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설탕 한 숟갈
1년 9개월 된 그린카 EV6, 너 택시였니? 본문
지난 금요일(9일) 그린카로 EV6를 빌렸습니다. 장거리 운행을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차에 들어간 선택 사양은 풍부했습니다. 인조가죽 마감된 전동 시트에 통풍, 1열 릴렉션 컴포트, 스마트폰 무선 충전, 서라운드 뷰 모니터까지 잘 채웠더군요. 카셰어링으로 돌리는 웬만한 내연기관차보다 편의 장비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2021년 9월식이니까 EV6 중에서는 거의 초기 생산분에 속합니다.
계기판에 적힌 누적주행거리는 꽤 놀라웠습니다. 1년 9개월 된 EV6의 주행거리가 무려 10만 2,389km였거든요. 보통의 가솔린차 기준으로 7, 8년 치 기록에 달합니다. 단순 계산으로 1년에 5만 8,500km쯤이니까 주행거리는 택시(1년에 6~8만km)에 버금갑니다. 이 EV6는 어떤 전기차의 삶을 살아간 걸까요?
타이어는 주기적으로 잘 관리되는 듯했습니다. 사이드월을 둘러보니 생산주기가 22년 29주 차(7월 18일~24일)로 대략 1년 남짓된 제품이더군요. 트레드 마모 상태도 괜찮았습니다. 바퀴에는 19인치 공력 휠, 넥센의 로디안 GTX가 꽂혀 있었습니다. 규격은 235/55 R19입니다. SUV 전용 타이어로 알려진 제품인데 예전 내연기관 SUV로 경험했던 같은 제품보다 말랑하고 조용했습니다. 미세 패턴을 보아하니 흡음재가 들어간 EV6 전용 전기차 타이어가 아녔을까 합니다.
실내는 대체로 양호했습니다. 연식대비 길이 많이 들어서인지 운전대 림과 앞좌석 표면이 반질반질합니다. 허벅지를 받치는 좌판 양쪽은 구겨진 흔적이 잘 보이는데 좌판과 등받이의 쿠션감은 그런대로 푹신했습니다. 평소 앉을 일이 잘 없는 2열 시트가 멀쩡하더군요.
운전석 주변 주요 기능의 작동 상태는 제법 괜찮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손 터치를 거쳤을 텐데 스크래치나 오염된 흔적이 잘 없더군요. 곡선으로 완만히 이어진 운전석 LCD 계기판과 12.3인치 터치 스크린, 터치식 공조 패널, 전원(시동) 버튼 주변 하이그로시 장식들이 비교적 멀끔했습니다. 누군가의 지문과 터치 흔적들은 미리 가져간 물티슈와 렌즈 와이퍼로 쓱 밀어내면 그만입니다.
주행질감은 대체로 말랑했습니다. 기아 시승 센터에서 경험했던 풀옵션 EV6는 천장에 머리가 닿았는데 선루프 없는 EV6는 오히려 공간이 반주먹 남았습니다. 아이오닉 5보다 덜 흔들리는데 20인치 콘티넨탈 타이어를 끼던 EV6보다 부드러웠습니다. 롤(좌우로 비틀리는 정도)과 피칭(앞뒤로 기우는 정도)은 조금씩 허용하며 패인 구간을 밟으면 위아래로 살짝 덜렁대는 정도였습니다. 국도와 고속도로를 통틀어 200km 다녀온 주행질감은 컴포트 성향에 가까웠습니다.
주행 중 느꼈던 특이점이라면 도어트림과 칼럼축 주변에서 들리던 잡소리였습니다. 30~40km/h로 주행할 때 삐걱대거나 덜덜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린이보호구역에 접어들며 과속방지턱에 다가설 때 극에 달합니다. 60km/h 이상으로 주행하며 차로 유지 보조가 켜지면 어딘가 실리카겔처럼 작은 베어링들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직선 및 굽은 길 주행 시 방향 유자가 잘 되는 편인데 간헐적으로 들리는 이 소리들이 거슬렸습니다.
승차감은 전반적으로 아이오닉 5랑 비슷하거나 더 조용했습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오가는 구간, 오래되고 쩍쩍 갈리진 구간에서 들리는 타이어 소음의 편차가 적게 느껴졌습니다. 저배기량 내연기관차를 잠시 탔다가 다시 EV6로 넘어가면 역체감이 분명해집니다. 인조가죽 시트 치고 든든하고 푹신해서 어깨랑 허리, 허벅지가 편했는데 목덜미가 다소 아립니다. 헤드레스트가 앞으로 다소 돌출된 형태라 머리를 편히 기대기 힘들었습니다.
10만km 넘게 달린 EV6의 배터리 상태는 괜찮았을까요? 회생제동은 오토(전방 감지 시 부드러운 감속으로 설정)로 두고 공조기는 섭씨 20도, 통풍 시트 2단으로 켜둔 채 움직였습니다. 동대구역에서 청도 새마을휴게소(부산방향)까지 39.3km를 달린 전비는 7.4km/kWh였습니다. 배터리 잔량은 47%에서 39%로 8% 빠졌죠.
휴게소에 머물 동안 100kW 출력의 급속 충전기(대영채비 급속)를 물렸습니다. 39%에서 86%까지 27분 걸리더군요. 770V 전후의 고전압에 120A 전류로 입력되니까 충전이 꽤 빨랐습니다. 충전기에 물린 직후엔 86kW, 70%를 넘어서며 93kW를 향하다 84~85%에 다다르면 전류가 급강하하며 10kW 안팎으로 뚝 떨어집니다. 애초에 충전소로 목적지를 잡은 게 아녔는데 배터리 컨디셔닝 모드로 최적화됐나 싶을 만큼 충전 손실이 적었습니다.
청도 새마을휴게소에서 김해 롯데아울렛까지 54.6km를 달린 전비는 7.8km/kWh로 나왔습니다. 삼랑진 IC까지 짧게 달리고 김해랑 창원을 연결하는 58번 국도로 안내하더군요. 입구 영업소인 대구 TG(요금소)로 들어가서 삼랑진 IC에서 내리니, 하이패스로 결제된 요금은 1,900원이었습니다. 통행료 50% 할인이 적용되니 달달합니다. 1km 단위 주행요금도 80원씩이라서 내연기관차 대비 주행료 부담이 덜합니다. 배터리 잔량은 85%에서 78%로 7% 빠졌습니다.
일정을 보내고 김해에서 청도 새마을휴게소(대구방향)로 향해 54.3km를 내달린 전비는 7km/kWh였습니다(배터리 잔량은 68%로 감소). 처음 10km까지 통행량이 늘어서 좀 밀렸는데 4.7~5.4km/kWh 정도는 나오더군요. 휴게소 내 전기차 충전소는 단 1기만 설치돼 있었습니다. 아이오닉 5가 충전을 끝내고 자리를 비우자 5분 뒤 포터 일렉트릭이 곧장 와서 충전을 시작하더군요. 바로 앞에는 EV6 GT-라인도 대기 중인 모양이었습니다.
차에 타자 커피 생각이 확 들어서 경산 임당 폴바셋으로 목적지를 틀었습니다. 휴게소에서 7km쯤 떨어진 청도 IC에 내려서 25번 국도로 이동하면 금방입니다. 지불한 고속도로 통행료는 50% 할인된 1,250원입니다. 36분간 32.1km를 달린 전비는 7.8km/kWh였습니다. 배터리 잔량은 68%에서 62%로 6% 빠졌습니다.
오후 5시 무렵 도착한 폴바셋 주차장엔 차들이 한가득했습니다. 아이스 카페 라떼를 주문하고 몇 입 홀짝이니 피로가 슬 풀립니다. 해가 누렇게 익어가는 5시 반, 밖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직선거리로 180m)에 200kW 급속 충전 맛집이 있었거든요. '현대자동차 경산지점'이었습니다. 전시장 바로 뒤 주차장 외곽에 충전소 2기가 설치돼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충전소를 검색하면 이렇게 충전이 가능한 상태인지 아이콘으로 나옵니다. 녹색으로 떠 있어서 부리나케 찾아갔지만 충전기를 꽂지 못했습니다.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택시 기사님 두 분이서 이제 막 배터리를 채우는 중이었습니다. 한 발 늦었구나 싶은 탄식도 잠시, 임당역 환승 주차장에 설치된 100kW 급속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평일에는 주차 요금을 안 받는 모양인지 차단봉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이중 주차된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더니 가장 안쪽 구석에 충전기가 보입니다. 좌우 폭이 좁아서 전진으로는 안 되고 후진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습니다. 우측에 탑 뷰(위에서 내려다본 시점)를 같이 띄우는 서라운드 뷰 모니터가 작동하며 회전 반경을 알려주니 속이 편안합니다.
시그넷 급속 충전기에 EV6를 물려봅니다. 출력은 대영채비랑 똑같은 100kW급인데 전압이 낮았습니다. 전류가 133A라도 전압이 다소 낮아서 입력 전력은 잘해야 58kW 정도였습니다. 운전석 릴렉션 컴포트로 좌석을 편히 눕혀 라디오를 듣고 28분을 세웠더니 배터리가 90%까지 채워졌습니다. 유료로 운영 중인 맞은편 공영 주차장은 차 댈 곳이 여유로워서 충전 중인 전기차들이 가끔 보이는데 환승 주차장처럼 들어가기 힘든 곳은 잘 이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전 직후 EV6에서 거슬렸던 점은 계기판 우측에 뜨는 안내 메시지였습니다. 기계적 이상은 안 보이는데 충전 완료 후 "전기차 시스템을 점검하세요."라는 메시지가 거듭됩니다. 전원을 껐다 다시 켜면 사라지는데 어떤 이유로 이러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해가 정면으로 비치는 정체 구간에서는 센서 오류 증상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데 거리 경고음을 울리며 서라운드 뷰 모니터 화면을 띄우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충돌 위험 경고 후 제동을 걸어 왼쪽으로 운전대를 감아버리는 현상도 있었습니다. 물리적 충격이 조금씩 누적되며 센서 위치가 틀어져 생긴 오류인지 정비 점검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임당역 환승 주차장에서 동대구역 근처 카셰어링 존까지 15.9km를 이동한 전비는 6km/kWh였습니다. 금요일 저녁 러시아워 시간대라서 5km/kWh 이하로 떨어질 줄 알았는데 중간쯤 지나자 교통 흐름이 풀렸습니다. 배터리 잔량은 90%에서 87%로 달랑 3%만 빠졌더군요. 누적 주행거리는 10만 2,389km에서 10만 2,589km로 200km 늘었습니다.
EV6 반납 후 주행요금은 1만 6천 원이 결제됐습니다. 장거리 주행 보상으로 6천 포인트(유효기간 3개월), 설문조사로 2천 포인트(유효기간 1주일)씩 넣어주더군요. 11시간 대여 보험료 2만 3,450원, 3천 원 안팎인 고속도로 통행료를 합쳐도 4만 3천 원이 조금 안 됩니다.
주행거리요금 특가로 115km를 다녔던 QM6 쏘카(약 3만 8천 원, 170원/km, 5시간 대여)랑 견줘도 금액 차가 크지 않습니다. 확실히 장거리엔 내연기관차보다 전기차가 더 유리합니다. 대신 전기차의 시간당 대여료가 높아서 비용 대비 편익을 잘 따져야 할 겁니다. 100km 이상 200km 이하라면 하이브리드차로 다니기에 더 좋습니다. 대여료 쿠폰을 잘 쓰면 알뜰한 카라이프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내 차로 다녔을 때보다 더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요. 카셰어링으로 장거리 운행을 앞두고 있다면 EV6와 같은 전기차로 운행과 충전 계획을 잘 짜보길 바랍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
2023.10.15 - [이 차 저 차] - 더 뉴 기아 레이 그린카 심야 출퇴근 이용 후기
2023.10.02 - [이 차 저 차] - 쏘카·그린카 반납 전 세차, 하면 더 좋은 이유?
2023.09.23 - [이 차 저 차] - 더 뉴 모닝 쏘카 시승 후기
2023.08.09 - [이 차 저 차] - 캐스퍼, 한여름 내관지 다녀온 후기
2023.07.19 - [이 차 저 차] - 호우로 멈춘 코레일 열차 운행, 그린카를 빌렸다
2023.07.10 - [이 차 저 차] - 트랙스 크로스오버 그린카 시승 후기
2023.06.19 - [이 차 저 차] - 볼트 EUV 레드라인 그린카 시승 후기
'이 차 저 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V9 어스 사륜 6인승 시승 후기 (2) | 2023.06.30 |
---|---|
볼트 EUV 레드라인 그린카 시승 후기 (3) | 2023.06.19 |
뉴 푸조 408, 안팎 살펴본 후기 (3) | 2023.06.11 |
더 뉴 셀토스 쏘카 시승 후기 (4) | 2023.06.07 |
팰리세이드에 르블랑? 사실상 끝물일지도 (2) | 2023.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