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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아이오닉 5 N, 현대의 진심을 갈고닦은 고성능 전기차 본문
지난 13일 아이오닉 5 N이 공개됐습니다.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현대가 N 브랜드의 경험치를 갈아 만든 고성능 전기차입니다. 아이오닉 5의 기본 틀과 이미지만 살리고 안팎은 모조리 바꿨습니다. 누군가 전기차는 아직 트랙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된 네 바퀴 전동차라 말하지만 아이오닉 5 N은 예외일지도 모릅니다. 코너의 악동, 트랙 경주 능력, 매일 달리는 스포츠카로 묘사된 아이오닉 5 N은 어쩌면 고객이 아닌, 현대가 진짜 만들고 싶은 고성능차 아녔을까요?
생김새는 길 위에서 보던 아이오닉 5랑 다릅니다. 네모난 헤드램프 밑으로 온갖 바람길을 내면서 얼굴이 터프해졌습니다. 충전하면 불이 들어왔던 라이트 스트립은 세로로 구멍을 파서 진공청소기처럼 바람을 빨아들입니다. 거침없이 고회전하며 고온으로 달궈질 전기 모터의 오일 쿨러, 고전압 배터리를 식히는 칠러의 냉각 성능을 높여서 차가 쉽게 지치지 않게 해 줍니다. 부쩍 커진 하단의 공기 흡입구(액티브 그릴 셔터 포함)는 블랙, 스트립 한가운데와 돌출된 입술(프런트 립)은 다홍 빛깔의 루미너스 오렌지로 칠하며 강렬한 N 모델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휠은 EV6 GT(255/40 R21)처럼 21인치를 끼는데 타이어 편평비는 더 얇고 트레드는 소폭 더 넓어졌습니다. 타이어는 피렐리의 P 제로, 규격은 275/35 R21입니다. 지면에 맞닿는 바퀴의 단면적을 늘리면 접지력이 느는 대신 회전 저항이 커지는데요. 앞뒤 차축은 드라이브 샤프트와 휠 조인트, 허브를 일체형으로 만든 기능 통합형 차축(IDA)으로 구조를 단순화하고 가벼운 단조 휠을 꽂아서 랠리카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충격을 받아내는 전자제어 서스펜션(ECS) 댐퍼 용량도 키우고 MDPS 주요 구성 소재도 더 든든해졌습니다.
강화된 제동 시스템도 눈길을 끕니다. 전륜은 400mm 브레이크 디스크에 4-피스톤, 후륜은 360mm 브레이크 디스크에 1-피스톤 캘리퍼를 끼우고 곳곳에 바람길과 펜더 앞에 숨구멍을 틔워서 열 배출 능력을 높였습니다. 공력 성능 최적화로 전비 높이기에 일조하던 매끈한 언더커버도 살짝 다듬었습니다. 2.2톤 넘는 무게로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려갈 아이오닉 5 N에게는 '필수 불가결(꼭 있어야 하며 없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N 페달로 정의된 회생제동 시스템은 전기차에서 원-페달 주행으로 익숙해진 I-페달의 상위 개념입니다. 발에서 가속페달을 뗀 만큼 진행 방향의 역방향으로 걸리는 힘을 이용해서 배터리를 충전하며 속도를 늦췄는데요. 가끔 주행 가능 거리를 늘리거나 급격한 내리막 차로에서 쓰이던 I-페달에 특이점이 왔습니다.
N 모드에서 바퀴에 걸리는 역회전량이 더욱 커져서 급감속을 유도하기 더 쉬워졌습니다. 굽은 길에서 적절한 속도로 운전대를 휙 감아 하중 이동을 느끼던 수준에서 벗어나 섬세한 오른 발질로 원하면 언제든 차를 코너 안으로 파고들거나 밖으로 밀어내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N 페달 감속량은 패들 시프트로 3단계까지 조절됩니다. 트랙에서는 왼발 제동(전기 모터는 스포츠 플러스, ESC OFF 사전 설정 필요) 기능까지 허용하니까 기술 숙련도가 높은 아이오닉 5 N 운전자라면 금세 '코너 깎는 장인'으로 불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너 깎는 장인 타이틀(수식어)을 위한 아이오닉 5 N의 숨은 능력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전기 모터의 구동력을 어디에 더 많이 둘지 결정하는 'N 토크 배분(N Torque Distribution)' 기능은 10% 단위로 11단계까지 조절됩니다. 앞뒤로 절반씩 네 바퀴를 균형적으로 맞출지, 움직임 예측이 편한 전륜 편향으로 맞출지, 꼬리를 휘날리며 후륜 편향으로 맞출지 선택은 오직 운전자의 몫입니다.
앞바퀴 굴림, 뒷바퀴 굴림, 네 바퀴 굴림 등 내연기관 경험치가 철철 넘치는 운전자라면 스크롤 조정에 시간을 한참 끌지도 모릅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려는 운전자의 순수한 열정은 맞춤형 프리미엄 가전을 고르는 주부의 진지함, 내 색깔이 아니면 디자인이 똑같아도 다른 옷이라 말하는 패션의 관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N 배터리 프리 컨디셔닝, N 레이스 모드는 트랙에서 불 속성이 켜질 아이오닉 5 N 운전자에게 어울립니다. 겨울철 배터리를 데워서 충전 손실을 줄이던 배터리 프리 컨디셔닝이 최대 출력으로 단판 승부에 몰입하는 드래그 모드(섭씨 30~40도), 나 자신과의 싸움에 빙의하며 타이어를 장시간 담금질하는 트랙 모드(섭씨 20~30도)를 제안합니다.
N 레이스에서 양자택일되는 스프린트(Sprint)와 인듀어런스(Endurance) 모드는 각각 전력 질주를 논하는 총력전(출력 제한 없음)과 오랫동안 잘 달리는 지구전(최대 출력 제한으로 주행거리 연장)으로 나뉩니다. N 배터리 프리컨디셔닝과 N 레이스 두 모드는 본 경기를 뛰기 직전 지면에 타이어를 지그재그로 끌며 온도를 높이는 F1 머신의 준비 운동 행렬, 원스톱이냐 투스톱이냐를 논하는 타이어 교체 전략에 비유될 만합니다.
N 그린 시프트(N Grin Shift)로 불리며 가속을 돕던 기능은 아이오닉 5 N에서 'N 그린 부스트(N Grin Boost)'로 역할이 명확해졌습니다. 앞뒤 전기 모터를 통틀어 609.3마력, 75.5 kgf.m 토크를 내던 차가 10초 동안 650마력, 78.57 kgf.m 토크로 오르며 더 힘찬 가속을 부추깁니다. 사용 후 10초를 기다리면 또 한 번 꺼내 쓰기가 가능한 점이 독특합니다.
NGS랑 혼동할 만한 N e-시프트(e-shift)는 내연기관차의 변속감을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감속기 혹은 1단(저단, 가속형)과 2단(고단, 항속형) 영역이 구분된 다른 전기차들과 다릅니다. 모터 제어 기술로 만들어낸 인위적 진동과 충격에 가상 엔진음을 입혀서 마치 내연기관차의 기어를 만지는 듯한 주행감이 느껴지게 했습니다.
탑승객만 알아듣던 가상 엔진음은 이제 앞뒤 외부에 달린 스피커로 들려줍니다. N 액티브 사운드 플러스에서는 이그니션, 에볼루션, 슈퍼소닉 세 가지 패턴으로 나뉩니다. 이그니션은 또 다른 N이 품던 2리터 가솔린 엔진음을, 에볼루션은 아이오닉 6 뼈대로 만든 고성능 전기차 RN22e와 하이퍼카 콘셉트로 선보였던 N 비전 2025 그란투리스모의 흔적을, 슈퍼소닉은 초음속 전투기 제트 엔진의 울림을 디지털 처리로 승화하며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소음이 제한된 주택가, 생활도로구역에서는 '가상 엔진음 끄기'로 공공도로상 예의범절을 따르기도 합니다.
단거리 전력 질주에 최적화된 N 런치 컨트롤은 언제 어디서든 힘껏 박차고 나갈 준비를 합니다. 전력 질주를 앞둔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아이오닉 5 N도 지면에서 웅크리기를 시전합니다. 로우(Low), 미디엄(Medium), 하이(High)로 나뉘는 그립 레벨 중 하나를 결정하면 서스펜션을 비롯한 몇몇 부품에 출발 직전 예비 토크를 걸어 타이어 미끄러짐을 줄이고 기록 단축을 돕습니다. 출발과 동시에 N 그린 부스트를 터뜨리며 단 3.4초 만에 시속 100km, 최고 시속 260km로 돌진합니다. 단계 설정이 복잡하지 않아서 그 누구든 드래그 레이스를 쉽게 즐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정된 트랙에서 말이죠.
아이오닉 5 N에 잘 적응한 운전자라면 'N 드리프트 옵티마이저'를 만지는 일도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굽이진 산길을 오르내리며 두부 배달하던 만화 속 주인공에 빙의하며 코너의 악동으로 급성장하도록 도와주니까요. 프로필로 저장된 드리프트 모드 전용 토크 맵과 회생제동 맵을 가져와 씌우는 식인데 머리와 꼬리의 움직임은 운전대를 감기 전에는 모릅니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예습한 뒤에 도전할 것을 권합니다. 휠 스핀 속도에 제한이 걸려서 예상보다는 쉽게 구현되지 않을까 합니다. 좌우 회전수를 보정해 선회 안정성을 높이는 전자식 차동 장치(e-LSD)를 달았으니 적응은 시간문제일지도요.
배터리 용량은 연식변경으로 판올림 된 아이오닉 5(77.4 kWh) 보다 넉넉한 84 kWh에 달합니다. 4세대 배터리를 쓰면서 에너지 밀도 역시 늘어난 걸로 추정되는데 주행 가능 거리와 같은 세부 정보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800V로 초급속 충전 시 10%에서 80%까지 걸리는 시간은 18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0mm 길어지고 50mm 넓어졌으며 20mm 낮아진 휠베이스 3m의 전기차가 얼마의 전비로 한 번 충전해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도 관심이 깊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안에는 N 브랜드로 치장된 3-스포크 N 운전대, N 버킷 시트, N 도어스커프, N 메탈 페달로 질주 감성을 가득 채웠습니다. 리어 스포일러는 아이오닉 5보다 100mm 길어지고 N 전용 삼각 보조 제동등, 체커기 패턴의 리플렉터(반사판), 갈퀴를 낸 리어 디퓨저로 내연기관의 향수를 자극합니다. 곳곳을 둘러보면 아직은 내연기관차가 좋은데 전기차를 마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감성과 메시지가 잘 드러난 작품처럼 보입니다. 전기차 속에서 "Never just drive."를 외치는 현대의 진심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볼 아이오닉 5 N에 잘 녹아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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