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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캐스퍼, 한여름 내관지 다녀온 후기 본문
지난 8일 그린카로 캐스퍼 터보를 빌렸습니다. 4월에 쏘카로 이용한 캐스퍼랑 얼굴이 다른 모델입니다. 절기상 가을 문턱을 알리던 '입추(入秋)'였지만 창밖 날씨는 여전히 한여름이었습니다. 태풍 '카눈'이 다가오며 미지근한 바람이 세차게 부는 중이었죠. 폭염 경보, 외출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를 봤음에도 일상의 새로운 발견을 원하던 제 바람은 꺾지 못했습니다.
캐스퍼 터보를 다시 만난 곳은 대구 고산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4~5분이면 닿는 카셰어링 존입니다. 헬스장 건물 앞에 세워진 캐스퍼는 톰보이 카키 옷에 15인치 휠, 블랙 시트를 품고 있었습니다. 쾌적한 운전을 돕는 전 자동 에어컨, 운전석 통풍 기능은 기본입니다. 계기판에 적힌 누적 주행거리는 2만 5천 km가 조금 넘었습니다. 첫 시동 직후 밑에서 덜덜거리는 떨림이 있었는데 2~3분 지나면 보통의 3기통 엔진과 회전 질감이 비슷해집니다.
먼저 찾아갈 곳은 '내관지'입니다. 팔로우 중인 대구 관광 공식 인스타 계정(@visitdaegu)이 알려준 새로운 저수지였습니다. 기억 속의 내관지는 대구스타디움 뒤쪽 산비탈에 만들어진 평범한 저수지인데요. 지금의 내관지는 뷰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못 가장자리에 등산로 입구를 연결하는 덱(deck)을 깔고 조형물 몇 개 세워서 '생각을 담는 길, 내관지길'로 정비가 됐더군요. 자동차로 오르던 비포장 비탈길 옆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덱까지 분리형으로 높여서 만들었더군요.
가는 길은 알지만 캐스퍼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으로 목적지 검색을 해봤습니다. '내관지'로 검색하니 엉뚱하게도 이름이 비슷한 '대관지'가 나오고 '내관저수지'로 풀어쓰려 하니 '내가저수지'가 뜹니다. 옛 지명으로 알려진 '내환지'로 검색해야 목적지가 뜹니다. 내환지에서 내관지로 지명이 바뀐 지 한참 지났는데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과정에서 거듭 누락된 모양입니다. 차로 가면 고산역에서 차로 15분 안으로 갑니다.
경사율 12%를 자랑하는 비포장 오르막은 캐스퍼 터보로 금방 올라갑니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지 않아도 비포장 노면을 읽으며 여유롭게 오릅니다. 회전력이 부족한 일반 캐스퍼는 L 모드에 기어를 걸고 가속 페달을 조금 더 밟으면 잘 오릅니다. 주차장은 지정된 곳이 따로 없어서 공터에 주차된 다른 차들 틈에 쏙 집어넣었습니다. 공터에서 내관지길 입구까지는 걸어서 4~5분이면 됩니다.
본격적인 내관지길은 비탈길 정면의 내관지 표지석, 생각을 담는 길이라는 안내판에서 시작됩니다. 못 위로 지어진 산책로는 길이가 250m 안팎으로 짧지만 머무는 시간은 의외로 깁니다. 저수지 수위를 나타내던 곳은 나무 울타리를 둘러서 누구든 저수지 사방을 둘러보게 만들었습니다.
우측에 연결된 덱을 걸어가면 또 다른 전망 덱이 나옵니다. '저기에 왜 의자가 있지?' 하고 다가가면 난간에 걸친 조형물을 보고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생각하는 사람처럼 잠시 앉아 있어 보라는 '생각하는 의자'였습니다. 실제로 앉았다 가는 방문객들이 많았는지 좌판과 팔걸이의 색깔이 눈에 띄게 바래졌습니다.
내관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뷰는 생각하는 의자에서 조금 거리를 둔 위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바람에 일렁이던 물결이 안정을 찾으며 잔잔해지는 순간은 눈이 저절로 맑아집니다. 등 뒤로는 그늘이 져서 다른 곳보다 덜 덥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잠시 멍을 때리며 머리를 비우고 그다음 산책로로 향합니다.
등산로 입구로 연결되는 길목에는 대나무 움막이 나옵니다. 길의 끝을 알리는 표시보다는 등산로 입구로 안내하는 조형물 같기도 합니다. 내관지길은 청계사로 향하는 중간에서 끝나며 10월 말까지 확장 공사가 끝나면 힐링하기 좋은 또 다른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볼 만한 곳으로 찾아가는 반곡지나 삼성현역사문화공원보다 차를 세우기 애매한 점이 아쉽긴 합니다.
내관지길을 돌며 보낸 시간은 보통 20분, 길어야 30분입니다. 대구스타디움으로 되돌아가는 내리막 비탈길은 기어를 L 모드에 걸고 풋 브레이크를 나눠 밟는 식으로 천천히 내려가면 됩니다. 엔진 브레이크를 무작정 신뢰하기보다는 제동 부하를 곳곳에 나눠준다는 생각으로 캐스퍼를 다루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도 무난하게 잘 내려갑니다.
대구스타디움에서 정한 다음 행선지는 '경산시 현충공원'이었습니다. 힐링 공간이라기보다는 성암산 중턱에 조성된 전쟁 군인 추모 공원이라서 평소에는 발길이 뜸합니다. 이동할 거리는 4km, 예상 이동 시간이 12분 밖에 되지 않는 가까운 곳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거리가 가까워서 생수 대신 약수를 받아오는 곳으로 다니곤 했는데요.
동네 뒷산인 성암산 중턱에 대구-부산 고속도로 교량이 들어서면서 갈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예전에 음용수 부적합 판정이 난 뒤로는 찾아갈 동기가 없어진 겁니다. 생수를 사 먹는 일상이 당연시되며 잊힐 때쯤 캐스퍼 빌린 김에 처음으로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급경사 진 포장도로를 오르며 도착한 현충공원 주변은 예상대로 한적했습니다. 방음벽이 설치된 교량이 가까워서 콘크리트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가 더 잘 들립니다. 주차장은 위아래 두 곳으로 나뉘며 주차 면수는 통틀어 36면 규모입니다. 위쪽 주차장에는 전기차 두 대를 동시 충전하는 양팔형 급속 충전기도 들어서 있었습니다. 성암산 등산객들이 차를 세울 만한 곳으로 알맞아 보였습니다.
2019년 조성된 현충공원에는 세 개의 탑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왼쪽은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는 충혼탑, 가운데는 6.25 참전 호국영웅기념탑, 우측은 월남 참전기념탑입니다. 충혼탑에는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전사자 1,240여 명의 위패봉안실이 함께 설치된 형태며, 다른 두 기념탑은 뒤쪽에 경산 출신 참전유공자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습니다.
공원 곳곳에 새운 안내문을 바라보다 캐스퍼로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현충공원에 잠시 머물다 가는 모습을 담고서 차를 픽업한 고산역 부근으로 향합니다. 이동할 거리는 5km, 예상 이동 시간이 15분 정도로 짧습니다. 시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이곳은 분명히 경산인데 생활권은 대구에 더 가깝습니다.
카셰어링 존에 도착하면 반납 전 캐스퍼랑 문단속 절차를 치릅니다. 컵홀더 주위에 음료나 쓰레기를 흘리지 않았는지, 잊은 물건은 없는지, 창문을 전부 다 올렸는지를 살핍니다. 반납 후 10분 안에는 문을 잠깐 열 수 있으니까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문 잠금 후 '반납하기'를 누르면 대략 한 시간 후 주행요금이 결제됩니다. 두 시간 반 동안 캐스퍼로 움직인 거리는 17km였습니다. 30km 이하 주행요금으로는 1km에 210원씩 해서 3,570원이 나옵니다.
대여료는 사용을 미루고 미루던 캐스퍼 2시간 무료 쿠폰으로 메웠습니다. 추가 대여한 30분은 잘 모아둔 그린 포인트로 퉁쳤습니다. 중간에 대중교통으로 소비된 이동비까지 더해도 2만 원을 안 넘습니다. 수중에 당장 차가 없는 순간에는 카셰어링 앱으로 아껴둔 대여료 할인 쿠폰의 활용 가치가 커집니다. 무더운 한여름이 가고 9월로 접어들면 캐스퍼의 활동 범위가 지금보다는 더 넓어질 겁니다. 그때를 대비해 저는 카셰어링을 이용하며 힐링에 쓸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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