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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기아 EV3, 살 만한 전기차인가? 본문
어제(23일) 기아 EV3가 공개됐습니다. EV6, EV9에 이어 한국에 셋째로 출시된 기아의 전기차 전용 모델입니다. 앞바퀴굴림(전륜구동) 기반의 크로스오버 형태로 만들어졌고 크기는 니로 EV와 셀토스 사이, 1회 충전으로 501km를 달립니다(롱 레인지 17인치 바퀴 기준). 공식 가격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보조금을 다 받는다 가정했을 때 기본형 배터리를 씌운 EV3 스탠다드 모델이 3천만 원 중후반에서 시작되겠다는 예측입니다. 사전 계약은 6월 초, 판매는 7월 중 진행됩니다.
안팎 디자인은 잘 나왔습니다. 작년 말 미리 보여준 콘셉트 EV3의 주요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바탕 모델인 EV9을 잘 압축시켜서 밖에서는 온순하고 매끈하며 강건한 구석이 있고 안에서는 세련되고 실용적이며 합리적인 가치가 느껴집니다. 가능한 모두를 비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게 만드는 실력을 과시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옆모습은 EV6, EV9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C-필러에서 리어 스포일러까지 굵직한 선을 그어서 지붕이 확실히 뜬 느낌을 주고 뒷좌석 문 손잡이는 문 옆에 흐르는 선의 흐름을 끊지 않도록 윈도 라인 몰딩(DLO)의 일부로 보이게 위로 숨겼습니다. 블랙 유광으로 덮인 손잡이에 손자국이 쉽게 묻겠지만 이와 같은 결정은 좋은 발상으로 보입니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드 스커트를 휘감은 클래딩은 중국 시장에 선보인 EV5보다 야물고 알찬 느낌이었습니다. 각을 이루는 선의 굵기와 길이, 각도 조절을 조금씩 달리해서 집어넣은 흔적이 엿보입니다. 겉으로 단순해 보여도 알고 보면 치밀한 계산이 들어간 노력의 결과물이 아녔을까 합니다. 차체 색상을 원톤 블랙으로 가린다면 오히려 어색해질 부위로 보입니다.
뒷모습은 허전함을 느끼던 EV9보다 마음에 들지도 모릅니다. LED 제동등이 매달린 리어 스포일러와 비스듬히 누운 뒷유리, 이를 떠받친 세 갈래 LED 램프와 유광 블랙 장식, 완만히 솟은 테일게이트 바탕, 뒷범퍼의 비례감이 잘 맞아떨어집니다. 밖으로 밀어서 어떻게든 넓게 보이려 애쓰던 니로 EV보다 눈을 두기도 좋습니다. 누군가는 범퍼에 붙지 않은 LED 방향지시등이라서 호감이라 말할지도 모릅니다.
EV3 프리뷰 전시로 드러난 19인치 바퀴는 보통의 내연기관차보다 폭이 좁고 두툼해 보였습니다. 타이어 규격이 215/50 R19입니다. 한국의 아이온 에보, 넥센의 엔페라 슈프림 S가 공급되는 걸로 봐서는 배터리 하중을 버틸 내구성, 견고한 주행감, 저소음, 전비에 더 유리하도록 좋은 품질을 갖춘 프리미엄 사계절 타이어가 채택된 걸로 보입니다.
배터리 충전구는 우측 앞바퀴 휀더에 설치됩니다. 뒷바퀴굴림 전기차가 아니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전기차 수요가 더 많고 보도와 차도 경계에 놓인 볼라드, 가로등형 충전기가 잘 깔린 유럽 시장 상황을 주목한 결과로 보입니다. 운전석 뒤, 아니면 동반자석 뒤에 있길 바라던 우리나라 운전자 입장에선 아쉽다 얘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충전구 안쪽 위에는 LED가 켜지고 DC 콤보로 급속 충전 시 아래 커버는 덜렁거리지 않게 여닫이 형태로 끼웠습니다. 800V가 아닌 400V 고전압 충전 시스템이라 10%에서 80% 충전까지 31분이 걸린다고 합니다(롱 레인지 모델 기준). 배터리 용량은 스탠다드 모델이 58.3kWh, 롱 레인지 모델이 81.4kWh며,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각각 350km, 501km입니다. 전력을 밖으로 꺼내 쓰는 V2L 기능은 실내, 실외에서 모두 됩니다.
배터리는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세운 인도네시아의 HLI그린파워 공장에서 공급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 재료로 들어가는 니켈, 코발트, 망간에 알루미늄을 섞어 화학적 불안정성을 줄인 NCMA 배터리로 불립니다. 자료상 4세대 배터리로 정의돼 있어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으나 과거 LG에너지솔루션이 토요타, GM에 납품하던 NCMA 배터리의 레시피와 비슷하겠습니다.
EV3를 단순히 대중적인 전기차로 보기에는 만듦새가 세심해 보였습니다. 차 바닥에 깔리는 배터리 팩 주위로 언더커버를 꼼꼼히 붙여서 바람 저항을 덜 받게 만들기도 하고 앞뒤로 주파수 감응형 쇼크 업소버, 앞바퀴 차축 양쪽에 하이드로 부싱을 달아서 조종 안정성과 승차감을 개선했습니다. 1열과 2열 유리를 두껍게 만들고 접합부를 강건화했다는 얘기는 한때 EV9에서 이슈로 제기된 유리 떨림 현상을 의식한 구조 개선 노력으로 풀이됩니다.
실내는 더 뉴 EV6보다 괜찮았습니다. 운전대 뒤에 나란히 세운 12.3인치 클러스터, 5인치 공조 패널,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화면, 가운데 배열된 물리 버튼의 배치는 EV9을 떠오르게 합니다. 배색과 소재를 다채롭게 정하고 도어 트림에 굴곡을 줘서 젊고 세련된 느낌을 잘 살렸습니다. 운전대는 일반 모델은 2-스포크, 역동적 멋을 낸 GT-라인은 3-스포크 형태로 꽂힙니다.
실용성이 가장 돋보였던 구성은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입니다. 돌출된 센터 콘솔을 앞으로 잡아당기면 작은 테이블이 삐죽 나옵니다. 차에서 잠깐 머무는 동안 식음료를 먹거나 태블릿, 혹은 노트북을 걸치기 좋은 용도로 보입니다. 오렌지 톤으로 칠한 앞쪽 바닥에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뒤쪽에는 컵홀더와 네모난 수납공간을 파 놨습니다. 팔을 기대는 암 레스트 밑에는 다른 수납함이 없습니다.
2열 문은 니로, 셀토스보다 넓게 열립니다. 1열 헤드레스트는 EV9처럼 망사형으로 팽팽하게 만들어 후석 승객의 시야 확보에 도움을 주도록 했고 시트 뒤쪽의 맵 포켓은 그물망이 아닌 포켓 형태로 다듬었습니다. 바닥은 편평하게, 좌판은 짧지 않게, 2열 등받이는 리클라이닝으로 잘 넘어가게 만들었습니다.
테일게이트 적재 용량은 460리터로 셀토스보다 약간 작은데 추가 수납공간이 깊습니다. 앞쪽에도 25리터 수준의 프렁크가 있고 나머지는 EV9처럼 플라스틱 커버로 잘 가려서 짜임새는 좋아 보입니다. 적재 공간 확보 시 뒤에서 2열을 젖히는 레버가 없고 등받이를 접으면 소폭 경사가 집니다. 전동 킥보드, 전기 자전거와 같은 모빌리티를 싣거나 러기지 스크린을 걸어서 뒤에 실린 짐이 승객석으로 넘어가지 않게 정도가 알맞겠습니다.
EV3는 국내 인증 절차가 끝난 뒤 7월에 판매가 시작됩니다. 가격을 잘 받아야 잘 팔릴 전기차인데 얼마에 출시될지 궁금해집니다. 6월 초 진행될 사전 계약 단계에서는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넉넉한 롱 레인지 모델로 계약이 쏠리겠으나 온갖 전기차를 경험하고 내연기관차로 돌아온 운전자에게는 스탠다드가 합리적인 선택지로 보입니다. 1회 충전에 350km라면 교외 지역으로 주말여행, 평일 출퇴근이 주 목적인 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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