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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타이타닉, 돌비시네마로 본 이유?

커피스푼 2023. 2. 12.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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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을 돌비시네마로 보면 어떨까요? 당시 예매 상황은 이랬습니다.
타이타닉을 돌비시네마로 보면 어떨까요? 당시 예매 상황은 이랬습니다.

어제(11일) 타이타닉을 돌비시네마 3D로 보고 왔습니다. 며칠 전 메가박스 대구신세계점에서 타이타닉을 3D로 봤더니 돌비시네마 버전의 타이타닉은 어떤가 궁금해졌거든요. '동돌비(메가박스 대구신세계점 돌비시네마 상영관)'에 찾아간 시각은 낮 12시였습니다. 2백 석 조금 넘는 좌석 중 12시 15분 표는 아흔(90) 석, 그다음 저녁 8시 5분 표가 예순(60) 석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일반 2D 디지털로 상영 중인 더 퍼스트 슬램덩크랑 수요가 비슷해 보였습니다.

 

 

돌비시네마 상영관은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어둡습니다.
돌비시네마 상영관은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어둡습니다.

영화 시작 십분 전 돌비시네마 상영관으로 입장했습니다. 입구 한쪽 LED 벽면에는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타이타닉이 불을 밝히고 있더군요. 입구에서 나눠주는 돌비시네마 전용 3D 안경을 집어서 예매한 자리를 찾아갑니다. 확실히 돌비시네마 상영관은 다른 상영관보다 실내가 어두워서 앉을자리를 단번에 찾기 어렵네요.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등받이를 비춰야 번호가 보입니다.

 

 

돌비시네마 3D 안경은 옛날에 쓰던 적청 안경과 다를 게 없군요.
돌비시네마 3D 안경은 옛날에 쓰던 적청 안경과 다를 게 없군요.

자리에 앉아서 입구에서 하나씩 나눠준 돌비시네마 3D 안경을 살펴봤습니다. 단순히 걸쳐 쓰던 저가형 편광 필터 안경과는 다르게 프레임이 소폭 두꺼웠습니다(일회용이 아닌 다회용임). 관자놀이(눈과 귀 사이에 움푹 들어간 부위)가 닿는 안쪽은 홈이 나 있어서 안경 착용자도 쓸 만한 구조로 보였습니다.

 

영화표에 비춰서 자세히 관찰하니 왼쪽 눈 부위는 적색(빨간색), 오른쪽 눈 부위는 청색(파란색)으로 처리했더군요. 전형적인 '에너글리프(Anaglyph)' 방식이었습니다. 겉보기에 좋아 보여도 가시성은 일회용 편광 필터보다 못합니다. 시야각이 제한적이라서 고개가 스크린 중앙으로 향하지 않으면 적색이 적나라하게 보이거든요. 이런 걸 돌비시네마용 3D 안경이라고 나눠주다니 너무하는군요. 이럴 거면 어설픈 '3D' 빼고 해상도, 화질, 음질만 개선해서 2D로 돌렸어도 좋았을 텐데요.

 

 

돌비 시네마 유니버설 트레일러 중 일부 장면을 캡처했습니다(출처 : Dolby Korea 유튜브 채널).
돌비 시네마 유니버설 트레일러 중 일부 장면을 캡처했습니다(출처 : Dolby Korea 유튜브 채널).

영화 본편에 앞서 돌비시네마 기술 데모를 봤습니다(이 편은 안경 끼는 구간이 아님). 동돌비 G열 9번 자리에서 느낀 음균형은 적당했습니다. 고음역을 전담하는 트위터나 좌우로 둘러싼 위성 스피커 볼륨이 과하지도 않았고 뒤에서 울리는 우퍼의 출력도 적당했습니다. 예전에 D열 11번 자리에서 슬램덩크를 봤을 때는 고음이 과하고 저음 볼륨이 약하게 느껴졌는데 세 줄 뒤에서 느낀 돌비 애트모스 인증 사운드의 밸런스(균형)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자리를 오른쪽으로 서너 칸(11, 12번 자리) 더 옮겨서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듭니다. 야구로 치면 스트라이크 존이 매우 좁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돌비시네마 데모가 끝나면 바로 이 안경을 씁니다.
돌비시네마 데모가 끝나면 바로 이 안경을 씁니다.

20세기 스튜디오 인트로(intro)가 뜨고 영화 본편이 시작됐습니다. 허벅지에 꽂아둔 적청 안경을 씁니다. 해저 탐사가 시작되는 장면의 3D 효과는 인위적인 느낌이 강했습니다. 카메라나 케이블이 튀어나온 듯한 입체감은 일반 3D 스크린에서 편광 필터로 보던 것보다 어색했습니다. 밝기랑 선명도는 다소 밝고 선명해서 그나마 나은데 마스크 쓴 채로 보려니 흐려졌다 맑아졌다를 반복하게 되는군요. 마스크를 살짝만 내려서 보기로 합니다. 슬램덩크처럼 3D 효과 없이 깔끔하게 2D 화면으로 봤으면 몰입감이 더 좋았을 듯합니다.

 

로즈 부인과 손녀를 태운 헬리콥터 등장 씬(scene, 장면)에서는 소리의 힘이 느껴집니다. 날개로 윗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로터 회전 소리가 상영관을 꽉 채웁니다. 일반 3D 스크린에서 듣던 돌비 디지털 사운드보다 해상력이 좋더군요. 로즈 부인이 지그시 바라보던 누드화 색깔은 다른 스크린에서 보던 것보다 눈에 띄게 진했습니다. 찐 블랙(진짜 블랙)과 더 화사한 흰색을 강조하던 '돌비 비전(Dolby Vision)'다웠습니다.

 

 

낡은 뱃머리에서 1912년 출항 당시로 확 바뀌는 장면을 느껴보세요(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낡은 뱃머리에서 1912년 출항 당시로 확 바뀌는 장면을 느껴보세요(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로즈 부인이 "타이타닉은 꿈의 배라 불렀다오."라며 썰을 풀던 직후 해저에서 부식 중인 타이타닉의 뱃머리가 디졸브(dissolve, A→B 장면으로 넘기면서 A 장면이 부드럽게 사라지는 전환 효과)되며 1912년 당시 모습으로 싹 바뀌는데요. 거대하고 웅장한 자태로 출항 대기 중인 RMS 타이타닉과 뱃고동을 울리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쭙잖은 3D 안경이 아닌 맨눈으로 봤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갑니다.

 

타이타닉 바로 건너편에서 포커 한 판을 벌이던 잭 도슨(이하 '잭')의 첫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왜 전 재산을 걸었냐고 타박하는 파브리치오 옆에서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는 거야(When you got nothing, you got nothing to lose.)."라며 풀하우스로 3등석 티켓을 따내던 장면, 출항 5분 전 티켓과 판돈을 챙겨서 탑승을 서두르던 장면에서는 우측으로 빨간 띠가 가끔씩 보여서 눈에 거슬렸습니다. 움직임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는 시야각이 묘하게 더 좁아지더군요. 선명도랑 색감은 괜찮았지만요.

 

 

나는 세상의 왕이다!(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나는 세상의 왕이다!(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출항 후 스미스 선장이 레몬 홍차를 들이켜며 전속 전진을 명하던 연출은 보기 좋았습니다. 명령을 확인한 기관장 지시에 따라 화력을 키우고 기관실의 피스톤 행정 주기가 짧아지며 21노트(약 38.8km/h)로 항해 속도가 빨라지는데요. 뱃머리에 나타난 잭이 이때 외칩니다.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라고 격하게 환호합니다. 목소리로 시원하게 뚫어주는 느낌은 덜했지만 선장의 흐뭇한 표정과 함께 모두의 희망을 싣고 뉴욕으로 향하는 분위기는 잘 표현됐더군요.

 

 

로즈가 3등석 칸에서 춤추던 장면을 캡처했습니다(출처 : 20세기 스튜디오 코리아, 타이타닉 25주년 4K 3D 리마스터링)
로즈가 3등석 칸에서 춤추던 장면을 캡처했습니다(출처 : 20세기 스튜디오 코리아, 타이타닉 25주년 4K 3D 리마스터링)

로즈 드윗 뷰카터(이하 '로즈')가 등장하던 씬 중에는 3등석 칸의 파티 장면이 괜찮았습니다. 유니언 파이프(백파이프의 한 종류)와 타악기 연주에 맞춰서 스텝을 밟고 방방 뛰던 모습, 음악의 타격감, 잭과 탭 댄스를 추면서 손을 맞잡고 어지럽게 빙글빙글 도는 화면이 생생하게 잘 드러나더군요. 한창 시끌벅적거리다 브랜디를 홀짝이며 시가(cigar)를 피는 정적인 장면으로 넘어왔을 때 소리의 강약 조절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이 장면에서의 3D 효과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로즈에게는 약혼남 칼이 있었습니다(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로즈에게는 약혼남 칼이 있었습니다(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칼리든 호클리(이하 '칼')가 약혼녀 로즈에게 어젯밤 행적을 캐묻다 테이블을 엎을 때 나던 사운드 임팩트는 생각보다 약했습니다. 잭을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다시 만난 로즈의 뺨을 때리거나 잭과 로즈를 향한 분노의 권총질에서 효과를 더 끌어올렸더군요. 권총 발사에 튄 물줄기의 3D 효과는 수긍할 만했습니다. 타이타닉 원판에서 일부 삭제된 러브조이('칼'의 집사이자 수행원)의 추격 장면이 아쉽게 느껴지는군요.

 

 

타이타닉에서 구명정을 내리던 장면입니다(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타이타닉에서 구명정을 내리던 장면입니다(출처 : CGV, 타이타닉 스틸컷).

돌비시네마 버전의 타이타닉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은 스토리상 배가 부서진 뒤 차가운 바다에서 얼어가며 이별을 고하던 잭에게서 코를 훌쩍였겠지만요. 배가 바닷물에 잠기기 직전까지 연주하던 악사들의 비중도 만만찮았습니다. 지옥의 오르페우스 연주를 마치고 돌아서던 악사들이 다시 모여 연주하던 곡이 떠오르시나요?

 

 

타이타닉에서 Nearer my god to thee가 흐르던 장면입니다(출처 : Maykol Guillén 2 (TITANIC) 유튜브 채널, 2분 42초).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Nearer my god to thee)'이라는 찬송곡이었습니다. 퇴역을 앞둔 스미스 선장이 조타실로 들어가 최후를 맞던 장면, "배를 더 튼튼히 만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I'm sorry I didn't build you a stronger ship.)."라고 말하며 배에 남아 시계를 바라보던 조선기사 토마스 앤드류, 바닷물이 들이찬 침대 위에 나란히 누운 노부부, 동화책으로 자식들을 재우던 엄마, 신사답게 죽겠다며 구명조끼를 마다하던 철강업자(벤자민 구겐하임)의 마지막 표정이 주요 장면으로 나오며 슬픔을 더합니다.

 

심금을 울리던 현악 4중주는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의 섬세한 표현력이 더해지며 코를 시큰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밤 자네들과 연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네(Gentlemen it's been a privilege playing with you tonight.)."라고 말하던 윌리스 허틀리를 마지막으로 악사들은 모두 흩어집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My heart will go on' 보다 더 진한 여운이 남는 곡이랄까요.

 

 

메가박스 돌비시네마 상영관 앞에 걸려있던 타이타닉 25주년 포스터입니다.
메가박스 돌비시네마 상영관 앞에 걸려있던 타이타닉 25주년 포스터입니다.

"순간을 소중히(Make it count)"라던 잭의 말처럼 돌비시네마로 만난 타이타닉은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리마스터링 된 세기말 작품을 현대화된 지금의 영화관에서 다시 만나니 TV판으로 잘 느끼지 못했던 감동까지 전해지더군요. 불완전한 3D 효과는 조금씩 몰입도를 떨구는 감점 요인이 되기는 했으나 OST, 연출, 연기력, 스토리, 영상미가 전반적으로 빼어난 편이라서 만족도는 비교적 높았습니다. 타이타닉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하는 분들께는 돌비 디지털 일반판 말고 돌비시네마로 한 번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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