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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크리스마스 이브,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토요일 본문
밤늦게 트위치 방송을 보다 일어났더니 시계는 아침 9시 반을 가리킵니다. 대륙성 고기압이 몰고 온 맹렬한 겨울바람에 온몸이 시릴 만큼 춥더니 크리스마스 이브는 거짓말같이 날이 맑네요. 편의점 김밥 도시락에 먹다 남은 크림빵 몇 개,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 한 잔은 자연스레 브런치가 됐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몇 개를 돌려 보다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데우고 평소보다 느긋하게 외출 준비를 했더니 벌써 오후 2시 반입니다.
몸은 전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두 달 전에는 왼 무릎에 보조기구를 채우고 목발 두 개에 의지하며 앙감질(깨금발) 하기 바빴는데요. 체외충격파 치료를 꾸준히 받은 덕에 목발 한 개만으로도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걸음 속도는 여전히 느리지만요. 지하주차장으로 조심스레 내려가 차 시동을 걸고 커피 한 잔 하러 나갑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지만 차들은 생각보다 많이 안 보였습니다. 평소 주말보다 적어서 쾌적했달까요?
3시가 조금 넘어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드립커피 중 뭘 마실까 두리번거리다 엘살바도르 쿠르카차파를 마시기로 합니다. 생소한 품종이라 궁금했고 커핑노트로 기록된 맛과 향 특성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마일드하게 내릴지, 진하게 내릴지를 묻자 진하게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땅콩버터, 물엿, 허니듀멜론, 초콜릿, 약간 묵직한 바디감'이라고 되어 있으면 왠지 그렇게 주문해야만 할 것 같았거든요.
주문 후 결제를 마치자 카운터 직원이 장미 한 송이를 건넵니다. 크리스마스 기간(12월 23~25일, 3일간)에는 음료 한 잔에 장미 한 송이를 나눠주는 행사를 한다는군요. 돌돌 말아둔 비닐에 끈으로 리본 매듭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나눠주는 장미 색상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몇 분이 흐르자 주문한 진동벨이 울립니다. 굴뚝처럼 생긴 잿빛 머그잔에 커피가 담길 줄 알았는데 희고 아담한 커피잔과 받침이 차려져 나왔습니다. 색깔은 평소 마시던 드립커피보다 진했고 표면은 뭔가 반질반질해 보였습니다.
향을 맡고 슬러핑(Slurping, 후루룩 소리 내며 마시다)을 하니 커핑노트에 적힌 특성이 단박에 이해가 됐습니다. 혀끝으로 뭔가 기름진 듯 끈적거리는 맛이 느껴졌습니다. 몇 모금 입 안에 머금고 있으면 레몬 과육을 씹은 듯 혀 양쪽으로 시큼한 맛이 치고 들어옵니다. 목으로 넘기며 들숨을 쉬고 나면 시큼한 맛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뭔가 쓸고 나간 듯 개운해집니다. 리필해서 다시 마시고 싶을 만큼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늘의 커피에 만족하며 베이커리 코너에 진열돼 있던 얼그레이 레몬 스콘을 하나 집어듭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먹을 후식입니다. 멤버십 카드 잔액도 채울 겸 카운터로 가서 3만 원을 충전했더니 등급이 브론즈에서 실버로 올랐습니다. 누적 충전금 5만 원부터(실버) 포인트 추가 적립 5%, 바로 옆 자동차 튜닝숍 SHP에서는 공임 할인 7% 혜택이 주어집니다. 커피 리필 혜택은 다른 드립커피로도 가능하다고 하니 다음 주에 한 번 이용해야겠군요.
오후 4시 무렵 카페를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자 햇살이 정면에 들어옵니다. 자동차에 반사돼 비치는 햇빛이 제법 그럴싸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서 무심코 사진을 담았습니다. 렌즈 플레어(lens flare)로 살짝 흐릿하게 담긴 역광 사진에 흑백 필터를 씌우면 뭔가 분위기 있는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맞은편에서 햇살을 유난히 잘 받던 더 뉴 싼타페는 측후면을 향해 순간 포착 후 갤럭시 사진 리마스터 기능을 돌려봅니다. 뭔가 자동차 카탈로그에서 보던 이미지가 돼버린 느낌이네요.
차 시동을 걸고 이마트에 가기로 합니다. 보통 때면 여기서 차로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요. 늦오후가 되니 숨바꼭질하던 차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눈에 띄게 늡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가족 단위로 드라이브 겸 저녁 먹으러 나왔겠지 생각하고 가는데 뭔가 교통 흐름이 심상찮습니다. 마트 앞 진입로를 따라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이마트 직화 불고기 피자 두 판, 1.25리터 맥콜 하나 사러 왔을 뿐인데 원하지 않던 눈치게임을 하며 꼭대기 층까지 곧장 가기로 합니다.
벽돌 깨기 흔적이 엿보이는 몇 자리 말고는 차들이 거의 꽉 찼습니다. 3층은 만차, 4층은 29칸, 5층은 49칸이 남았다고 했지만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니 남은 주차 면이 순식간에 한 자리 수로 바뀝니다. 쓱랜더스(SSG랜더스 프로야구단) 22 시즌 우승 기념 특별 할인 행사 때보다 사람들이 더 몰린 느낌이었습니다. 통로 쪽으로 우편향 주차를 마치고 내렸더니 벌써부터 기가 빨릴 듯한 예감이 듭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트 안은 가족 단위 고객들이 많았습니다. 2층에는 레고 코너를 서성이며 박스를 들었다 놓는 부모님 표정, 어느 때보다 맑은 눈망울로 반짝거리는 아이들 눈빛이 멀리서도 읽힙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 더 내려갑니다. 먹을거리 가득한 식품 코너는 사람들 발길을 멈추는 재주가 뛰어납니다. 과자 코너는 행사로 동난 재고를 채우기 바빴고 와인 코너는 '올 게 왔다' 싶었는지 직원 두세 명이 더 달라붙어 판매 지원에 나선 모양이었습니다.
피자를 주문할 베이커리(블랑제리) 코너도 정신없이 바빠 보였습니다. 가족과 함께인 크리스마스 이브는 케이크랑 달달한 크림빵이 불티나게 잘 팔리거든요. 1만 8,900원 특별가로 나온 생크림 딸기 케이크는 한두 판만 남고 가성비 좋은 생크림 크루아상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순서를 기다려 베이커리 담당 직원에게 "불고기 피자 큰 걸로 두 판 주세요"라고 말하니 "20분 후 찾으러 오세요"라고 합니다. 평소 주말이면 10분이면 나오는데 마트에서 10분 더 보내게 됐습니다.
피자가 만들어질 동안 2층 외곽의 신세계상품권 코너로 향합니다. 현대 히어(h-ear) 커뮤니티 활동과 이벤트로 받은 이마트 상품권 기프티콘을 쓱머니(ssg money)로 바꾸기 위함이었죠. 다행히 상품권 코너 앞 키오스크는 여유로웠습니다. 신세계상품권 교환을 터치하고 바코드 스캐너로 번호 등록 후 스크래처가 붙은 상품권을 받았습니다. 앞면의 스크래처는 체크카드로 쓱쓱 밀고 쓱페이(ssgpay) 앱에서 상품권 번호(상품권 뒷면 바코드 스캔)랑 여섯 자리 핀 번호를 누르면 됩니다.
시간이 남아서 2층 자동차용품 및 소형가전 코너를 돌다가 1층에 내려왔습니다. 주문한 피자를 받으러 왔는데 앗... 주문 전달이 잘못된 모양입니다. 직화 불고기 피자가 아닌 슈퍼 콤비네이션 피자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20분 더 마트에 더 머물게 됐군요. 워낙 바쁘니까 전달이 잘 안 됐을 것 같아서 너그럽게 넘깁니다. 맥콜 하나 껴안고 따끈한 불고기 피자 두 판을 받쳐 드니 오른팔이 슬슬 저립니다. 셀프 계산 후 주차장에 되돌아가니 날이 저뭅니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마트에서 한 시간이 지났군요. 5시 반이 됐습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집에 와서 피자 한 판을 펼칩니다. 시간이 지체돼 피자가 식었지만 토핑의 양, 만듦새는 꽤 실했습니다. 얼른 한 조각 떼서 피자 에지(손잡이) 쪽으로 돌돌 맙니다. 한 입 베어 먹으니 고기와 피망, 양파, 치즈가 한데 잘 뭉쳐서 맛이 괜찮았습니다. 나머지 조각은 약불로 데운 팬에 3~4분간 지집니다. 스크린 도우로 두툼하게 나온 피자는 이렇게 데워 먹으면 빵과 그립은 바삭, 속은 촉촉해져서 부리토처럼 먹기 좋아집니다. 전자레인지로 데우면 나중에 피자 에지가 퍽퍽해지고 질겨질 수 있습니다.
피자 세 조각을 먹고 난 다음 치킨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주문해 먹던 두 마리 치킨 전문점에다 매운 간장 한 마리, 땡초 불꽃 한 마리로 주문해서 먼저 먹고 있던 모양이었습니다. 염지랑 잘 된 양념 치킨은 식어도 맛있습니다. 피자로 기름칠을 했으니까 퍽퍽살 위주로 몇 조각 고릅니다. 위장에서 배부름 신호를 보내면 깊은 유리잔에 각얼음 탈탈 털어 맥콜을 콸콸 쏟아붓고 목구멍으로 탄산을 쉼 없이 들이밉니다. 저온 냉장고에서 갓 꺼낸 코카콜라만큼 톡 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멋진 마무리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토요일은 선물 하나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12월 말에 갈 거라던 볼보 에이치모터스의 인스타그램 퀴즈 이벤트 경품이 벌써 왔습니다. 정답 제출을 겸해서 몇 마디를 더 붙였더니 관심을 끈 모양입니다.
박스에 든 경품은 볼보 텀블러였습니다. 안팎은 SUS304 스테인리스 합금강, 뚜껑은 폴리프로필렌과 실리콘, 뚜껑에 매달린 스트랩은 가죽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두께는 한 손에 잘 잡히는 정도며 차 안의 컵홀더에도 잘 꽂힐 듯한 느낌입니다. 용량은 스타벅스의 그란데(473㎖)랑 비슷합니다. 며칠 뒤 해돋이 보러 갈 때 따뜻한 차를 담아두거나 음료 테이크 아웃을 위한 텀블러 대용으로 쓰기 좋겠군요.
다음 주 레이로 경주로 드라이브 겸 해돋이 여행을 다니기 위한 필수품으로 잘 챙겨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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