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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세븐은 바퀴 달린 거실, EV9는 여행 맞춤형 SUV 본문
어제(17일) 오토모빌리티 LA(LA 오토쇼 2021)에서 두 콘셉트 카가 실물을 드러냈습니다. 현대 세븐(Seven), 기아 EV9입니다. 둘 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한 대형 전기 SUV죠. 세븐은 세 번째 아이오닉 콘셉트 카이자 아이오닉 7의 지향점을 나타냈으며 콘셉트 EV9는 차후 양산을 대비해 주요 특징을 압축한 모델입니다. 1회 충전 후 482 km를 달리고 350 kW 초급속 충전이 가능한 점은 같은데요. 실내서 풍기는 분위기는 묘하게 다릅니다.
세븐의 실내를 보니 어느 호텔의 라운지, 아늑한 거실이 떠오릅니다. 3.2m 휠베이스 위를 덮은 카펫에는 따스한 느낌의 직물 의자 두 개와 L자형으로 연결된 시트(라운지 벤치 시트)만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운전대랑 변속 레버는 어디로 간 걸까요? 선반 앞에 현대모비스가 개발했다던 폴더블 운전대라도 숨겨놨나 했더니 그건 아녔습니다. 평소에는 운전석 팔걸이 밑에 숨었다가 필요할 때 모아이 석상처럼 우뚝 솟아오르는 컨트롤 스틱만 보입니다.
앞쪽에 배치된 두 의자의 이동성은 꽤 유연합니다. 트위스트 춤추듯 시트를 좌우로 비틀기도 하고요. 스타리아 라운지 2열처럼 180도 틀어서 뒷좌석 승객과 마주 보기도 됩니다. 27인치 화면을 여닫는 이동식 콘솔(유니버설 아일랜드), 운전석과 동반자석 도어 포켓에 설치된 원통형 무드 램프, 화장대 서랍처럼 열리는 슬라이드 수납함까지 둘러보니 이케아 가구와 생활가전으로 집 꾸미기 한 듯 우아합니다. 천정의 비전 루프는 또 다른 77인치 화면이 되기도 합니다.
L자형 라운지 벤치 시트 밑으로는 온갖 편의 기능을 꽉 채웠군요. 수납함을 열고 신발을 넣으면 의류 관리기처럼 알아서 살균 소독도 해주고요. 캔 음료 네 개를 넣을 수 있는 미니 냉장고까지 빌트-인(built-in) 타입으로 깔립니다. 실내 곳곳에는 위생 관리에 유리한 항균성 직물, 대나무, 미네랄 석고와 같은 소재를 쓰고요. 비행기나 병원용 공조 시설을 참조해 만든 공기 순환 시스템, 탑승객 하차 후 전원을 껐을 때 켜지는 UVC 살균 모드로 실내 청결을 지킵니다. 현대의 세븐은 말 그대로 "바퀴 달린 거실"과 다름없군요.
콘셉트 EV9의 실내는 어떨까요? 휠베이스는 세븐보다 10cm 짧습니다(3.1m). 시트는 3열까지 채웠는데 활용법이 독특합니다. 평소에 1·2·3열을 전방으로 해 놨다가 2열을 접고(테이블 역할) 1열을 180도 돌리면 KTX 4인석처럼 3열 승객과 얼굴을 맞대며 담소를 나누고요. 테일게이트를 열고 3열만 180도 돌려서 탁 트인 차 밖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기아에서는 세 가지 상황을 각각 액티브·포즈·인조이 모드라고 하는군요.
실내는 지속 가능성으로 가득한 요트를 닮았습니다. 바닷속 폐어망은 바닥재가 되고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던 플라스틱 병은 시트와 도어 트림을 감싸는 직물로 새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크래시패드와 센터 콘솔은 물 낭비를 줄인 비건 가죽으로 꾸몄습니다. 그린워싱(친환경인 척하는 위장환경주의)에서 벗어나 필환경으로 도약 중인 시대 흐름을 반영한 변화라 하겠습니다.
선반(대시보드) 주변은 모서리 둥근 직사각형 개체로 둘러 세웠습니다. 운전석에서 센터 콘솔까지 한 면으로 연결한 27인치 화면, 운전대, 도어 트림 장식들이 그렇습니다. 운전대 좌우 안쪽에는 엄지로 위아래를 만지면서 다룰 수 있는 기능을 넣었군요. 27인치 화면 밑에 배치된 버튼들은 콘티넨탈의 샤이테크 디스플레이처럼 LED 문구만 밝게 비춥니다. 기존의 양산차들은 지문이 잘 묻는 블랙 하이그로시 패널을 널리 써 왔지만 EV9에서는 그러지 않겠죠?
겉모습은 세븐보다 콘셉트 EV9이 보기 더 좋습니다. 세븐은 앞뒤에 달린 파라메트릭 LED 면적이 넓기도 하고 벨로스터처럼 운전석 쪽 문은 한 개, 동반자석 쪽 문은 두 개로 비대칭입니다. LED로 디지털 갑옷을 입힌 소형 트램처럼 보입니다. 운전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네요. 이동 과정에 드는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여가 시간을 길 위에서 오롯이 보내길 바라는 가족에게는 세븐과 같은 차가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콘셉트 EV9는 세븐보다 당차고 야무진 모습을 지녔습니다. 별들이 넓게 퍼진 듯한 LED 헤드램프로 입체감을 주고 디지털화된 호랑이 얼굴이 잘 어울렸거든요. 다부진 골격이 강조된 펜더, 차 지붕의 루프 레일도 필요할 때 숨겨서 공력 성능을 높인 점도 보기는 좋은데요. 22인치 휠에 삼각뿔로 오목하게 파놓은 디자인은 호불호가 따르겠습니다. 정면에 비해 뒤는 좀 심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양산형 모델을 대비한 여백의 미로 봐줘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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