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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트레일블레이저 그린카 시승 후기 본문
지난 일요일(19일) 그린카로 잠시 동네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이용한 모델은 2021년형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였습니다. 1.35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에 무단 변속기(CVT)를 맞물린 소형 SUV입니다. 토크 컨버터형 9단 자동 변속기를 채운 스위처블 AWD(사륜) 모델과는 파워트레인 구성이 다릅니다. 렌터카 급으로 흔하게 널린 스포티지, K3, 아반떼는 한두 번 이상 경험한 차라서 궁금하지 않았는데 단 한 번도 제 관심을 끌지 않았던 트레일블레이저가 집 근처 카셰어링 존에 와 있더군요. 어쩌다 한 번 도로에 보이는 이 차는 어떤 분들이 모는 차일지 궁금해서 예약해 봤습니다.
트레일블레이저를 2시간 30분 빌린 대가로 선 결제된 금액은 보험료 6천8백6십 원(자기 부담금 5만 원 기준)뿐이었습니다. 그린카 이용 경험이 꽤 누적된 모양인지 대여료가 '0원'으로 잡혀있더군요. 원래라면 대여료 할인 쿠폰을 써도 약 2만 4천 원 더 냈어야 합니다(주말 및 공휴일 기준).
주행요금은 동급 모델보다 높은 190원/km에 이릅니다. 스포티지(km 당 210원, 가솔린 1.6T 기준)보다는 20원 낮으면서 아반떼랑 K3(km 당 160원, 가솔린 1.6 기준)보다는 30원 비쌉니다. 지불하는 소형차 보험료는 아반떼랑 똑같지만 상대적으로 연비가 낮은 트레일블레이저의 특성을 반영한 수치로 보였습니다. 아반떼는 15.4km/l(15인치 타이어 기준)이지만 더 큰 바퀴를 끼는 트레일블레이저는 12.9km/l(17인치 타이어 기준) 수준에 머뭅니다.
카셰어링 존에서 마주한 트레일블레이저의 트림 등급은 의외였습니다. RS(최상위 트림, 5단계) 바로 아래인 액티브(ACTIV, 4단계)였습니다. LS, LT, 프리미어 순으로 올라가는 트림 중 최소 LT(2단계), 잘해야 8인치 화면에 후방 카메라가 매달린 프리미어(3단계) 정도라고 예상했거든요.
액티브 트림에는 검게 칠한 블랙 보타이 엠블럼에 18인치 휠타이어, 인조가죽이 아닌 천연가죽 시트가 채워집니다. 운전석은 전동으로 움직이고(요추 받침대 포함) 앞좌석 전체에 통풍 기능이 깔립니다. 한국에서 차 팔 생각이 없다고 떠들던 쉐보레 아녔나요?
카셰어링 차로 액티브 트림을 내보낸 뜻은 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만 잠깐 끌고 마는 고배기량 모델(쉐보레 타호,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GMC 시에라)은 잘도 내놓으면서 막상 소비자들이 살 차들은 구매력을 떨구는 기묘한 마법을 부린단 말이죠. 정통 SUV에서 크로스오버(Crossover)로 탈바꿈한 신형 트랙스도 별 기대가 안 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부 소통을 잘 안 하는' GM(제너럴 모터스)의 고결한 전통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요.
이용한 트레일블레이저의 실내는 5, 6년 된 차를 둘러보는 듯했습니다. 좌우로 나란히 벌어진 아날로그 계기판에 크래시패드 한가운데를 장식한 8인치 터치 화면과 하단 버튼, 공조 다이얼 컨트롤러와 부츠형 기어 노브를 보면 최신 유행을 멀리하는 쉐보레의 굳건한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부분변경된 2024년형 트레일블레이저(상반기 국내 출시 예정)는 8인치 LCD 계기판(디지털 클러스터)과 가운데 11인치 화면이 붙으면서 디자인이 소폭 바뀝니다.
문제는 새 모델의 국내 가격을 얼마에 맞출지, 언제 출시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쌍용자동차에서 곧 KG 모빌리티로 이름이 바뀌는 회사와 달리, 절박함이 없는 쉐보레는 뭘 해도 기대가 안 생깁니다. 쉐보레와 캐딜락, GMC 등 관련 브랜드를 통틀어 관리하던 그룹명을 '한국GM'에서 'GM 한국사업장'으로 바꾸기 시작한 걸 보면 말이죠. 차 만들던 곳에서 하나의 수입 판매 서비스 거점으로 퉁치려는 계획이 눈에 선합니다. 최근 국내에 선보인 GMC 시에라도 화제돌림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임팔라(재고떨이)와 트랙스, 크루즈 판촉에 열 올리던 그 쉐보레의 열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블레이저(이쿼녹스와 트래버스의 중간) 대신 나온 트레일블레이저(트랙스와 이쿼녹스의 중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국 소비자의 간절한 바람(블레이저)에 역행하며 트랙스를 뭉개는 결과를 낳았지만 차 자체의 기계적 완성도는 괜찮은 점수를 받았거든요. 국내 경쟁 차종인 코나랑 셀토스에 가려서 빛을 잘 못 봤을 뿐이지, 디자인과 편의 기능, 진동 소음 저감을 우선하는 우리나라보다 큰 북미 시장에서는 거주성, 다목적성에 주목하며 해외에서 더 잘 나가는 차로 이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부분변경된 셀토스랑 완전변경된 코나에 치이는 현 트레일블레이저의 상품 경쟁력은 떨어집니다. 1.35리터 3기통 e-터보 엔진의 효율성은 인정하지만 ISG(Idle Stop and Go)로 시동 대기(오토스탑) 후 시동이 걸리던 순간의 소음과 진동은 거슬립니다(오토스탑을 아예 끄고 싶을 정도로). 운전석 시트 좌판이 부르르 떨 정도니까요. 정차 직후 시동이 조용히 꺼지던 순간과 차이가 너무나 큽니다.
제동감은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과 거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같은 깊이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데 어쩔 때는 부드럽게 붙잡다가 어느 순간에는 모터가 '꺼억'하고 개입하며 강한 제동을 겁니다(순간의 진동이 페달을 타고 전해짐).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의 회생 제동을 충분히 경험한 운전자라면 금방 적응이 되겠으나 내연기관차 위주로 차를 몰던 분들에게는 적응이 좀 필요합니다. 페달 유격이 짧아서 제동 반응이 다른 차보다 민감하더군요.
승차감은 당시 타이어 공기압이 과해서(규정 공기압보다 5 PSI 높았음, 40 PSI) 딱딱하게 느껴졌습니다. 운전석 좌판은 좀 짧지만 셀토스보다 푹신하길래 상하 움직임이 크면서 부드럽게 넘기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예상을 빗나갔거든요. 30km/h로 높은(고원형) 방지턱을 넘으면 통통 튀기까지 합니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 바닥(러기지 보드 아래)에 있어야 할 타이어 공기압 주입기를 찾아봤는데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길게 몰 차가 아님을 깨닫고 출발지로 되돌아가기로 합니다.
타이어 마모 상태는 무난했으나(21년 4월 출고 당시 모델 그대로인 듯) 50km/h 안팎으로 차를 몰면 타이어 구르는 소리가 잘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체 방음이 부족한 편인 초기형 코나보다 더 시끄럽습니다. 트레일블레이저에 끼워진 18인치 타이어는 한국의 키너지 GT였습니다. 타이어 규격은 225/55 R18, 트레드웨어는 700입니다. 진동 소음 대책은 동급 소형 SUV보다 느슨해서 그런지 옆창으로 버스나 트럭이 골골거리던 소리까지 잘 들립니다.
무선화된 안드로이드 오토의 사용자 경험은 '끔찍' 그 자체였습니다. 블루투스로 차를 연동하고 카카오내비를 띄우면 그대로 화면이 얼어서 오류를 내뱉습니다. 예전 트랙스에서 경험했던 애플 카플레이는 이런 현상이 없었는데 트레일블레이저는 왜 이럴까요? 안드로이드폰을 연결하지 않은 순정 내비게이션(텔레나브)은 멀쩡합니다. 폰 프로젝션은 있어도 안 쓰는 걸로 해야겠군요. 화면에 표시된 공조 기능은 특이했습니다. 다른 메뉴는 한글화 시켜놓고서 공조 파트는 영문으로 표시해 놨더군요. 속으로 '한글 표시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싶었습니다.
속된 말로 "이건 되는데 이게 안 되네" 시리즈에 속한 건 더 있습니다. 초기형 셀토스처럼 여닫히는 컴바이너 HUD(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보여줄 내용이 많은데 버튼에 표시된 작동 역할은 헷갈립니다. 이전 항목으로 넘기고 싶은데 HUD가 꺼진다던지(HUD ON/OFF 겸용) 화면 높이를 한 번에 쭉 위로 올리거나 밑으로 내리고 싶은데 마우스 클릭하듯 거듭 눌러야 하는 규칙의 일관성이나 사용 편의성도 떨어집니다. 이 정도면 HUD를 덮어두고 안 쓰거나 켜 두고 건들지 않는 운전 습관이 생길 듯합니다.
대신 2열 거주성, 트렁크 수납성은 괜찮습니다. 셀토스 운전석 뒤쪽의 무릎 공간(레그룸)이 주먹 한 개 반에서 두 개가 꽉 끼는 정도였다면 트레일블레이저는 주먹 두 개가 여유롭게 들어갑니다. 정 자세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 머리에서 천장까지 주먹 한 개가 남고 발 공간(발취)은 발등 전체가 쉽게 드나들 정도로 충분합니다(시트 마운트 위치 높음). 2열 가운데는 편평하게 처리돼(전륜구동 기준) 시각적으로 트인 느낌을 줍니다. 트렁크 용량은 460리터로 제원상 셀토스(498리터)보다 적지만 러기지 보드 밑에 숨은 공간이 넓고 깊었습니다. 2열 등받이는 완만한 빗면 형태가 되며 접힙니다. 트레일블레이저가 왜 북미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지 어느 정도 알겠더군요.
출발지로 되돌아가며 주행한 거리는 고작 25km 밖에 안 됩니다. 코나보다 더 딱딱하고 엉덩이가 아파서 도저히 길게 몰 엄두가 안 나더군요. 처음에 카셰어링 존에 있던 트레일블레이저가 너무 더러웠기에 주유소에서 기름 가득 채우고 자동 세차를 돌리느라 30~40분을 그냥 보내기도 했습니다(주유소 앞 자동 세차 웨이팅만 20분). 어차피 짧게 탈 차니까 맛만 봐야겠다 싶어 결제액 중 일부는 세차 보너스(4천 포인트)로 돌려받았습니다. 다음엔 다른 데서 트레일블레이저를 빌리던가 해야겠군요. CVT 말고 9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린 사륜 모델로 말이죠.
+ 22.02.22 추가) 첫 문단 중 초기형/후기형으로 잘못 기입된 내용은 스위처블 AWD 패키지가 적용된 사륜 모델에 한해 하이드라매틱 9단 자동 변속기가 들어가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수정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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