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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EV9 안팎 디자인, 숨은 의미는? 본문
지난 15일 기아 EV9의 안팎 디자인이 공개됐습니다. 대형 전기 SUV로 선보인 콘셉트 EV9의 양산형 모델입니다. EV9은 역동적 맵시를 지향한 EV6랑 결이 다릅니다. 큰 바위처럼 단단하면서 웅장한 겉모습, 아늑하면서 잘 정돈된 실내는 전통적 개념의 대형 SUV와도 다릅니다. 분리된 2열 좌석은 옆으로(하차 방향으로 90도) 비틀거나 3열 좌석을 향해 180도 뒤집기도 됩니다. 스타리아 라운지의 스위블링 시트를 굳이 EV9에 반영한 이유가 뭘까요? 29일 EV9의 모든 내용이 공개되기 전에 몇 가지 숨은 의미를 짚어봤습니다.
혹시 EV9 티저 이미지를 기억하시나요? 굵직한 'ㄴ'자형 주간전조등 곁에서 각얼음처럼 빛나던 프로젝션 LED 헤드램프, 안쪽으로 파고들며 비추던 조명의 입체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온전히 드러난 EV9 얼굴은 낮에 보면 그냥 넓적한 호랑이 얼굴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은 조명 기술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모비스가 개발한 라이팅 그릴의 확장판으로 '렌티큘러 그릴 라이팅(Lenticular Grille Lighting)' 기술이 적용됐거든요.
렌티큘러 방식은 옛 과자 봉지에 하나씩 들어있던 '홀로그램 따조'랑 비슷합니다. 따조를 관찰하는 시점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보이던 3D 구현 방식 중 하나입니다. 반원통형 렌즈를 쭉 깔아서 왼쪽과 오른쪽 눈에 보이는 이미지 위치를 교차시키면 2차원 평면 이미지가 입체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좌우 방향으로는 입체감이 잘 느껴지지만 위아래 방향으로는 시야각이 제한돼 입체감이 덜 느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렌티큘러 렌즈를 비스듬히 배열하면 시야각 제한과 특정 시점에서 픽셀 경계면이 두드러져 줄무늬가 보이는 무아레(moire) 현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는데 이 부분까지 고려했을지 궁금해집니다.
EV9에서는 부르기 쉽게 '디지털 패턴 라이팅 그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조명이 꺼진 평소에는 차체의 외장 색상(바디 컬러)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스마트키로 문 잠금을 풀면 다이내믹 웰컴 라이트가 작동하며 그릴 조명이 켜지는데요. K8처럼 잠시 반짝거리다 마는 단순한 조명이 아닙니다. 백 커버 위에 PCB 층(레이어), LED, 반사판, 렌즈 몇 층(내장, 렌티큘러, 외장)을 덮어서 만든 더 화려한 조명인 만큼, 각종 패턴으로 EV9의 히든 그릴을 띄워줄 걸로 기대됩니다.
EV9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요? 콘셉트 EV9의 경우 전장 4,930mm, 전폭 2,055mm, 전고 1,790mm, 휠베이스 3,100mm였습니다. 양산형으로 대응된 EV9은 전장 5,010mm, 전폭 1,980mm, 전고 1,750mm, 휠베이스 3,100mm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공유하는 아이오닉 5 대비 휠베이스는 100mm 더 길고 내연기관을 품은 더 뉴 팰리세이드보다 15mm 길면서 5mm 더 넓은 셈이 됩니다. 북미 시장의 텔루라이드가 전장 5,000mm, 전폭 1,990mm, 전고 1,750mm이니까 EV9는 대략 이 정도 크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얼마 전 리비안 R1S(전장 5,040mm, 전폭 2,015mm, 전고 1,820mm)랑 나란히 주차된 모습을 참조했을 때 콘셉트 EV9처럼 확 크고 대단히 넓은 느낌은 아녔습니다.
EV9의 실내는 보통의 대형 SUV보다 더 넓고 간결해 보였습니다. 타원형 선반에 길쭉한 태블릿을 걸친 모양이었습니다. 왼쪽에 계기판, 가운데에 내비게이션을 띄우던 12.3인치 화면 사이에는 5인치 공조 화면을 채웠습니다. 뚝 떨어진 느낌을 주던 예전의 파노라마 디스플레이보다 좀 더 자연스럽습니다. 화살표나 공조 날개 그림을 건드리는 중간 과정이 사라지면서 필요한 기능을 고르는 동선도 짧아지고 공조 날개 밑에 붙던 버튼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주행 중 시선이 떨어질 일이 더 적으니까 운전하기가 좀 더 편안해지겠군요.
기아로서 가장 큰 변화는 플로팅 센터 콘솔에 있던 기어 레버가 운전대 우측 안쪽으로 이동한 점입니다. 시동 버튼도 보통 내연기관에서는 대시보드의 공조 날개 왼쪽, EV6는 플로팅 센터 콘솔 왼쪽에 붙는데요. EV9에서는 칼럼식 변속 레버 안쪽에 전원(시동) 버튼이 들어갑니다. 플로팅 센터 콘솔 왼쪽에 붙던 EV6의 전원 버튼보다 세련미가 돋보였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공간의 극대화'로 연결됩니다. 버튼 주변 장식으로 낭비되던 면적을 줄이면 그만큼 더 넓은 공간이 확보되고 미관상 좀 더 깔끔하고 단정하게 보입니다. 아이오닉 5가 유니버설 센터 콘솔로 한층 열린 1열 공간을 선보였던 것처럼 EV9도 여유롭고 풍부한 새로운 개념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좀 더 멀리 본다면 내년 중 출시가 예고된 아이오닉 7의 공간 개념(모빌리티 라운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한 '받침 모델'로 볼 수도 있습니다.
EV9의 2열은 벤치 시트와 가운데가 빈 독립형 시트(스위블링, 릴렉션 중 택일)로 나뉘는데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선택이 달라집니다. 90도 및 180도 회전 가능한 독립형 시트는 스타리아 라운지 9인승 모델을 참조한 변화로 보였습니다. 때로는 3열 승객과 마주 보며 대화하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180도) 카시트를 채우거나 거동 불편한 사람이 탑승하기 편해집니다(90도). 4인 승객의 편안한 휴식이 중요하면 릴렉션 시트를 고르면 됩니다.
이는 대형 SUV 대신 MPV의 다기능 시트를 받아들인 결과로 보였습니다. 기존의 대형 SUV는 3열 좌석 승객을 얼마나 쉽게 하차시킬지, 3열을 성인이 탈 만한 좌석으로 만들기에 집중했는데요. EV9에서는 "어떤 형태의 시트로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시트를 전부 눕혔을 때 반듯하게 평탄화된 모습은 차박 대응 상품인 스타리아 캠퍼가 떠오르더군요. 레이 1인승 밴, 카니발 아웃도어 같은 맞춤형 상품을 기획하던 노하우가 EV9에도 반영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3열 좌석을 테일게이트로 뒤돌리던 아이디어도 있었는데요. EV9에서는 아쉽게도 보지 못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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