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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그랜저 하이브리드 1.6T 시승 후기 본문
오늘(12일) 현대 드라이빙라운지 대구 서부에 다녀왔습니다. 그랜저 하이브리드를 시승하기로 한 날입니다. 오전 10시쯤 3층에서 차 키를 받고 R1층에 내려오니 문 앞에 연남색 그랜저가 보였습니다. 갓 세차를 마치고 나온 듯 안팎이 깨끗했습니다.
시승차 외장 색상은 트랜스미션 블루 펄, 실내는 브라운 베이지 투톤으로 꾸며졌습니다. 트림 등급은 캘리그래피, 선택 사양으로 뒷좌석 전동식 도어 커튼, 하이테크 패키지, 파노라마 선루프,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 II가 채워졌습니다. 가격은 5,813만 원입니다.
앞모습은 지난달 전시장에서 본 가솔린 3.5 프리미엄 등급의 그랜저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릴을 조금 더 어둡게 세련된 장식으로 다듬고 번호판 밑에 붙는 센서를 보기 좋게 잘 숨겼습니다. 가운데서 좌우로 뻗으며 운전자를 반기는 다이내믹 웰컴 라이트, 순차 점등하는 LED 방향지시등은 캘리그래피를 상징하는 또 다른 매력점으로 불립니다.
휠과 타이어는 20인치 크기로 꽂혔습니다. 캘리그래피 기본 사양으로 19인치 휠 타이어가 꽂히는데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붙으면 카탈로그 대표 이미지대로 한 치수 더 큰 바퀴가 들어갑니다. 타이어는 피렐리의 P 제로 올시즌, 규격은 245/40 R20, 트레드웨어는 500입니다. 사이드월에 표시된 PNCS(피렐리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는 타이어 안에 흡음재로 폴리우레탄 스펀지를 붙여서 타이어 소음을 줄였다는 의미입니다.
옆모습과 뒷모습은 전시장 안에서 볼 때보다 거대해 보였습니다. 일직선으로 똑바로 쭉 뻗은 캐릭터라인이 활처럼 완만히 휜 트렁크 리드와 만나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뒷유리 위쪽 한가운데에 켜진 LED 보조 제동등, 수평형 LED 리어 램프, 번호판 밑으로 정렬된 리플렉터(반사판)는 종모양으로 평행을 이루며 안정감을 더합니다. 차 전체를 휘감은 검은 띠 안에 주차 센서를 넣어서 눈에 띄지 않게 한 점도 보기 좋습니다.
운전석 문을 열어봅니다. 도어 트림 위쪽과 아래는 브라운(암갈색), 암레스트(팔걸이)가 붙는 가운데는 베이지를 칠했습니다. 문 손잡이가 붙는 일부 패널은 블랙 하이그로시 처리를 해놨더군요. 밖에서 본 검은 띠를 실내로 계속 보여 주기 위한 의도로 보였습니다. 실내를 블랙과 베이지 투톤으로 가득 채워서 밝고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더 뉴 그랜저의 르블랑 트림이랑 분위기가 조금 다릅니다. 따스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카스텔라 패턴의 색 조합이었습니다.
운전석 시트에 앉아봤습니다. 가죽 표면은 보편적인 천연 가죽 시트 대비 쫀득하고 좌판의 쿠션감은 다소 팽팽했습니다. 옆구리를 받치는 좌우 서포트는 살짝만 올라와서 품이 전반적으로 여유롭습니다. 시트 위치는 가솔린 3.5 프리미엄 대비 반주먹 정도 껑충 올라간 느낌입니다. 머리카락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하지만 헤드룸(머리 공간)은 K8 HEV(하이브리드)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나파가죽으로 감싼 운전대는 시트 표면처럼 대체로 쫀득했습니다. 안감은 베이지, 겉감은 브라운으로 여몄는데 일부 마감은 고르지 못했습니다. 운전대에서 10시 방향, 6~7시 방향의 림 바깥쪽 봉제선이 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텔레스코픽으로 돌출되는 운전대 거리는 짧아서 단시간에 운전 자세를 잡기 애매합니다. 시트 및 운전대 이동 시 모터 작동음은 보통 현대차에서 듣던 소리보다 부드러운데 반응은 조금 더딥니다.
처음에 앉았을 때 운전 시야는 좋다고 보기 힘듭니다. 사이드미러를 보면 좌우로 떡 벌어진 몸집과 캐릭터라인으로 강조된 볼륨감이 두드러져서 볼록거울을 평소보다 안쪽으로 당겨 맞추게 됩니다. 전방 시야는 더 뉴 그랜저 HEV보다 부족합니다. 앞머리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길이감은 금방 잡히는데 전방 좌우에 비해 상하가 덜 보여서 적응이 필요합니다. 더 뉴 그랜저 HEV의 탁 트인 시야에 익숙했던 운전자라면 조금 답답할지도 모릅니다.
운전대 뒤에 배치된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LCD 계기판) 속 내용은 비교적 잘 보이는데요. 변속 레버가 운전대 우측 안쪽에 달린 점을 고려해 기어 단수 표시를 우측 밑으로 빼둔 모양이었습니다. 가운데 왼쪽 위에 표시되던 기어 단수가 우측 밑으로 가 있으니까 주행 중 눈에 잘 안 띄더군요. 계기판 속 아이콘과 대칭을 맞추기 위함이었겠지만 좋은 위치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도톰한 혼 커버 위쪽에 가려지거든요. 대신 폰트랑 그래픽 구성은 최신 버전으로 보였습니다.
가운데 12.3인치 화면은 전기차 버전인 아이오닉 5, 기아 EV6의 인포테인먼트보다 세련된 느낌이었습니다. 타일(tile)식 테마를 갖춘 태블릿의 화면 구성을 잘 벤치마킹한 듯했습니다. 이중 화면 구성도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게 디자인한 점도 보기 좋았습니다. 기본적인 길 안내 화면 구성까지 화면을 잘 채워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적지 검색 중 지연이 생기는 점을 빼면 괜찮습니다.
에어 벤트 밑에 붙는 10.25인치 풀터치 공조 컨트롤러는 직관성이 좀 떨어져 보였습니다. 기아의 인포테인먼트 공조 전환 기능처럼 노멀 테마와 커스텀 테마를 오가며 각종 상황에 대응된 공조 모드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동선 정리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화면 왼쪽은 오토 홀드를 비롯한 주행 관련, 오른쪽은 풍향 설정과 관계된 아이콘들이 나옵니다. 작은 LCD 창과 구역 별로 버튼을 잘 나눈 프리미엄 트림의 컨트롤러 구성이 더 알기 쉽더군요. 이와 같은 아쉬운 점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보완됐으면 좋겠습니다.
뒷좌석으로 넘어갑니다. 운전석 뒤 발취(발 공간)는 신발코도 잘 안 들어갈 만큼 비좁습니다. 가솔린 3.5 버전의 그랜저는 발등이 들어갑니다. 헤드룸은 손날 두 개, 레그룸(무릎 공간)은 주먹 두 개 반에서 세 개 사이로 비슷하며 센터 터널은 전자식 사륜구동 기능을 채웠던 전시차보다 낮았습니다. 승용 하이브리드에서는 구조상 사륜구동 들어갈 자리가 없고 뒷좌석 통풍, 리클라이닝이 포함된 VIP 패키지도 못 넣습니다. VIP 패키지에서 파편화된 뒷좌석 전동식 도어 커튼은 채울 수 있지만요. 뒷좌석 헤드레스트(머리 받침)에 매달린 푹신한 목 베개에 기대니 포근한 느낌이 들기는 합니다.
알겠으니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 시동을 겁니다. 공조 기능을 끈 일반 상태에서는 전기차처럼 왼쪽 아래에 시동 알림음과 함께 '레디(Ready)'랑 'EV' 문구가 나란히 들어옵니다. 공조 기능을 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엔진이 돌기 시작합니다. 1.6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 리튬 이온 배터리를 공유하는 다른 차보다 진동 소음은 덜 느껴집니다. 엔진을 멀리 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신경을 썼더군요. 체감상 K8 HEV보다 조용합니다.
주행 모드는 에코, 스포츠, 마이 드라이브로 나뉩니다. 마이 드라이브 모드에서는 운전대 조향(스티어링) 특성과 서스펜션 반응을 취향대로 바꿀 수 있지만 기본 주행 특성을 알기 위해 '에코'로 맞췄습니다. 시승 시간이 30분 더 길었다면 스포츠 모드로 한 바퀴 더 돌면서 주행감과 승차감을 파악하기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K8 HEV를 30분 몰 적에도 에코 위주로 달렸으니까 그랜저 HEV도 같은 설정으로 다니기로 합니다.
차를 이끌고 맨 먼저 지난 곳은 스쿨존 인근 골목이었습니다. 연결 도로와 만날 때까지 과속방지턱 네 개 이상 넘었는데 충격 완화를 위한 수직 운동 범위가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앞바퀴는 부드럽게 받아넘기면서 잠시 출렁대다 뒷바퀴가 다음 방지턱에 닿으면 적당히 쳐내는 식으로 밀어내며 반동을 추스릅니다. K8 HEV에서 운동 범위를 억제하던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다른 감각입니다. 20인치 휠에 낮은 편평비에서 기대되는 단단함, 팽팽한 시트에서 예상되던 탄탄함과 거리가 있었죠.
표면이 약간 울퉁불퉁한 도로를 40~50km/h로 잠시 지나 봅니다. 보통의 SUV는 너울거리며 허둥대기 바쁜데요. 그랜저 HEV로 달리니까 앞쪽이 잠시 뒤뚱거리다 맙니다. 노면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여서 수습하려는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너울짐을 부드럽게 걸러내는 G80 2.5T의 셋업과는 차이가 분명합니다. 둘 다 프리뷰 기능이 묶인 전자제어 서스펜션이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구동방식과 파워트레인 구성에서 드러나는 차이까지 극복할 수는 없으니까요.
50~60km/h 이내의 도심 주행에서는 적당히 부드럽습니다. 노면 굴곡에 따라 차체를 살랑살랑 흔드는 정도로 요동을 일으킵니다. K8 HEV는 그보다 운동 범위가 좁고 탄탄하고요. 더 뉴 그랜저 HEV랑 비교하기엔 좀 단단합니다. 주행 소음과 타이어 소음 억제력은 제법 괜찮습니다. 보통 프레임리스 타입의 세단은 풍절음을 일부 허용하거나 투과음을 내버려 두는데 그랜저 HEV에서는 바로 옆에서 차가 지나가도 보편적인 대형 세단만큼 조용했습니다.
대신에 정지 후 출발, 속도를 줄이며 정차하는 과정의 움직임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걸려 있던 오토 홀드를 푸는 느낌은 매끄러운데 처음 속도가 붙던 순간은 앞쪽이 살짝 들리면서 자세를 바로 잡습니다. 속도를 일정하게 줄여서 멈출 때는 멈추기 전부터 앞으로 살짝 기울다가 정차 직전에 자세를 고치며 오토 홀드가 걸립니다. E-모션 모드 중 승차감을 부드럽게 조율하는 E-컴포트 드라이브가 적극 반응한 결과였을까요?
램프 구간 통과 직후 정차했다가 간선도로에 오르며 80km/h로 속도를 올려 봅니다. 자고 있던 엔진이 켜지면서 가속을 돕는데 회전 질감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여유롭게 반응하기보다 4기통 터보 엔진의 쥐어짜 내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거든요. 전기 모터도 곁에서 힘을 보태지만 시원한 가속감은 못 받습니다. 공차 중량 1.7톤을 견디며 20인치 휠을 여유롭게 굴리기엔 다소 버거운 셋업입니다. 속도에 비례하며 점차 탄탄해지는 승차감에서 만족해야 할 겁니다.
3km 이내의 간선도로 주행을 마치고 출발지로 되돌아갑니다. 죽전동을 가리키는 램프 구간을 빙 돌아서 달구벌대로에 사뿐히 끼어듭니다. 죽전네거리부터 경사율 3% 안팎의 오르막차로가 짧게 나오길래 가속 페달을 밟았더니 엔진이 가르랑거리며 차를 밀어 올립니다. 전기 모터 단독으로는 힘듭니다. 운전대 열선 2단에 시트 열선 2단, 공조기까지 섭씨 22도로 맞춰서 돌리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게 28분간 11km를 다녔더니 평균 연비는 15.1km/l로 나왔습니다. 딱히 느긋하게 다닌 것도 아닌데 생각보다는 연비가 준수합니다. 공조 장치 끄고 맘먹고 깻잎 엑셀링하면 얼마나 나올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일전에 강병휘 님은 그랜저 1.6T HEV로 10km를 움직인 평균 연비 기록이 34km/l였다고 하죠? K8 HEV보다 소폭 무겁고 종감속비를 수정해서 연비가 덜 나온 게 아닌가 추정하시더군요.
주행을 마친 뒤 시험 삼아 켜 본 그랜저 HEV의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는 뭔가 달랐습니다. 팰리세이드 가솔린 3.8, 투싼 1.6T HEV처럼 움직이는 속도가 빠르지 않더군요. 앞으로 차를 빼다 멈췄을 때의 속도 제어가 달랐습니다. 제동 시 경박함이 느껴지던 뒤뚱거림이 사라졌습니다. 스마트폰이든 TV든 가장 늦게 나온 전자제품이 가장 좋다고 했는데 그랜저 HEV도 그런 모양입니다. 궁금하신 분은 그랜저 시승 직후 차 키로 차 빼고 차 집어넣기 해보시면 됩니다.
그랜저 1.6T HEV를 시승했더니 오히려 가솔린 3.5 모델이 궁금해집니다. 플래그십 대형 세단의 본격 매력은 안정되고 풍부한 출력과 토크를 갖춘 엔진에서 시작되니까요. 1.6 가솔린 터보 엔진에 구동 모터, 배터리를 꽉 차게 심어 놓은 그랜저 HEV는 대형 세단의 근본을 논하는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모델입니다. 순수 혈통의 전기차는 아니지만 태세 전환이 빠른 친환경차의 강점이 잘 융합된 모델입니다. 기름 덜 먹는 대형 세단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게 그랜저의 변신은 항상 옳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그랜저는 역시 하이브리드를 만났을 때라는 사실을요.
역사와 전통을 함께하는 그랜저의 해리티지 감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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