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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2021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 30분 타 봤습니다 본문
31일(월요일) 오전 10시 무렵, 현대자동차 오토스퀘어 지산 지점을 찾았습니다. 2021년형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를 시승하기로 한 날이었거든요. 100-1번 버스를 타고 범어네거리 근처 그랜드호텔에 내렸다가 814번 버스로 환승 후 TBC앞에 내려서 2분만 걸으면 바로 보입니다. 1층은 전시장, 2층은 대구 동부 시승 센터가 운영 중이지요. 시승 고객은 건물 뒤편의 보행로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가면 됩니다. QR 체크인을 하고 시승 관련 서류를 쓰니 안내 직원이 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와 차 키를 건네주는군요.
건물 뒤 지상 주차장에는 스팀 세차 중인 시승차들이 한가득 보였습니다. 제가 탈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는 스팀 세차를 끝낸 징표로 앞유리 와이퍼에 '세차 완료' 팻말이 걸려 있었습니다. 안팎을 예쁘게 닦아낸 차를 바로 타게 돼 기분이 좋군요. 차 주변을 둘러봅니다. 색깔은 웜 톤(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쉬머링 실버, 차 안은 검은색과 베이지(생천) 색, 베이지 시트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기억 속의 대형 세단은 늘 검고 어둡기만 했는데 그랜저는 유난히 밝은 색이 잘 어울립니다. 순백색의 크리미 화이트 펄(10만 원 추가)이면 더 완벽했겠으나 쉬머링 실버도 보기 좋습니다. 잿빛 먹구름에 가까웠던 투싼 하이브리드의 쉬머링 실버 메탈릭보다는 채도가 높아서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운전석 문을 열어봅니다. 검은색과 베이지색으로 부위 별 경계를 뚜렷이 나누고 있으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납니다. 눈대중으로 훑어본 색 비중은 베이지가 70%, 검은색이 30%쯤 될까요? 운전 중 시선이 자주 머무는 곳(A필러, 운전대 혼 커버, 문 손잡이, 크래시 패드)은 밝고 눈이 덜 가거나 기능적 요소가 중요한 부위(운전대 림, 대시보드 상단, 문 아래 수납부, 전동식 시트 위치 조절 레버, 글로브 박스)는 대체로 어둡습니다. 한데 모아놓고 보면 아쉬울 게 없으나 따로 한 부위씩 살피면 밋밋해 보이긴 합니다. 도어 수납부 아래 플라스틱의 재질감은 무난함 그 자체입니다.
계기판을 대신한 12.3인치 클러스터 LCD 화면은 어떨까요? 주행 모드(Drive mode) 버튼을 몇 번 눌렀더니 에코(Eco), 컴포트(Comfort), 스포츠(Sport) 순으로 이어지는 화면 전환이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저사양 반도체를 넣은 걸까요? 가운데 달린 12.3인치 내비게이션 화면 터치도 눈에 띄게 굼뜹니다. 며칠 전 길게 시승했던 투싼 하이브리드는 화면을 부드럽게 척척 넘겨서 좋았는데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아닌 모양입니다. 누적 주행 거리 500km를 갓 넘긴 이 차만의 문제였을까요?
물리 버튼과 터치 패널이 혼합된 공조 장치는 직관성이 뚜렷해 만지기 좋았습니다. 오토 버튼을 누르고 운전자 위주(Driver only)를 누르면 주변 온도에 따라 알아서 통풍 시트까지 켜 주거든요. 외부 기온이 20도 안팎으로 서늘하고 미세먼지가 좋음 수준이라면 바람 세기 2단으로 약하게 공기를 불어줍니다. 낮 기온이 28도로 치솟던 오후 2~3시 사이에 시승을 다녀왔다면 통풍 시트 1~2단까지 같이 켜졌을 겁니다.
뒷좌석은 어떨까요? 당연시했던 햇빛 가리개가 없으니 뭔가 허전해 보이기도 합니다. 대신 그랜저가 추구하는 광활한 무릎 공간, 아늑한 분위기는 그대로입니다. 운전석 뒤에 등을 기대 여유롭게 앉아도 간격은 성인 남성 두 주먹 하고도 반이 더 남습니다. 천연 가죽임에도 쓸리거나 미끌거리는 느낌이 별로 없군요. 좌판 길이도 적당하고 등받이가 다소 누운 형태라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며 먼 거리를 다녀오기도 좋겠습니다. 뒷좌석 가운데의 콘솔 암레스트는 덮개 안쪽에 12V 아웃렛, USB 충전 포트가 있고 아래에 슬라이드 컵 홀더, 암레스트를 내린 안쪽에는 스키 스루 커버가 달려 있습니다.
웬만큼 다 둘러봤으니 차 시동을 켜겠습니다. 충전된 배터리 양이 충분하면 EV 모드로, 전자 장비로 배터리를 일부 소진하면 2.4 가솔린 엔진이 켜집니다. 뒷좌석 양문까지 이중 차음 유리를 끼워서인지 창문을 잠시 열었다 닫는 순간만으로도 주변 소음이 덜 들어오기는 합니다. 오히려 차 안으로 밀려드는 엔진음이 상대적으로 더 잘 들립니다. 1.6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은 다른 하이브리드 차보다 흡차음 대책이 여전히 느슨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가만히 서 있는 데도 투싼 하이브리드보다 EV 모드 지속 시간이 짧게 느껴집니다. 외부 소음 유입이 줄면서 묻혀 있던 다른 소음 유발 부위가 선명해졌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요?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로 잠시 다닐 경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두산오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직진 후 대구 3호선 범물역에서 좌회전합니다. 스쿨존과 무학네거리를 지나며 경사율 4~6% 구간을 오르내린 후 만촌네거리와 범어네거리를 둘러서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출퇴근 시간대가 지났기 때문에 교통량 많은 도로를 거쳐 가기로 했습니다. 르블랑 트림에 달린 앰비언트 무드 램프를 보려면 무학터널을 중간 경유지로 바꿔서 가로질러 가거나 더 크게 돌아 두리봉터널을 지나와도 됩니다. 참고로 무드 램프 휘도는 매우 낮아서 한낮에는 관찰이 어렵습니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로 맞춰서 다녀오기로 합니다.
오토스퀘어를 벗어나 두산오거리에 차를 멈췄습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는 이전 세대를 가져와 적용한 듯 글자와 그림이 작게 나옵니다. 카메라 버튼을 눌러서 서라운드 뷰 모니터(SVM)를 띄워봤습니다. 차 앞의 초광각 카메라 렌즈에 잡힌 화면이 먼저 나오며 왼쪽의 아이콘을 건드리면 좌우(사이드 미러 카메라)와 뒤(트렁크 리드 카메라)를 살필 수 있습니다. 화질은 무난하고 이미지 왜곡은 다른 차보다 적습니다.
범물네거리에 들어섰습니다. HUD에 좌회전 안내가 뜨지만 몇 차선에 붙으라는 지시가 없군요. 최신 버전의 현대차는 차선 별로 주행 방향까지 잘 드러내지만 르블랑에 선택 사양으로 달린 HUD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의 HUD가 들어간 게 분명하군요. 차선을 하나 바꾸며 좌회전해 아파트 단지 사잇길을 지납니다. 무학네거리를 지나면 왕복 6차선을 따라 오르막(6%)과 내리막(4%) 구간이 이어집니다. 컴포트에서 내리막 차로의 퓨얼 컷(에코존) 감속은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승차감을 위해 회생 제동을 풀어놔서인지 속도가 계속 붙었습니다. 주행 모드를 잠깐 에코로 돌리거나 왼쪽 시프트 패들을 당겨 기어 단수를 한 단 내려 타력 주행하는 게 낫겠군요.
만촌네거리에 왔습니다. 여기서 왼쪽으로 꺾어 범어네거리로 갔어야 했는데 무의식적으로 블루링크 경로 안내를 따르다 오른쪽으로 꺾었습니다. 길을 잘못 든 김에 더 가서 두리봉터널을 거쳐 돌아가도 되는데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만촌네거리에서 범어네거리로 이어지는 구간의 교통량이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수성대학교 교차로에서 U턴 후 대구 2호선 지하철 노선을 따라 범어네거리까지 갑니다. 전에는 이 구간이 제한 속도 70km/h였는데 2021년 4월부터 60km/h로 낮아졌습니다. 제한 속도 조정에 따른 신호 체계 재정비를 마친 상태라 교통 흐름은 기존과 비슷했습니다. 도심을 관통하는 구간은 EV 모드로 달리며 연비를 높이기로 합니다.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의 연비를 끌어낼 시간입니다.
범어네거리에서 좌회전 후 3km를 더 달려 오토스퀘어로 돌아왔습니다. 35분 간 12.5km를 달려서 나온 연비는 17.3km/l였습니다. 1.6 가솔린 터보 엔진을 감싼 하이브리드 차는 21~22km/l를 무난히 띄우지만 2.4 앳킨슨 가솔린 엔진이 실린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는 쉽지 않네요. 날씨가 서늘해 공조 장치에 걸리는 전기 부하가 적은데도 엔진이 켜진 구간이 많았습니다. 에코가 아닌 컴포트였는데도 가속 페달을 더 깊이 밟아야 원하는 속도가 뜹니다. 승차감은 부드러우나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 여진이 살짝 느껴집니다. 타이어 공기압은 36~37 PSI 수준이었습니다.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에는 17인치 하이브리드 전용 휠 타이어(225/55 R17, 금호타이어 마제스티 솔루스 에코)가 신겨져 있었습니다. 폭이 좁고 구름 저항이 적은 타이어를 채웠음에도 연비는 기대보다 살짝 모자란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행 기록 초기화 전 514.5km를 달렸던 연비는 12.2km/l였습니다. 1.6 가솔린 터보 엔진을 품고 나올 수는 없었을까요? 아니면 내년 중 풀체인지로 극적인 변화를 주기 위함이었을까요? 르블랑 트림 자체의 상품성은 잘 짜였다고 생각하나 순수한 하이브리드 차로서 갖춘 힘과 연비 경쟁력은 애매해 보입니다.
대구 지산 지점에서 시승한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는 선택 사양(HUD, 파노라마 선루프, 빌트인 캠)이 모두 들어있었습니다. 차 가격은 4,388만 원(개별소비세 3.5% 인하분 적용 기준)입니다. 제가 르블랑 하이브리드를 계약한다면 셋 다 선택 사양으로 넣지 않겠습니다. 르블랑 트림 그 자체의 상품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거든요. 셋 중에는 HUD가 그나마 낫습니다.
운전자 외 다른 사람이 차를 번갈아 운용하는 상황이라면 익스클루시브나 캘리그래피를 추천드립니다. 버튼 한 번에 운전대와 시트 위치를 알아서 맞추는 운전석 자세 메모리 시스템이 들어있으니까요. 뒷좌석 양문과 뒷유리(전동식)에 햇빛 가리개도 달립니다. 르블랑은 주로 혼자서 차를 먼 거리를 다니면서 가끔 누군가와 동승하기 알맞은 '길 위의 리더' 맞춤형 상품이라 판단됩니다.
이상으로 현대자동차 2021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 시승 후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대구 오토스퀘어 지산 지점은 셀프 시승 요청 시 1시간 단독 시승이 가능합니다. 차 밖과 안을 둘러보는 시간을 곁들이면 실제 시승 가능한 시간은 30~40분 정도입니다. 차를 몰기 전에 시승할 구간을 네이버나 카카오 맵 로드뷰로 미리 둘러보면 더 면밀히 차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됩니다. 끝으로 2021 그랜저 르블랑 하이브리드를 시승하면서 촬영한 사진 몇 장을 걸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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