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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한 숟갈
EV3? 캐스퍼 일렉트릭으로 구매 결정한 이유 본문
사전계약 첫날인 9일 캐스퍼 일렉트릭을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달 전 EV3를 전시장에서 둘러보고 만져봤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차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상품성은 EV6, EV9보다 좋았으나 누가 탈지, 무얼 할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가끔 3, 4인 가족이 움직일 수단이라면 EV3가 합리적이지만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화된' 시대에서 내게 더 가치 있는 차는 과연 무엇인가 물음을 던졌습니다.
답은 캐스퍼 일렉트릭으로 향했습니다. EV3에는 있고 캐스퍼 전기차에는 없는 'ccNc(커넥티드 카 내비게이션 콕피트)'의 혜택은 받지 않기로 했습니다.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10.25인치 화면 두 장이 매달리는 5세대 AVN(오디오 비디오 내비게이션) 시스템만으로도 제 요구는 충분했습니다. ccNc는 막내 여동생의 첫차로 인도한 더 뉴 투싼으로 경험 중이고 같은 전기 파워트레인을 두른 레이 EV의 5세대 AVN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레이 EV는 캐스퍼 일렉트릭의 미리 보기 수단으로 알아가기 좋았습니다. 박스형 경차로 넓은 공간을 내주던 레이 EV는 도심 안에서 타고 다닐 이동 수단으로 가치가 매우 높기는 합니다. 캐스퍼처럼 1열 등받이가 모두 접히는 특징은 좋은데 계절감을 잘 타는 LFP 배터리의 특성, 신선함이 없는 실내 구성은 제 마음을 흔들지 못했습니다. 80~90km/h가 넘어가면 A-필러와 연결된 지붕이 요란해집니다. 도심 안팎을 타고 다닐 제게 레이 EV는 좋은 교보재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레이 EV의 인공 심장을 공유하는 캐스퍼 일렉트릭은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카셰어링으로 즐기던 캐스퍼에서 몸집이 좀 커졌고 트림 등급은 기본화 품목이 많은 인스퍼레이션 딱 하나로 끝냈습니다. 선택 사양은 두 개만 달았습니다. 컨비니언스 플러스에 컴포트면 충분했습니다. 실외 V2L, 1열 시트를 몽땅 접는 고유의 기능성은 제게 꼭 필요했습니다. 20만 원으로 파편화된 하이패스는 글로브박스에 놔둘 RF형 하이패스 단말기로 대신할 계획입니다.
견적가는 3,307만 원입니다. 세제혜택, 구매 보조금이 둘 다 반영되지 않은 가격이라서 실 구매 가격은 보조금이 확정된 뒤에 나오겠습니다. 참고로 EV3는 스탠다드 에어 트림에 컨비니언스, 모니터링, 빌트인 캠 2,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추가한 구성이 4,535만 원(세제혜택 전 가격)이었습니다. 세제혜택, 보조금을 덧붙여도 3천만 원 중반인 EV3보다 2천만 원 초중반에 얹힐 캐스퍼 일렉트릭의 가격이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기존 아이오닉 5 재고 할인 영향으로 이탈한 EV3 예비 고객 관련 소식은 예상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특정 부품이 현장에 도착하지 않아서 빠른 출고가 되는 구성 위주로 EV3를 양산 중이라는 소식도 들립니다. 바퀴를 17인치에서 19인치로 올려달라는 권유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얘기로 보입니다. 계약을 받아온 기아 측에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고객들에게 잘 일러줘야 하는데 아무 설명 없이 사양을 바꿔달라고 하면 과연 어떤 고객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캐스퍼 일렉트릭은 해당 상황을 대비해 지금의 롱 레인지 버전(인스퍼레이션 트림, 49kWh)을 사전계약 첫 모델로 정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1회 충전 거리를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전기차 시장의 반응, 부품 수급 상황에 따른 유연한 현장 대응, 예비 고객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상품 제시를 위해 내린 결정으로 풀이됩니다. 배터리가 덜 들어가는 스탠다드 버전(프리미엄 트림, 42kWh), 거친 길을 잘 달리게 만든 디자인 강화 모델 캐스퍼 크로스는 나중에 출시됩니다.
한 뿌리 트림에서 뻗어 나온 선택 사양은 고민의 시간을 줄입니다. 특정 패키지를 골라야 추가되는 묶음 사양도 거의 없습니다. 온전히 나답게 만드는 캐스퍼 일렉트릭에 필요한 것만 쏙 집어서 견적을 내면 그만입니다. 아홉 가지 색 중에서 확실히 귀엽고 감각적인 색깔은 버터 크림 옐로우 펄이 맞는데 자연광 밑에서 어떻게 비칠까 궁금해집니다. 저야 캐스퍼 고객들의 선택에서 살아남은 언블리치드 아이보리로 택했습니다. 발랄한 젊음보다 안팎이 똑같은 담백함이 더 좋았습니다.
캐스퍼에서 근본으로 불리는 톰보이 카키는 카셰어링으로 많이 경험해 본 색깔입니다. 출시 1년이 지나서 무광형으로 따라 나온 비자림 카키 매트 역시 반응이 좋았습니다. 투싼과 아반떼에 들어간 아마존 그레이 메탈릭보다 색농도가 연하고 대나무색이랑 느낌이 비슷해서 차를 바라보는 눈도 편안합니다. 카야 잼 그린을 닮은 버터 크림 옐로우 펄은 파라메트릭 픽셀 눈망울로 초롱초롱한 캐스퍼 일렉트릭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 줄 겁니다.
전기차는 아직 덜 익었다며 혹독한 시련으로 애정을 주지 못했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을 보고서 냉정을 잃었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캐스퍼 일렉트릭을 보겠다며 부산모빌리티쇼에 다녀오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벡스코 현장 도착 전에는 안팎만 둘러보고 말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해서는 안 될(?) 사전계약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전기차 보조금이 얼마 남지 않아서 차가 제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희망이란 걸 품어보겠습니다. 나온다면 콘텐츠 쓰겠다고 막 굴리고 늘 비어 있는 아파트 지하주차장 완속 충전기에 물려서 배터리도 느긋하게 채울 생각입니다. "전기차? 응, 안 사."라고 매듭짓던 제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빨라야 2025년 이후가 될 거라던 전기차 전환 계획이 이렇게 앞당겨질지 괜히 마음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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