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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초보운전의 용감한 여행, 팔공산을 넘어 군위로 (2편) 본문
지난 1월 7일 막내 여동생의 운전 연수를 겸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팔공산 한티휴게소에서 끝날 줄 알았던 우리의 여정은 고양이 만나러 간다는 일념으로 더 길어졌습니다. 집으로 꺾이지 않는 마음을 받들어 검색한 목적지는 '화본역'이었습니다. 대구 군위 외곽의 조용한 시골 간이역인데 이곳의 임시 역장 길냥이와 눈인사를 나누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한티휴게소에서 화본역까지 약 30분이 걸리는데 길눈이 밝지 않은 초보 운전자에게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비탈진 산길을 쭉 내려와서 왕복 4차선 국도로 합류했다가 회전 교차로를 지나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을 타게 됩니다. 초행길이라 불안한 초보 운전자에게는 모든 걸을 다 알려줄 내비게이션이 유일한 동아줄입니다.
한티휴게소에서 내려가는 길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서 그늘이 넓고 얼어붙은 곳이 많았습니다. 연속된 급커브 가장자리엔 녹다 만 눈이 얼어서 차로 폭이 좁고 사고 다발 구역 가운데 설치된 중앙 분리대 주위도 얼어서 운전자를 주눅 들게 만듭니다. 브레이크 페달을 잘못 밟았다간 밖으로 벗어나거나 안으로 말려서 가드레일에 부딪칠 가능성이 커집니다.
내리막 경사로가 길게 이어진 곳은 관성 주행과 엔진 브레이크로 속도를 완만히 조절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2종 보통으로 면허를 취득한 막내 여동생은 기어 단수를 조절하는 수동 변속을 학습한 적이 없어서 미리 엔진 브레이크 사용법을 일러줬습니다. 직선 주로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감속한 뒤 왼쪽 패들 시프트를 당겨서 기어 단수 숫자를 낮추고 평지로 완만해지면 오른쪽 패들 시프트를 당겨서 속도를 살리고 내리막 차로가 이어지면 다시 기어 단수를 낮추는 식입니다.
보통 초보 운전자들은 엔진 회전 수가 빨라지면 굉음이 나서 차가 고장 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엔진 회전 수가 빨라지면 가속 페달을 뗐을 때 설정된 기어비에 따라 감속량이 커지는 것뿐입니다. 레드존 끝까지 엔진을 과하게 돌리는 경우가 거의 없기도 하고 D 모드에서 수동 변속하는 중에도 가끔 변속기 보호를 위해 기어 모드가 알아서 바뀌기도 합니다.
경사율 10% 안팎의 내리막을 타고 있다면 기어 2단에서 20~40 km/h 범위로 속도 제어가 됩니다. 경사가 완만해지면 가속 페달에 발을 살짝 기대는 정도로 얹거나 기어 단수를 하나 올리고 경사가 급해지면 감속 후 기어 단수를 이전 숫자로 되돌리면 됩니다. 제동 부하를 고르게 나누면 회전에 따른 하중 이동이 유연해져서 굽은 길을 더 안정적으로 돌게 만듭니다. 타이어 사이드 월도 거친 노면에 덜 쓸리고 차체도 덜 기우니까 조향 응답성도 좋아집니다.
굽이진 산길을 다 내려와서 왕복 4차선 도로에 합류할 때는 후측방 상황 관찰이 중요합니다. 램프 구간 진입 후 합류 차로에서 고속도로 본선에 들어갈 때처럼 속도감을 신속히 읽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제한 속도가 60 km/h 이하로 낮으면서 통행량이 현저히 적은 구간이면 드나들기 쉽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긴장된 얼굴로 운전대를 바삐 움직이던 막내 여동생은 넓고 완만한 길로 접어들자 평온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1차선에서 가끔 과속하는 차가 지나거나 후방 차량이 바짝 붙으며 따라와도 신경 쓰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시선은 진행 차선을 따라 먼 곳에 두고 양손에 달걀을 말아 쥔 느낌으로 차체의 움직임을 느껴보라고 주문합니다.
처음에는 차로 중앙 유지 보조에 기대며 좌우로 까딱대더니 주행 구간이 길어지며 안정을 찾았습니다. 크루즈 컨트롤은 쓰지 않고 경사율에 따라 오른발을 뗐다가 밀면서 속도를 비슷하게 맞추도록 이끌었습니다. 전자 장비 의존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운전 집중력이 떨어지기에 학습이 제대로 안 될 거라 판단했습니다.
4차선 도로가 끝나는 회전 교차로 지점에서는 낯설어했습니다. 회전 차량이 없으면 좌측 방향 지시등을 켜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우측 방향 지시등을 켜서 원하는 길로 나가면 되는데 도로 주행 시험에서는 안 가르칩니다. 어영부영하는 모습이 보여서 회전 교차로 진입, 진출 순서를 하나씩 차례로 일러줬습니다. 회전 교차로는 한적한 교외 지역, 교통량이 적은 구 도심 생활도로구역에 설치되는데 일부 운전자들이 진입 우선순위를 혼동해 경적과 급제동이 일어나곤 합니다. 초보 운전자 단독으로는 회전 교차로가 출구 없는 회전문처럼 느껴진달까요?
화본역으로 향하는 최종 관문은 경사율 11%를 자랑하는 오르막과 내리막 차로, 철길 건널목입니다. 짧고 굵게 끝나는 등반 구간이라서 난도는 한티재 고갯길보다 평이합니다. 오르막에서는 속도 유지, 내리막에서는 엔진 브레이크만 잘 다룰 줄 알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내리막이 무섭다고 무작정 브레이크 페달만 계속 꾹 밟다간 패드도 제 수명대로 못 쓰고 휠도 분진으로 금방 지저분해지며, 디스크도 열을 받아서 제동이 느슨해지니까 자동차 입장에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한티휴게소에서 약 30분을 달려온 끝에 화본역에 도착했습니다. 자동차로 가득한 앞마당을 지나 임시 주차장으로 쓰이는 너른 공터에 차를 세웠습니다. 긴장의 연속으로 치닫던 막내 여동생의 굳은 표정은 차에서 내리며 환해졌습니다. 급한 과제를 막 끝낸 대학원생의 얼굴을 보는 듯했습니다.
길고양이가 기다리는 화본역이 가까워지자 발걸음이 점차 느려집니다. 단체 패키지여행처럼 계획대로 움직이는 촉박함도 없고 오랜만에 고즈넉한 분위기의 기차역을 마주하니 마음 한구석이 편안합니다. 첫 방문 기록을 새기던 막내 여동생은 사진을 찍기 바빴습니다. 구수한 시골 냄새가 난다며 홀린 듯 들어가더니 입장권을 끊고 미닫이문을 엽니다.
화본역 바로 뒤쪽 길고양이 보금자리 안에는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연신 귀엽다며 한동안 자리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벤치에 옆으로 드러눕더니 눈을 깜빡이며 눈인사를 건넵니다. 바람이 덜 부는 따스한 날이었으면 밖에서 배깔눕('배를 깔고 누워있다'의 줄임말 표현) 자세로 햇볕을 쬐는 길냥이를 어루만질 수 있었을 텐데 날이 추워서 그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길을 건너 계단을 따라 걸어간 급수탑에는 오래된 유적지의 그것처럼 누군가의 낙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우뚝 선 급수탑 외곽을 한 바퀴 돌다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이웃집 토토로 분위기 같다며 좋아했습니다. 창밖을 보던 소녀의 동상 뒤로 자리를 옮기더니 뭔가 생각난 듯 엉덩이를 찰싹 때립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골 소녀의 순수한 감성을 재현한 작품인데 막내 여동생 눈에는 동상의 뒷모습이 더 궁금했나 봅니다.
그렇게 화본역 주변을 거닐다 오후 2시가 됐습니다. 잠시 머문 사이 방문객이 확 늘자 어딘가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습니다. 막내 여동생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조용한 차 안에서 어딜 갈지 알아보다 '군위댐'이 떠올랐습니다. 구독 중인 자전거 유튜버가 알려준 명소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숨은 커피 맛집이 있으니 갈 기회가 되거든 둘러보라며 추천을 받았는데 계획에 없던 드라이브 여행으로 찾아가게 됐습니다.
화본역에서 군위댐까지는 대략 25분이 걸렸습니다. 고요한 마을을 지나 4차선 도로를 거쳐 도달한 네 번째 목적지는 카페 '댐댐'입니다. 면사무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간 카페 밖은 운치가 제법 좋았습니다. 푸른빛으로 넘실대는 군위댐은 물멍으로 잡념을 지우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잠시 바람을 쐬고 커피를 주문합니다. 한 잔은 아이스, 다른 잔은 핫 아메리카노였습니다. 가격은 둘 다 5천5백 원입니다. 시그니처 메뉴 네 가지가 눈에 띄는 배경 안에 표시돼 있었지만 물보다 커피를 더 많이 마시는 제게 시그니처 메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몇 분을 기다려 받아온 커피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바디감이 가볍고 산미가 살짝 감돌며, 쓴맛이 적고 보리향이 느껴지는 커피였습니다. 강배전으로 깊고 무거운 맛, 쓴맛이 강한 대중 커피들보다 로스팅 강도가 덜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메리카노는 거기서 거기, 가성비 위주의 양 많은 커피를 즐기는 막내 여동생도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냈습니다. 약간 시큼해서 많이 마시기는 부담스럽다고 말하더군요. 다음에 들르거든 카페 라떼를 주문해 봐야겠습니다.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더니 오후 3시 반이 됐습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갈까 각을 재다가 한 군데를 더 가기로 했습니다. '화산산성 하늘전망대'입니다. 유튜브랑 인스타 속 광고 영상으로 새겨둔 목적지 중 하나인데 군위댐에서 엄청 가까워서 들렀다 가기로 했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제 결정을 따라 "그래, 가 보자!"라며 운전대를 잡았는데 험한 경사로에 오르자 얼굴이 굳기 시작했습니다. 중앙선 없이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는 한티휴게소로 향하던 고갯길보다 난도가 높았습니다. 몇 번의 굽이진 길을 지나 그늘진 도로에 들어서자 양쪽에 빙판이 되다 만 눈들이 보입니다. 입 벌린 표정으로 운전대를 돌리는 옆모습만으로도 온몸에 잔뜩 긴장이 들어갔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스팔트 포장 구간을 지나 거친 시멘트 길이 나오자 막내 여동생 입에서 "오빠, 나 무서워..."라는 말이 나옵니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은 주변에 꽂힌 이정표와 운전자의 직감적 판단이 더 중요해서 초보 운전자에게 결코 쉽지 않은 길입니다. 척박한 산지를 개척하며 살아가는 이곳 주민의 삶은 몸으로 직접 겪지 않아도 알만 했습니다. 풍력 발전기 날개를 휘휘 돌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고 장갑을 껴도 아이스 팩을 손에 쥔 듯 한기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배고픔에 막내 여동생이 한계를 느끼자 중턱에 마련된 임시 주차장에서 운전자 교체를 제안했습니다. 오랜 운전으로 지친 표정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풍차가 서 있는 전망대 근처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내렸더니 강한 바람이 온몸을 꽁꽁 얼립니다. 바들바들 떨면서 걸어 올라간 풍차 뒤에는 방금 전 머문 군위댐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사방이 탁 트여서 눈을 멀리 두기 좋았는데 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어서 10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꽁꽁 언 손으로 사진 몇 장을 담고 차로 돌아간 시각은 오후 4시 반이었습니다. 고지대에 자리 잡은 화산마을의 낮은 다른 곳보다 짧고 기온이 금방 떨어져서 어둠이 깔리기 전 대구에 넘어가야 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마지막 목적지는 '대구스타디움'입니다. 막내 여동생과 자주 운전 연수를 하던 곳인데 옆자리에 쉬면서 운전 연습할 체력을 조금이라도 채우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운전대는 제가 잡았습니다.
1시간 15분간 국도와 고속도로를 거쳐 기록된 평균 연비는 17km/l에 이릅니다. 7단 DCT(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잘 달래며 움직이면 교통량이 늘어도 연비를 보전하기 쉽습니다. 순간 연비 막대 최댓값이 왜 18km/l에서 끊겨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엔진 형식과 변속기 구성에 따른 변별력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리라 봅니다.
도착 후 익숙한 학습 코스를 따라 1시간 정도 운전 연수를 진행했습니다. 대구스타디움 인근 도로를 빙 돌다가 수성의료산업지구를 다니며 교차로 통행법을 익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는 어떻게 잘 마쳤는데 좁은 공간을 비집고 주차하는 과정에는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주간에는 주위가 환해서 공간을 인지하기 좋은데 야간에는 조명에 의지해 거리감을 어림해야 하니 초보 운전자에게 쉽지 않은 순간이기도 합니다.
테일게이트의 '초보운전' 자석 스티커는 그대로 붙여둘 생각입니다. 막내 여동생은 타지 근무 관계로 며칠에 한 번 운전대를 잡는 상황이라 차량 관리는 온전히 제 몫이 됐습니다. 설 연휴 장거리 주행을 대비해 타이어 공기압도 살피고 또 한 번 셀프 세차를 앞두게 됐지만 이 같은 노력은 곧 신차 상태 유지에 도움이 되니까 오히려 좋다고 봅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들겠으나 여러분이 읽을 제 콘텐츠로 누군가 도움을 받게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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