끝납니다.
영화 '교섭'의 별 평점은 5점 만점에 3점으로 평가됩니다. 대배우를 기용했음에도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지 못했고 영상과 사운드의 현장감에 비해 몰입감이 떨어졌습니다. 돌비 애트모스로 보셨던 분들은 사운드 때문에 0.5점을 더 줄지 모르겠으나 제 기준에서는 뭔가 허탈감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교섭 과정에서의 심리전, 치밀한 전개 같은 건 작품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황정민, 현빈, 강기영을 품은 K-작품으로는 안타깝게도 완성도가 떨어집니다. CGV 3차 스피드 쿠폰으로 6천 원에 본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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