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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감상평, 추억은 거들 뿐 본문
어제(5일) 늦은 오후, 영화관에 다녀왔습니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 님의 슬램덩크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90년대를 주름잡던 TV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천진난만한 강백호가 주인공이었지만 27년 만에 등장한 이번 작품에서는 북산고 5인방(채치수, 정대만, 서태웅, 강백호, 송태섭) 중 포인트 가드 송태섭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산왕공고와의 맞대결을 다루고 있더군요.
기대가 벅찼습니다. 작년 12월 초 일본에서 먼저 개봉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관객 반응이 괜찮다고 해서 국내 상륙을 모처럼 기다려온 작품이었습니다. TV판 애니의 연장선으로 기대하던 분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불친절하다는 반응이었으나 만화책으로 스토리를 깨치던 오랜 팬들에게는 희열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불립니다. 만화 원작에 외전에서 다루던 송태섭의 이야기, 가상 인물을 더해서 잘 압축시켜 놓은 걸로 보이더군요.
이날 찾아간 롯데시네마 대구율하점은 슬램덩크 더빙판을 하루에 한두 번, 자막판을 네 번 정도 틀고 있었습니다. 앱으로 확인한 좌석 예매 비중은 자막판이 조금 더 높더군요. 보고 나서 '작품성이 좋다, N차 감상할 의향이 있다' 싶으면 더빙판으로 한 번 더 보자는 분위기랄까요.
저는 자막판으로 보고 왔습니다.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던 주요 등장인물을 우리가 알던 이름들로 깔끔하게 바꿔서 알아보기 좋았습니다. 예전의 TV판 애니 성우진을 기용하지 않은 점에서 "일부는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실제 감상한 소감으로는 별로 위화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도라에몽에서 퉁퉁이 역할을 맡던 성우가 강백호 목소리 연기를 맡아서 넷상에 잠깐의 논란이 있었지만 작품 속 몇몇 웃음포인트를 무난하게 잘 넘긴 느낌이었습니다.
더빙판 녹음에 참여한 국내 성우진도 꽤 탄탄합니다. 소년탐정 김전일, 명탐정 코난, 원피스, 이누야샤의 주인공 목소리를 전담하던 강수진 님이 강백호 역을 맡았습니다. 서태웅 역에는 신용우 님, 송태섭 역에는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엔비, 데스노트에서 L의 목소리를 들려주던 엄상현 님이 마이크를 잡고요. 불꽃남자 정대만 역에는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편에서 렌코쿠 쿄쥬로를 소화했던 장민혁 님, 고릴라 덩크 채치수 역에는 신 도라에몽에서 퉁퉁이 목소리를 들려주던 최낙윤 님이 맡았습니다. 모두 슬램덩크를 추억하던 분들이라서 연기력도 기대할 만합니다.
영화 속 연출은 앞뒤로 힘을 준 느낌입니다. 북산고 5인방의 인트로 장면, 남은 경기 시간 1분이 흐르던 연출을 극적으로 잘 살렸더군요. 두 시간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의지가 강력했는지 명장면 속 주요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강백호의 웃음포인트마저 짧게 압축된 느낌이었습니다. 두 시간에 끝내는 영화보다 몇 편의 드라마로 쪼개서 서사를 보여주는 방식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원작과 외전, 인물을 더하는 과정에서 나온 "울어주세요" 포인트가 한두 군데 있기는 한데요. 얼마나 몰입했느냐에 따라 다를 듯합니다. 과거(송태섭 주변 시점)랑 현재(산왕공고 전)를 자주 오가는 식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슬램덩크를 전혀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작품을 이해하기 조금 힘들지도 모릅니다. 슬램덩크는 안 봤는데 강백호는 안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난이도가 느껴지는 작품이랄까요. 강백호가 누군지 알아보러 갔다가 한 편의 긴 농구 영화를 보고 오게 될 겁니다. 농구가 이렇게 긴박한 스포츠였나 하면서요. 대중 관심도가 야구, 축구, 골프, 배구에도 밀리는 그 농구가 말이죠.
슬램덩크 앞에 '더 퍼스트'를 붙인 의미도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원작자가 보여주려고 했던 진짜 농구란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강백호에 쏠렸던 TV판 애니의 핀트(초점을 의미하는 네덜란드어 brandpunt에서 전해짐)를 재정의하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극 중에 역경을 딛고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기에 가장 만만했던 인물이 송태섭이라서 주인공으로 간택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막바지엔 이노우에 님이 추진 중인 슬램덩크 장학금과 관련해 美 NBA 농구도 아주 잠깐 보여주더군요.
감히 평점을 매긴다면 5점 만점에 4점으로 평가됩니다. 직전에 감상한 '아바타 : 물의 길'이 제 기준으로는 3.5점입니다. 물의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말하던 아바타의 영상미와 OST는 인정하지만 전작 대비 중간 서사가 길고 긴장감이 덜해서 아이맥스나 3D로 감상하지 않는 이상은 좀이 쑤십니다. 반면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더빙판으로 한 번 더 볼 의향이 생기는 작품이었습니다. 관람료가 소폭 올랐으나 N차 감상으로 그 감동을 다시 누려도 좋을 만큼 완성도가 좋았습니다.
01.07. 추가)
자막판 감상 후 하루를 건너뛴 토요일(7일) 아침, CGV 대구스타디움에 다녀왔습니다. 1주 차 특전으로 슬램덩크 일러스트 카드를 나눠준다는 얘길 들어서 한 번 더 보고 오자고 마음먹었거든요. 그저께 롯데시네마에서 자막판을 감상했으니 이번엔 더빙판으로 보고 올 차례입니다.
939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CGV에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바타 : 물의 길, 영웅, 장화 신은 고양이 포스터가 눈앞에 아른거리더니 전광판에 보란 듯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표지를 비춥니다. 가족과 친구 단위로 온 일부 관람객 일행은 슬램덩크 표지 앞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인증샷을 찍고 있더군요. 아바타를 능가하는 현장 분위기를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9시가 조금 넘어 슬램덩크 더빙판이 상영되는 5관에 입장했습니다. 자막판 볼 때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사운드를 느끼려고 뒤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날은 맨 앞에서 네 번째 줄 한가운데로 좌석을 뽑았습니다. 두 눈에 꽉 차는 2D 스크린의 생동감을 느끼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위쪽이 살짝 좁은 사다리꼴이 됐지만 작품 감상에는 아무런 지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빙판을 보고 온 느낌은 전반적으로 자막판만큼 좋았습니다. 강백호의 우스꽝스러운 말투, 서태웅의 간결한 어조, 내 이름이 뭔지 말해보라는 3점 슈터 정대만, 고릴라 덩크로 각성하던 주장 채치수, 북산고의 돌격대장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송태섭의 연기가 잘 살아났습니다. 일부 관객은 송태섭이 흐느끼는 장면에서 코를 훌쩍이기도 하고 강백호의 요란한 장난에 동화된 듯 기쁘게 웃더군요. 24초가 남던 마지막 순간의 연출은 다시 봐도 명장면이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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